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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창 Jul 05. 2020

가족이 같은 직장에 다닌다면

드라마 꼰대 인턴 中 아빠가 상사에게 혼나는 모습에 딸이 참지 못하고 화를 내고 있다


 드라마 ‘꼰대인턴’을 보다 울컥해버렸다.  

 

 같은 직장에 아빠와 딸이 함께 근무하는데, 나이 어린 상사가 아빠에게 호통치는 모습을 딸이 보게 된 것이다. 딸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이를 보며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무슨 감정인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4년 전 즈음, 누나와 함께 서울에서 살았던 때가 있었다. 당시 누나는 작은 레지던트 호텔에 갓 취업했고, 난 로스쿨 입시에 떨어져 재수를 고민할 때였다. 우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었는데, 그때 누나가 자신이 다니는 호텔에서 사람을 뽑으니 한번 지원해 보라고 했다. ‘하우스키핑’이라는 부서로 야간에 지하에서 혼자 근무하며 객실에 문제가 있을 때 해결해주는 것이 주 업무였다. 야간에 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공부하기에는 딱 일 것이라고 추천해준 것이다. 오래 근무하지 않을 것이라 여겨, 누나와 가족인 것은 비밀로 하기로 한 채 지원서를 넣었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누나도 나도 스케줄 근무로 누나의 야간근무가 월에 한두 번 정도여서 볼일은 거의 없었고, 둘이 별로 안 닮아서 아무도 가족인 것을 몰랐다. 둘은 몰래 사인을 주고받으며 나름 재미있게 일을 했다. 하지만 그날…….


 그날은 누나와 내가 스케줄이 맞아서 오랜만에 같이 저녁 근무를 한 날이었다. 새벽 3시 즈음 갑자기 연락이 왔다. 한숨을 쉬며 올라와 달라는 다급한 목소리, 누나의 목소리에서 심각함이 느껴져 빠르게 뛰어올라갔다. 올라가서 보니 한 남자 손님이 프런트에서 크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유인 즉 호텔에 엘리베이터가 4대가 있는데, 그중 본인 앞에 엘리베이터가 서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제일 빨리 오는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것인데,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사장을 불러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누나는 당시 근무한 지 2달이 채 안된 상황으로, 이런 진상 손님을 처음 만난 듯했다. 누나는 나름 침착하게 대응하려 노력했지만, 진상 손님은 엘리베이터 사용수칙을 말해보라는 등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졌고, "사장에게 전화해!"라며 내지르는 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누나는 점점 초조해하며, 연신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러다 점점 눈시울이 붉어지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나는 차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끼어들고 말았다. “손님 죄송합니다. 저분이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러니 너그러이 용서 부탁드립니다 저랑 이야기하시죠” 라며 누나에게 손짓으로 얼른 뒤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그러자 누나는 프런트 뒤 사무실로 들어가서 눈물을 훔쳤다. 그 사이 나는 옅은 미소를 띠며 온갖 서비스직 아르바이트 경험에서 나온 실력을 발휘하며 “그러셨구나~ 기분이 많이 상하셨겠어요~”를 시전 하며 죄송하다는 사과와 함께, 이 진상 손님을 다시 객실로 올려놓으려 했다. 그러자 그 진상 손님은 손을 휘휘 저으며 누나를 데려오라고 했다. 그 여자랑 이야기를 해야겠다며, 자꾸 뒤에 있는 누나를 불렀다. 그러면서 갑자기 본인이 근처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경찰이라며 힘 있는 사람임을 강조했다.

 

 누나는 그 말을 들었는지 후다닥 뛰어나오며 다시 죄송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 아저씨는 누나가 나오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말꼬리를 잡으며 “어쩌라고”,“사장 불러와!”의 돌림노래를 불렀다. 누나가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을 즐기는 듯 보였다. 다시 누나에게 윽박을 질렀고, 나는 옆에서 지켜보는 상황이 한참 동안 이어졌다. 그렇게 온갖 말도 안 되는 협박과 꾸중을 듣던 중 갑자기 현기증이 난 것처럼,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저씨와 누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둘의 입모양은 보이는데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게 느껴지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현실감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여태 이성으로 겨우 붙잡아온 것들이 통제를 벗어났다.

 

 처음 올라왔을 때 진상 아저씨가 누나에게 말꼬리를 잡으며 겁박하는 모습에 정말 화가 났었다. 당장이라도 뭐하는 짓이냐며 끌고 나와버리고 싶었다. 떼어놓고 싶었다. 우리 누나가 저런 놈에게  욕을 먹으며 죄송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처음 봐서 일까, 생전 처음 느껴보는 분노가 터져 나오며 흥분해버렸다. 하지만 누나에게 피해가 갈까 봐 겁이 났고, 이 일로 둘의 관계가 드러날까 봐 참고 또 참았다. 누나에게 이 호텔은 늦은 나이에 힘들게 찾은 직장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생각이 많았다. 누나도 참으라며 카톡을 보내왔고 나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누르며, 참고 또 참았다.

 

 나는 안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다. 21살 군 전역 후 생계와 학업을 위해 카드사, 교육회사, 콜센터, 옷 가게, 과외, 막노동, 식당 등 온갖 아르바이트와 직장생활까지 해보며, 나름 사람을 대하는데 자신이 있었다. 태연하게 진상을 대처하는 능력도 있고, 덤덤히 대처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 눈앞에서 누나가 그렇게 연신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리고 말도 안 되는 일로 욕을 먹으며, 눈물까지 흘리는 모습에 내 이성은 끊어져 버렸다. 나도 모르게 이 사람이 ‘내 누나다’라는 말 먼저 나와버렸다. “저기 이분이 제 친누나예요 그러니 좀 그만해주세요……” 그러면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서럽고 화가 나서 눈물이 주체가 되지 않았다. “제발 그만 좀 해주세요…. 하…… 제발 …..” 그 말을 듣고 있던 누나 또한 펑펑 울며 둘 다 서럽게 울어버렸다. 그 순간 사회경험으로 단련되었다며 실컷 어른인 척했던 ‘나’는 사라졌고, 누나와 나는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버렸다. 그곳엔 마음 여린 아이들만 있었다. 화가 나도, 서러워도 눈물부터 나와서 “와아앙” 하고 울어버리는 아이들. 하려 했던 어떤 말도 못 한 채 딸꾹질만을 하는 그런 ……아이들이 되어버렸다.


 그제야 진상 아저씨는 정신이 든 듯 재차 물었다. “아 친누나라고? 둘이 그럼 같이 근무하는 거야?” 갑자기 머쓱해하며 아저씨는 울고 있는 누나를 보며 일단 들어가라고 했고,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나는 정신이 들며 아차 싶었다.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지…..’ 후회하며 아저씨를 따라갔다. 연신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레 둘이 남매인 것을 어디에도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아저씨는 따라오라는 듯 앞서 걸었다. 그러면서 자꾸 말을 붙였다. 어디에 살고, 학교는 어디를 나왔는지를 물으며 쓸데없는 말을 이어갔다. 태연한 척했지만, 조금은 미안한 마음에 말을 붙이는 듯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객실로 가서 한참 동안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의 인생조언까지 늘어놓으며, 조금 전과는 180도 다른 태도로, 뒤늦게 어른인 척했고, 아침 7시에 깨워 달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방에서 나올 수 있었다.


 멍했다. 폭풍이 몰아친 듯했고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라며 터덜터덜 프런트로 내려갔다. 내려가서 보니 누나는 좀 진정이 된 듯했다. 하지만 눈은 여전히 충혈되어 있었다. 누나에게 말했다 “저 아저씨가 비밀로 해준대 걱정 마~ 약속했어” 누나는 그런 말을 왜 했냐며 나에게 크게 화를 냈다. “자주 오는 사람 같은데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려 그래! 적당히 우는 척하면 넘어갈 일인데!” 일을 키웠다고 나를 나무랐다. 난 평소답지 않게 “미안….. 그래도 별일 없을 거야.” 라며 조용히 사과했다.

 

 누나가 한 말은 거짓말이었다. 우리 누나는 우는 연기 같은 건 할 줄 모른다. 내 앞에서 강한 척했지만, 누나는 아주 여린 사람이었다. 그냥 민망한 마음에, 또 어쩔 줄 몰라 그랬을 것이다. 어쩌면 내 앞이라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 누나는 꼭 말썽쟁이 동생 같았다. 두 살 차이의 누나는 점점 아빠의 사업실패와 도박, 이혼을 겪으며 상처를 많이 받은 듯했다. 그러면서 서울에 유일한 가족인 날 의지했고, 나 또한 누나를 동생처럼 대하며, 벌써 어른이 다 된 것처럼 굴었다. 이런 환경에서도 잘 살아내고 있다며, 나처럼 열심히 살아야지 왜 그렇게 소극적으로 사느냐며 누나만의 삶의 방식을 무시했다. 반면 누나는 나에게 까탈스럽게 대했지만, 밖에 나가서는 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누나는 조용하고 집 밖을 잘 나가지 않았다. 많이 여린 사람이었고, 처음 겪어보는 사회생활에 모든 것이 낯설었을 것이다. 누구에게 그런 모욕적인 말도 처음 들어봤을 것이고, 많이 아프고 어쩔 줄 몰랐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나도 처음에는 그랬으니까……, 그 아픔을 너무 잘 알아서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누나는 여린 사람인만큼 그런 일 안 겪고 살길 바랬는데……


 누나는 “사실 무섭고, 많이 겁났어 어떡해…… 넌 괜찮아?” 이 말을 할 줄 몰라 나에게 화를 낸 것이다. 우리 둘만 아는 대화였다.” 


 다행히 별일 없이 아침을 맞이했다. 아침 7시에 진상 아저씨를 깨우러 갔고, 한번 더 비밀유지를 당부했다. 아저씨는 알겠다고 했고 이후로도 별일은 없었다. 누나는 그곳에서 문제없이 근무하다 두 달 후 이직을 했고, 나는 이후에도 한 달 더 근무한 뒤, 호텔 운영업체가 부도나며 1개월치 급여를 못 받은 채 고시원 총무로 가서 다시 공부를 이어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저씨는 경찰이 아니라 호텔 옆 농협 직원이었다. 한 달에 한번 정도 오는 유명한 진상 손님으로, 당한 사람이 꾀나 있었다. 화가 나서 CCTV 영상을 확인해서 경찰 사칭으로 고소를 할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당시 당황해서 평소 잘하는 녹음도 안 했었고, 공부도 해야 했기에, 그냥 기억에 묻어버렸다.


 오늘 이 글을 쓰면서 그 아저씨가 왜 진상을 부렸는지 갑자기 기억나지 않아 누나에게 전화했다. “누나 그때 기억나? 옛날에 호텔에서 같이 일할 때 어떤 아저씨가 진상 부린 적 있었잖아 그때 왜 그랬지?” 누나는 단번에 대답했다. “호텔 엘리베이터가 자기 앞에 안 선다고.” 단번에 떠올릴 정도로 누나에게 그 일은 심각한 기억이었을 것이다. 아차 싶었다. 괜히 그 기억을 떠올리게 했나? 그러면서 한참 동안 옛날이야기를 하며,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물었고, 다음 주에 같이 밥 한번 먹자는 말로 전화를 끊었다.


 그냥 드라마를 보다가 비슷한 상황에 내 기억이 겹쳐지며 감정이 올라왔다. 그래서 한번 적어봤다. 최근 지인이 내 글을 읽고, 글에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을 했다. "그래서 뭐? 목적이 없어 목적이~"라는 지적. 글에 목적이 있어야 하나? 이 매거진 제목은 이번 생의 기록인데? 기록일 뿐, 내 삶의 목표는 최대한 많은 기억을 품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고, 또 기회가 된다면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이 글들은 그런 기억들이 희미해질 때, 나에게 다시금 알려줄 것이다. “너 옛날에 이런 적도 있었어~”라며. 난 글을 읽으며 추억을 떠올릴 것이고, 그것이 좋다면 느끼려 할 것이고, 아프다면 지금의 모습에 감사해할 것이다.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 그럼 그 지적에 맞춰 목적을 한번 정해보자. 음…. 굳이 정하면 이번 글의 목적은…. ‘누나에게 잘하자’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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