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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창 Jun 27. 2021

내가 사랑했던 모든 여자들에게

재열: 참고로 난 너무 집안 좋고 편한 애들 보면 짜증 나 


해수: 짜증 날 건 또 뭐 있니? 부러우면 몰라도.


재열: 내가 옛날에 진짜 괜찮은 집 애를 만난 적이 있어. 집안 좋고 부모 형제 사이좋고


해수: 음 맑고 순수한 영혼이겠군......


재열: 근데 그때 알았어. 너무 맑고 순수하고 긍정적이기만 하니까 무지 지루하더라고 그게. 

       사람이 인생의 쓴맛, 단맛을 알아야 성숙해지고 연애도 재밌지. 단맛만 아는 애 진짜 매력 없어


                                                                                           - 괜찮아 사랑이야 6화 -


재열이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인생의 쓴맛 단맛 다 보고 산 것 같은데, 나도 그녀들에게 매력적인 사람이었을까?”





여기 평범한 20대 남자가 있다. 아니 평범하지만은 않다. 외모만 평범했고, 키, 돈, 가정(인격적 안전성의 척도, 흔히 사랑을 받았느냐, 가정에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았느냐 할 때의 통상적인 가정)은 또래의 평균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돈을 벌고, 학교를 다니고, 생존에 급급한 그는 과연 사랑까지 하고 살 수 있었을까?


놀랍게도 그는 정말 많은 사랑을 했고, 그 ‘사랑’ 속에서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선물 같았다. 그녀들의 선물을 통해 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더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믿고 있다. 이번엔 내가 받았던 선물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보려 한다. 




당시의 누군가가 날 봤다면 그저 평범한 20대 대학생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난 미팅을 나가면 높은 확률로 친구들이 가장 이쁘다고 지목한 친구의 에프터를 받아냈고, 과에서 가장 인기 많은 친구들과 한 번씩 사귀었다. 뿐만 아니라 아르바이트, 직장에서도 그 그룹 내 가장 매력적이라 칭송받는 사람들과 한 번씩은 사귀곤 했다.(최소 5년 전 이야기다) 짧았던 만남들도 많았고, 외모가 뛰어난 사람들만 만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들에게 솔직하게 마음을 고백했고 좋은 결과가 대부분이었다. 


모 회사에 계약직으로(아르바이트였다) 근무할 때였다. 그 직장에 모든 남성들이 좋아하는(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객관적이라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여직원이 있었다. 남성 비율이 높은 직장에서, 그녀는 아주 매력적인 외모에 키도 나와 비슷하거나 더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삭막한 일터였지만 그녀가 웃어주면, 모든 남성들은 스트레스를 잊어버리는……. 그곳에서 그녀는 그런 존재였다. 나 또한 당연히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계약직인 데다 나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들도 많았기에, 저런 치열한 경쟁에 끼지 않겠다며 혼자 관심 없는 척하곤 했다. 하지만 그 미소에 넘어가지 않을 사람은 없었고, 나 홀로 정신승리를 이어가던 중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회식 때였다. 그녀의 인기를 익히 알고 있는 회사의 매니저는, 일부러 가장 문제 되지 않을 것 같은 나를 그녀의 옆자리에 앉혔고, 난 자연스레 그녀와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남직원들의 뜨거운 눈초리를 받았지만, 무덤덤한 척하며 다신 없을 기회를 살려보고 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조금은 용기를 내보고 싶어 졌다. ‘남자 친구가 있냐고 물어봐야 할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 그녀가 먼저 물었다. 


“진창님은 여자 친구 없어요?”

“네 그런 소은님(가명)은요?”

“저도 없죠 당연히”

“당연히? 왜 당연히에요 인기 엄청 많잖아요!!”

“에이 진창님이 없는 게 더 신기한데?”

이렇게 정신없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심장은 날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고, 여태 서로 번호가 없다는 게 신기하다는 이유로(자리에 유선번호가 있었기에 핸드폰으로 연락할 일이 없었다) 번호를 주고받으며 아쉽게 자리를 끝내야 했다.


술기운이었을까? 아니면 요란하게 뛰는 심장을 어찌할 수 없어서였을까? 참지 못하고 집에 가는 길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녀가 받았다.


“여보세요? 잘 들어가고 있죠?”

“네 진창님도 잘 가고 있죠?”

“아니 그냥…… 가는 길에 심심해서......”

“네, 저도 술이 조금 아쉽긴 했어요”

“네? 술 그렇게 좋아하시는지는 몰랐네요”


그렇게 우린 2시간이 넘도록 통화를 했다. 씻을 때 잠깐 끊어가며, 각자 침대에 누워 한참을 이야기하다, 내일 출근이 걱정되어 아쉽게 전화를 끊었다. 그 후로 몰래 연락을 주고받으며 직장에서 스릴 있게 썸을 탔고, 며칠 지나지 않아 사귀게 되었다. 못된 생각이지만 여기 있는 수많은, 괜찮은 남자들을 제치고 내가 그녀와 만나고 있다 생각하니 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었다. 한참 동안의 스릴 넘치는 비밀연애 이후,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일을 그만두었고, 자연스레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며 헤어지게 되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끝까지 우리가 만났다는 것을 모른 채 그렇게 헤어졌다.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나 같은 놈은 꿈도 못 꾸겠지?’, ‘그러니까 난 애초에 안 좋아할 거야!’ 라며 그녀에게 마음 없는 척 정신승리를 하곤 했다. 그러다 우연히 그녀와 친해질 기회가 생겼고, 결국 마음을 고백하고 사귀게 되었다. 






한 번은 생각해봤다 외모도 평범하고, 키도 작았다. 168cm 키높이 깔창을 깔았다.(깔창을 깐다는 사실을 밝힌다) 돈이 없어 매번 아르바이트의 연속이었고, 꿈도 거창해서 나를 위한 시간을 항상 할애해야 했다. 그런 내가 어떻게 그녀들과 만날 수 있었을까? 


첫 번째는 ‘대화가 재미있어서’였다. 대화 속에서 그녀들이 웃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좋았다. 전화만 받는다면 어떻게 든 재밌게 해 줄 자신도 있었다. 어떤 책에서, 불안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타인의 감정을 잘 알아차린다고 했다. 불안한 가정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항상 눈치를 보며, 어른들의 감정상태를 재빨리 알아차려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여기에 해당되는 듯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도박으로 인한 부부싸움을 자주 봐왔다. '혹시나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우리를 떠나면 어떡하지?',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닐까?' 라며 눈치를 보며 자랐다. 성인이 된 나는 실제로 상대방의 감정상태를 빠르게 알아채고, 대화에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렇게 나는 남들의 감정상태를 재빨리 알아차려 불필요하다 여겨지는 상투적인 말을 생략하고, 말하지 않은 부분을 추측해서, 그다음 이야기를 하는 등 스무고개를 하는 듯한 스릴 넘치는 대화를 하곤 했다. 의미 없는 대화를 쳐내다 보니, 자연스레 상대의 진의와 성향에 대해 탐구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 탐구 속에서 그녀도 나도 본인에 대해 더 알아가는 기회를 가졌다. 그렇게 같은 공감대 위에서 본질에 가까운 대화, 의도와 가치관 대한 대화, 그것들을 비꼬아 장난치는 등, 일상에서 충족하지 못하는 욕구를 채우며, 벌거벗은 대화(적당한 친밀감의 형성 이후에 가능했다)를 하며, 재밌어했다. 실제로 소개팅 혹은 미팅에서 문자나 카톡을 하다 연락이 끊어진 적은 있었지만, 만나서 이야기를 한 이후 퇴짜 맞은 기억은 거의 없다. 


두 번째는 '장난'이었다. 난 장난을 치는 것을 정말 좋아하며, 여자 친구는 장난을 치고 싶어 하는 1순위 상대였다. 침대 밑이나, 기상천외한 곳에 숨는 것은 기본이고, 선물을 사놓고 끝까지 깜빡했다고 하루 종일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나중에 주는 등 매일 이런 사소한 장난들 속에서 때론 웃기도 하고 싹싹 빌기도 하는 연애를 했다. 그래서인지? 연애를 시작하고 난 이후 그녀들은 나와 함께하는 시간을 더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고, 나 또한 그런 그녀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결혼을 꿈꾸며 진지하게 연애를 했다. 매일 오고 가는 장난 속에서 그녀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에 대한 믿음을 얻어가고 있었다. 


한 번은 그런 믿음이 내 키를 무려 5cm나 키워준 일이 있었다. 20살, 당시의 나는 작은 키가 콤플렉스였다. 그때는 키높이 깔창을 깔면서도 깐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의 공식적인 내 키는 173cm였다. 당시 여자 친구와 내키는 168cm로 똑같았다. 실내에서 데이트도 몇 번 했지만, 이상하게 한 번도 키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고 ‘어렴풋이 알겠지 뭐’라며 연애를 이어가던 중, 군대 영장이 나왔다. 집에 먼저 와있던 그녀가 내 신체 검사지를 뜯어보고 놀라서 말했다.


“야 너 키가 잘못 나왔어!”

“응? 보자 (168.9cm라고 당당히 적혀있었다)…… (한참을 응시하다) 음 그러게~ 이게 뭐지?”

“잘못 나와도 군대 갈 수 있어?”

“문제없을걸?”


나는 태연하게 잘못 나온 것 같다고 말했고,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그런 것으로 받아들였다. 1년 가까이 내 키가 173cm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입대 이후 자연스레 헤어진 그녀는 아마, 아직도 내 키가 173cm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세 번째는 솔직함이었다. 군 전역 이후, 내가 세상에 바랬던 가장 큰 염원은 당당해지는 것이었다. 그 누구 앞에서도 쫄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눈을 마주할 수 있는 것. 학창 시절에는 싸움 잘하는 아이들의 눈치를 보고 살았고, 집에서는 부모님의 싸움에 눈치를 보았기에, 항상 눈치를 보며 상황에 따라 비겁하게 행동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판단 속에 '진짜 나'가 없었다. 하지만 군대라는 인생의 중간점검을 혹독하게 치르며, 더 이상 이렇게 비굴하게 살고 싶지 않다며 극단적이 방법을 선택했다. '진짜로 살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난, 나로 살기 위해 어떤 상황에도 진짜인 말만 해야 했다.(많은 고민 끝에 선택했고,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바꿀 수 없을 것 같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었다. 


야간 초소 근무 중, 재밌는 이야기라며 한참 동안 지루한 연애스토리를 쏟아내고 혼자 흐뭇해하던 선임이, 시큰둥해하던 내 표정을 보고 말했다. 


"야 시발 재미없냐?"

"네..... 큰 재미는 없었습니다."

"(당황하며)이 새끼 너......."


그냥 재밌었다고 넘어가는 것이 국 룰이었고, 앞으로 벌어질 귀찮은 일들이 방지할 수 있었겠지만, 굳이 그 순간의 내 마음에게 뭐가 진짜인지를 물어보고 대답을 이어갔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던 만큼, 많은 욕을 먹었다. 하지만 고문관이 되거나 큰 고난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얼마간의 과도기가 지나자, 사람들은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원래 저런 놈이니깐 이해하자'라는 말들이 오고 가며 점점 내 진짜 모습을 받아들이며 전처럼 대해주었다. 게다가 해야 할 일들은 나름 잘했었기에, 과하게 솔직한 것 빼면은 크게 문제 될 것도 없다고 여겼다. 그렇게 '진짜로 살기 프로젝트'를 통해 혹독한 트레이닝을 마쳤고, 나는 '진짜로 살아도 괜찮다'라는 확신을 가진채 당당하게 사회에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진짜로 살기 프로젝트'는 나에게 많은 선물을 가져다주었다. 우선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많이 생겨났다. 솔직함 위에 쌓은 인간관계는 콘크리트처럼 단단했기에,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또한 불필요한 포장이 사라지자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도 사라졌다. 또한 좋은 인연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재고 따지고 안될 거라며 혼자 단정하고 끝냈겠지만, 솔직히 말해야 하는 병에 걸렸던 나는 좋아한다는 말을, 함께 있고 싶다는 말을 툭 전할 수 있었고 그 인연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한 번은 어떤 모임의 술자리에 있을 때였다. 당시 강연자, 배우, 인권운동가 등 여러 직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내 꿈에 대해 말하던 중, 평소 큰 관심은 없었던, 당찬 그녀가 내 옆자리로 왔다. 그렇게 한창 대화는 무르익었고, 그때까지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선배님은 연애 안 해요?”

“그냥, 뭐 좋아하는 사람 생기면 하는 거지”

“어떤 사람 좋아하는데요?”

“그냥 이상형 같은 건 없는데, 그냥…… 난 직전 여자 친구의 반대를 만나려 하는 것 같애 외모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 뭐 예를 들면 좀 마른 사람 만났으면, 이번엔 좀 통통한 사람, 그리고 좀 성격도 좀 비굴했으면, 정의로운 사람? 뭐 그렇게?”

“전 여자 친구가 어땠는데요?”

“음…… 근데, 왜 물어봐 자꾸?”


그렇게 한참을 나에 대해 물어보기에 관심이 있음을 느꼈지만, 그때까지도 아무런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그녀는 갑자기 잠자리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클럽을 다녀온 이야기를 하며 원나잇을 해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원나잇? 글쎄, 원나잇은 아니고, 제일 짧은 건 세븐 나잇 정도 될걸? ”

“그게 뭐에요 ㅎㅎ”

“섹스만 하고 헤어진건 아니니깐, 그때도 진심이었어 일주일은 연락하고 이후에 밥도 먹고 하다 아닌 것 같아 서 헤어진 거지, 나름 연애라고 할 수 있지”

"와 신선한데? 어떻게 이렇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지? 너무 훅들어와서 놀랐어요"

"네가 물어봤잖아?"

내 말을 듣자, 그녀도 갑자기 본인의 잠자리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난 하루하고 나서 딱 끊어야 되겠던데……"

“왜? 더 하고 싶을 수 도 있잖아”

“그냥 그게 깔끔해서요”

그녀가 깔끔한 것을 왜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한참이 지난 뒤 알게 되었다. 그렇게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다 결국 "최근에 한 게 언제냐?"라는 질문까지 나왔다. 


“선배는 요즘 어때요?”

“뭐가? 최근에 섹스한 적 있냐는 거야?”

“뭐 그렇죠?”

“음, 글쎄……”

솔직한 대화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고 여겼다. 그렇게 한껏 흥분한 채로 자리는 끝이 났다. 그녀의 집으로 가려면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 했기에, 난 그녀에게 물었다. 

“우리 집에서 자고 갈레?”

고개를 돌려 주변에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같이 있던 친구들에게 선배가 데려다 주기로 했다며 같이 간다고 말하고는 나에게 왔다. 그렇게 우린 집으로 갔고, 잠자리를 가졌다. 그 이후로도 우린 사귀지도 않은 채, 서로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수시로 잠자리를 가졌다. 그녀가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쿨 한 여자라 믿었고, 나 또한 내 미래가 가장 중요했었다. 내 한 몸 간수하기도 벅찬 시기였기에, 돈이 없음을 밝히고 내 방, 그녀의 자취방을 오가며 잠자리를 가졌다. 그러다 학교가 개강을 하며, 그녀의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자연스레 우린 동거를 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녀와 더 있고 싶어 했고, 그녀는 클럽을 끊어버렸다. 그렇게 서로가 한 발자국 씩 가까이 다가왔고, 우리는 결국 사귀게 되었다. 정상적인 연인관계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개학을 하고 나서 그녀가 왜 그렇게 깔끔한 것에 집착을 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핸드폰을 서로 보지 않아 몰랐지만, 밤에 늘 전화가 한통씩 왔던 것이었다. 알고 보니 1년 전 그녀에게 고백을 했고 끝까지 받아주지 않자 집착을 하는 남자가 있었던 것이다. 1년 넘게 스토킹을 당했고, 난 왜 가족에게 말하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느냐며 물었다. 가족에게 말하면 부모님이 걱정할게 눈에 보여서 라고 했고(유복하고 화목한 가정이었기에 이 일을 알면 집이 발칵 뒤집힐 것이라 했다), 경찰에 신고하면 그 남자 미래에 큰 피해가 갈 수도 있기 때문이라 했다. 하지만 그 남자에게 가는 피해를 생각하기에는 스토킹이 도를 지나쳤다. 핸드폰 번호를 몇 번이나 바꿔도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 알아내 연락을 하고, 욕설은 기본에 심한 성희롱도 서슴지 않았다. 보는 내가 너무 힘들어서 경찰에 신고하자고 몇 번이나 설득을 했지만, 이러다 말 것이라며 일을 크게 키우고 싶지 않다는 말만 계속했다. 그리고 나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나 같은 여자를 만나서 이런 일을 겪게 하다니 너무 미안하다고....... 오히려 그녀는 '이런 문제 때문에 내가 싫어하지는 않을까?'라며 걱정했다. 정말 착한 여자였다. 


하지만 결국 일은 터졌다. 내가 수업을 간 틈에, 그놈이 왔던 것이다. 집에 들어가려던 그녀의 핸드폰을 빼앗아 술을 같이 먹으면 핸드폰을 준다고 하며, 억지로 술을 먹인 채 집에 같이 들어가자며 집 앞에서 그녀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연락이 되지 않아 크게 걱정을 하며 그녀를 찾아다니다 결국 집 앞에서 그녀와 함께 있는 그놈을 만났다. 


나는 소리를 쳤다. 

“야!!!!!”

그놈은 달려오는 내 모습에 당황을 한 듯 보였다.

그녀에게 가서 물었다 

“무슨 일이야!”

“핸드폰을 가져갔어…… 집에 같이 들어가자고……”

그놈에게 말했다.

“핸드폰 주세요!!!”

그놈은 내 모습에 당황했는지 핸드폰을 순순히 내놨다. 그리고 그녀에게 물었다.

“또 뭐 없어?”

“차키도 가져갔어……”

그런데 그녀가 너무 창피해하는 것 같았다. 평소 자존심도 세고 당찬 그녀였는데, 나에게 창피한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오히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녀에게 말했다. 

“혹시 이야기해서 해결될 일이야? 둘이 해결할 시간이 필요해?”

그녀는 고민 후 말없이 끄덕거렸고 난 그녀를 믿고 둘을 보내줬다. 그렇게 큰 실수를 저질렀다. 그녀를 보낸 이후 30분이 지나도 연락은 없었고, 난 그녀의 핸드폰에 전화를 했다. 그놈이 받았다.

온갖 욕설을 하며 자기가 이 근처 나이트클럽 아들이라며 조폭들과 친분이 있음을 말하며 나를 협박했다. 

“야이 좆만 한 새끼야 내가 삼촌들 부르면 끽소리도 못할 새끼가 어디 깝죽대?”

“어딘데요?”

“학교 근처다 이 새끼야” 

“네 갑니다”

그렇게 그놈이 말한 곳으로 갔다. 학창 시절 싸움 잘하는 녀석들에게 겁먹었던 생각들이 떠오르며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 가야 했고 손발을 벌벌 떨며 그곳으로 갔다. 그놈은 친구들과 함께 있었고 나를 둘러쌌다. 하지만 난 건물에 도착해 이미 경찰에 신고를 한 상태였기에, 조금은 당당하게 그놈을 보고 말할 수 있었다.


“소영이(가명) 어딨어요?”

“니가 알아서 뭐하게 이 좆 만한 새끼야 이 좆도 안 되는 병신 새끼~~~~~~(이후로도 한참의 욕이 이어졌다)”

그렇게 둘이 이마를 맞대고 밀치다 결국 경찰이 왔고, 이마 밀친 정도는 폭행이라 하기 좀 그러니 처벌할 문제는 아니라며 적당한 취조한 이후 난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녀석은 경찰이 돌아간 이후에도 나에게 욕설을 했지만, 친구들이 보고 있어서 인지 오히려 그녀를 데려가라고 했다.

“야 제발 걔 데려가고 내 눈앞에서 꺼져라, 연락도 하지 말고”

“제발 그래 주세요 제발”

“뭐 이 새끼야?”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되는 줄 알았지만, 이후로도 그녀의 핸드폰에 그놈은 지속적으로 연락을 해 왔고, 난 겁먹었지만 아닌척했다. 그녀는 연락이 올 때마다 나에게 그 사실을 숨기려 했다. 내가 신경 쓰는 것이 눈에 보였고, 그러다 본인을 싫어하지 않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난 괜찮다고 했고, 아무렇지 않다며 난 그놈의 전화를 받았다. 온갖 욕설이 오고 갔지만, 그것도 몇 번 듣다 보니 익숙해졌고 난 오히려 능청스럽게 대했다.


“형님 오늘은 왜 또 전화했어요~ 연락 안 한담서요~”

“야이 새끼야 같이 있냐? 너 걔 랑 잤냐? 이 시발 새끼야 너 내가 조폭들 불러서 담근….(한참의 욕설이 이어졌다)”

“형님, 안 지쳐요? 오늘은 그만 하고 자러 가세요 내가 전화는 이렇게 받아 드릴게, 가끔 심심하면 내 폰으로도 전화 주고 내 번호 010……. 이걸로 연락해요 괜히 얘한테 전화하지 말고, 어차피 해도 내가 받겠지만”


그렇게 태연한 척하며 그놈을 대했고, 점점 연락이 줄어들었고 끝내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적당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그녀는 내 모든 것을 좋아했다. 내가 화장실에서 큰 변을 보고 깜빡해서 물을 내리지 않은 채 그녀에게 가서 당당한 표정으로 장난을 쳤다. 


“내가 똥을 싸고 왔는데 왜 내다보러 오지 않소!!!!!”

그렇게 별 것 아닌 장난으로 한참을 웃다 그녀가 화장실에 들어가서 물을 내리지 않은 내 변을 보고 돌아왔다. 갑자기 폭소를 하며 화장실에 가보라고 했다. 영문도 모른 채, 왜 저렇게 웃나 싶어 화장실을 가본 나는 떡하니 있던 내 대변을 보고 얼굴이 파래졌다. 아무리 방귀, 트림을 텄지만 똥까지 보여준 적은 처음이었기에, 하지만 큰 걱정은 되지 않았고, 나도 창피했지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얼른 물을 내리고 나가니 배를 잡고 아직도 웃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그렇게 둘이 얼굴을 마주 보며 한참을 웃다가 그녀는 내게 말했다.

“귀여워 죽겠어~”

“(갑자기 시무룩한 표정으로) 뭐가…… 개 더럽더구먼……”

“아니ㅎㅎ 물 안 내린 것도 모르고 저렇게 당당하게 오는 게 너무 귀엽잖아”

“넌 아무렇지 않디?”

“응 난 니가 다 좋아 니 똥도, 방귀도 다 좋아”


난 그녀에게 갚을 수 없는 큰 사랑을 받았다. 당시 내 가정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을 때였다. 엄마는 아버지와 이혼을 위해 지방으로 도망을 다녔고 아버지는 가만두지 않겠다며 엄마를 찾아 전국을 다니며, 매일 내게 전화를 해서 엄마 욕을 할 때였다. 아버지의 전화를 받으며 한숨을 푹푹 쉴 때면 그녀는 말없이 나를 안아줬다. 아니 엄마처럼 품어줬다고 하는 게 맞을 거다. 의자에 앉아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으면 그녀는 내 머리와 등을 쓰다듬으며 말해주었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그녀가 그렇게 말해 줄 때면, 내가 처한 상황을 잠깐이나마 잊을 수 있었다. 가난과 가정의 파괴 그 한가운데에서 무겁게 내 몸을 짓누르던 공기가, 조금은 가볍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그녀들은 내가 가정에서 받지 못했던 부족한 사랑을 채워주곤 했다.




한 번은 심리학에 심취한 친구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자연스레 그는 모든 문제를 섹스와, 성장배경에서 찾으며 나의 당당한 행동과 이상주의적 가치관의 근거를 찾기 위해 가정사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는 프로이트를 좋아했다. 그에게 내 가정사를 말하자, 갸우뚱하며 나에게 물었다. 

“그런 것 치고는 너무 멀쩡해 보이는데? 뭐가 있을 거 같아 뭐가………”

“글쎄 사실은 나도 그런 생각 해본 적 있어, 은근히 멀쩡한 것 같아 살아온 거에 비하면……..”

그는 나와 알고 지내는 동안, 나의 좋지 않은 가정사로 인한 비정상적인 무언가가 발현되는 것을 찾기 위해 나를 탐구했고, 결국 별 이상 없음으로 결론을 내리고는 흥미가 사라졌는지 연락을 이어가지 않았다.



“넌 가정사에 비해, 자라온 환경에 비해 너무 정상적이야”

친구로부터 여자 친구로부터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것은 나의 노력과 여자 친구들로부터 받았던 많은 사랑이었다. 처음에는 학창 시절 트라우마로 친구를 사귈 때마다 누가 가장 핵심인물인지를 보고 그 무리에 속하기 위해 사소한 거짓말도 했었고, 있는 척하려 하려 애쓰기도 했었다. 하지만 군대에서 내 삶을 돌아보며 당당해지고 싶다며, 사소한 것부터, 아주 작은 거짓말조차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지나치게 솔직한 언사로 주변에서 이상한 눈초리를 받을 정도가 되자 조금은 홀로 당당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가정을 대신해 그녀들은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란 것을 알려주었다. 그녀들과의 사랑이 끝날 때마다, 나는 조금 더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녀들은 나에게 배려를 알려주었고, 사랑의 예의을 알려주었다. 나에게 어떤 옷이 잘 어울리는 지를 알려

주었고, 내가 어떨 때 가장 사랑스러운지, 어떤 표정을 지을 때 사랑스러운지, 가정을 대신해서 그녀들은 세상 속에 서 있는 내 모습이 어색하지 않도록 해주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게 되는 이유는 태어나기 전에 미리 약속을 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서로가 만나는 것은, 그때에 꼭 필요한 배움을 주기 위해서라고……. 항상 좋기만 했던 연애는 아니었지만, 나 또한 그녀들에게 내가 받은 것만큼의 따듯한 무언가를 주었으리라 믿는다. 나를 매력적인 사람으로, 또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물론 전해져서도 안 되겠지만. 그냥 이렇게 라도 말하고 싶다. 


“부족한 나를 사랑해줘서 고마웠어, 덕분에 조금은 좋은 어른이 된 것 같아. 너도 잘 지내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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