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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창 Jun 19. 2020

사랑에 노력이 필요하다면

 여기에 한 여자와 남자가 있다 둘은 3년을 넘게 만났다. 오랜 연애에 마음이 식은 것인지, 아니면 누구나 겪는 권태기가 온 것인지, 남자는 유독 힘들어했고 결국 이별을 결심했다. 하지만 마음이 약해서 여자에게 ‘시간을 갖자’는 소심한 말로 헤어짐을 준비했다.


이 글은 그 남자가 가졌던 당시의 마음 기록이다.



 남자는 5개월 전부터 이별을 생각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더 이상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혼자 여행을 떠나 처음 만난 사람들과 있을 때의 기쁨이 더 컸다는 것, 그리고 ‘다른 여자를 만나면 어떨까?’라는 호기심이 다시금 떠오른 다는 것, 잠자리가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는 것, 그런 이유로 헤어져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몇 번의 연습을 거쳐 이별을 고하러 그녀의 집에 갔을 때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남자를 껴안았다. 너무나 행복한 표정으로..... 그것이 그의 첫 이별 시도였고 결과는 대 실패였다. 한 달 뒤 남자는 연락을 끊고 템플스테이까지 다녀오며, 마음을 다잡았고, 이번에는 기필코 말하고야 말겠다며 그녀의 집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그녀는 때마침 같이 아는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한창 취해 있었다. 해맑게 웃으며 “뭐야? 서프라이즈야? 빨리 앉아서 한잔해”라는 친구들과 그녀의 말에, 그는 멋 적게 웃으며 그 분위기를 거스르지 못했다. 그 이후에도 몇 번의 시도가 더 이어졌지만, 해맑은 웃음으로 달려오는 그녀의 모습에 난 아무 말도 못 하기 십상이었다.


 시간을 갖자고 말한 그날은, 다짐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녀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우리는 멀리 있어서 주말에만 함께 했는데, 그 주 주말 데이트가 끝나고 그녀는 말했다. “이번에 넌 한 번도 먼저 안아주지 않았고 사랑한다 말해주지 않았고 그렇게 섹스를 졸라도 들은 척도 안 했어 너 나 사랑하긴 하니?”, 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이 뭔지 모르겠어… 그래서 모르겠어…..” 말도 안 되는 궤변을 하며, 도망치듯 대답을 뭉갰다. 그리고는 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그녀는 나에게 전화를 했고, 이제는 풀려고 노력도 하지 않느냐며 울면서 서러움을 표출했다. 그때 나는 생각보다 덤덤하게 “시간을 좀 갖자”라고 말하고 말았다.


 이별통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크게 한걸음 내디딘 것이라 후련할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말하고 나니, 가슴이 답답하고 멍했다. 헤어지면 소개팅도 받고 실컷 놀러 다니며 즐길 생각이었지만, 생각보다 그럴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너무 일방적으로 닦달해서 화가 났다면 미안해, 근데 시험이 얼마 안 남아서 마냥 시간을 줄 수 없어. 난 네가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고, 너도 빨리 마음을 정해서 말해주면 내가 정리하던지, 다시 만나서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책을 한 권 보냈다고 했다.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고 했으니 이걸 한번 읽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안 그래도 불안해서 어쩔 줄 몰랐던 나에게 그 책은 좋은 핑곗거리이자, 해답서가 될 것 같았다.


 난 섣부른 선택으로 후회하지 않기 위해 이별과 만남의 기로에서 일생일대의 고민에 빠졌다. 일하는 것 빼고는 아니 일하는 순간까지도 하루 종일 고민에 빠졌다. 끊임없이 고민한다는 것이 힘들었지만, 후회하지 않을 답을 내려야 한다는 마음밖에 없었다. 일찍 집에 와서 그녀가 보내준 책과 사랑에 관한 다른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물론 브런치 글도 검색해서 읽었다. 어떤 이는 사랑이 식으면 헤어짐을 고해야 한다고 했고 어떤 이는 사랑은 ‘정’이라고도 했다.


 만약 누구를 만나건 간에 시간이 흘러 '사랑'이 '정'이 되는 것이라면 난 그녀를 만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식지 않는 사랑이 존재하고, 이번에는 인연이 아닌 것이라면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거했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보면서 그녀는 변함이 없었지만 내 대답들은 점점 짧아지고 귀찮아했음을 확인했다. 이것이 내 마음을 확인하는 징표가 되었고 드디어 그녀에게 이별을 고할 결심을 했다. 가슴이 아파도 전화해서 목소리를 들으며 헤어지자고 마음을 먹었고, 울음소리를 들으며 그것을 견디는 것이 그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를 처음 만나고 사랑했을 때의 마음이 떠오르며 혼란스러워졌고 다시 고민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또 다음날까지 사랑에 대한 고민과 공부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러던 중 ‘사랑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글에 시선을 빼앗겼고, 글 속에서 내 사랑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난 여태껏 노력해왔다고 믿었다. 사랑을 하며 견디고 참았던 것,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싫어도 좋은 척했던 것, 이 든 것이 내가 해왔던 사랑의 노력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랑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글을 쓴 사람은, 사랑은 시간이 흐르면 식어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전제를 시작으로, 식어가는 온도를 나의 노력으로 달구며 은은히 지켜 간다면 그것이 ‘진짜 사랑’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집중해서 읽어가며, 어떤 노력들인지 확인했다. 마음이 식어갈 때, 다른 이성이 눈에 보일 때, 처음 그녀와 사랑에 빠져들었을 때를 떠올리며 나의 그녀를 사랑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 새로운 이성을 향한 본능에 눈을 돌리기보다는 오랜 추억을 간직한 사랑에 집중하려는 것, 이런 노력을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사랑은 성숙기에 다다라 같은 시간을 공유한 이들의 진짜 사랑을 오래도록 가져갈 수 있는 것이라 했다.


 그러고 보면 난 20대에 정말 많은 사랑을 했다. 짧게는 1달 길게는 1년, 20번이 넘는 연애를 하며 사랑이 식어감을 느낄 때 죄책감도 없이 이별을 고하고, 당연하다는 듯 다른 이성을 만나러 갔다. 그런 내가 이번에는 왜 이렇게 망설이고 고민하는 것일까? 3년이라는 역대 최장기간의 연애를 해서? 아니면 사회적으로 그녀의 조건이 나보다 월등히 좋아서? 그녀가 주는 무한정 사랑의 안정감을 잃기 싫어서? 그녀의 성격이 너무 좋아서 이만큼 잘 맞는 이성을 못 만날 것 같아서?

모두 맞을지도 모르지만 ‘후회할 것 같아서’라는 이유로 모든 것은 귀결되었다.


 내가 이번에 헤어지게 된다면, 난 또 누군가를 만날 것이고, 그 누군가와 또 운명이라 여기며 사랑을 할 것이다. 그러다 이번에는 식지 않을 줄 알았던 사랑이 또 식어버리면, 그땐 어떡하지? 그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참고 결혼을 해야 할까?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를 찾으러 떠나야 할까? 이런 고민의 끝에서, 사랑에 노력이 필요하다는 글은 나에게 누군가가 주는 메시지처럼 다가왔다.

“식으면 도망가는 사랑의 다음 단계를 이제 가보거라.” 와 같은 말로 ….


 사랑에 노력이 필요하다는 은 나에게 큰 안도감을 가져다주었고 ‘진짜노력’이란 것을 해보기로 했다. 지금과는 다른 ‘진짜노력’이란 것을 하며 ‘다음 단계의 사랑’, ‘진짜 어른의 사랑’을 하고 싶었다. 이별의 순간이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식으면 도망가는 사랑을 또 겪어야 하는 것이 지겨웠음을……. 지긋한 나이가 되었을 때 같은 시간을 공유했던 서로가 같은 곳을 바라보는 모습이 그려지며 마음이 포근해졌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이 들었다.


-      난 지금 선택을 해야 했던 것이 아닐까?

 평생 자극을 쫓으며 새로운 이성을 만나고 사랑이 식으면 헤어지고,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노력 없이 평생 이어지는 사랑을 찾을 것인지, 아니면 노력을 더해서 나의 모든 것을 사랑해주는 그녀와 함께할 것인지…….


-      나의 젊음과 매력도 나이가 들면 사라지지 않을까?

나도 나이가 들어 매력이 없어지고, 노인이 되면 내 곁에는 누가 있을까?’ 그 옆에 같은 추억을 간직한 그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성에게 눈이 갈 때면, 떠올려야 할 마음이 정해진 것이다. 나의 매력과 젊음은 한순간이고, 오래도록 행복하기 위해서는 난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어른의 사랑이고 그렇게 이번 생에 내가 배워야 하는 진짜 사랑이 아닐까?


//  오늘을 일기에 쓰면서 생각했다. 내가 아빠가 된다면 내 자식에게 이런 사랑이 있다고 꼭 알려주자고......

 물론 지금의 내 결정으로 인해 가정이 생긴다면 말이다.  



에필로그

그녀에게 이별을 말하기 전 갑자기 망설였던 이유


1. 그녀는 날 너무 사랑한다. 작은 키, 뱃살,  방귀 트림을 참지 않는 나의 성격까지도


2. 그녀는 착하다. 버럭 화를 냈다가도, 나중에 본인이 감정에 못 이겨했던 말들을 꼭 사과한다. 그리고 절대 도망가지 않고, 싸움을 크게 키우려 하지 않는다. 납득 가고, 논리적인 말로 설득하려 노력한다.


3. 그녀는 자본주의적이지 않다. 그녀는 비교적 좋은 집에, 좋은 학벌, 좋은 직업까지 갖춰서 같은 급, 또는 잘 사는 사람을 찾을 법한데, 나 같은 가난하고 집안도 엉망인 사람을 사랑해주고, 또 흔히 하는 사치 또한 찾아볼 수 없다. 명품가방 하나 없고, 나와 쇼핑을 가도, 만 원짜리 티셔츠 파는 행사 코너를 곧잘 기웃거리는 소박하고 과분한 여자다.


4. 그녀는 날 이해해주려 한다. 난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뭣도 아니지만 글 쓰고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며, 심지어는 1년 넘게 세계일주를 계획하며 그곳에서 세상의 무언가를 깨우치려 하는 이상을 가지고 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상까지 이해해주려는 대단한 여자다.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이제는 얼른 다녀오라고 했다. 사막의 여자를 찾았는데 바로 옆에 그녀가 있었음을 조금 느끼고 있다.


5. 그녀는 사랑스럽다. 친구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아이처럼 해맑게 춤출 때, 푼수처럼 웃을 때, 정신없이 음식을 먹을 때, 바보처럼 소리칠 때는 해맑게 웃으며 사랑스럽게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러다 그냥 결혼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아는 남자 중 가장 바보 같은 그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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