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은 내용에 대해 정말 알고 쓰고 있을까?
어떤 글이 쓰기 쉬울까? 여기 소재에 대해 잘 알고, 글도 1000자 내외로 비교적 짧고, 자료에 대한 논문이나 관련 자료를 따로 찾을 필요가 없고, 심지어 논증이 엄밀할 필요가 없는 글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쓰기 쉽지 않을까? 자 이제 질문을 바꿔 보겠다. “자기 소개서 쓰기 쉬우셨습니까?”
‘자기 소개서’는 대표적 스트레스성 글 쓰기로 꼽힌다. 아이러니다. 쓰기 제일 쉬운 글일 지언데 가장 어려운 글이다. 필자도 자기 소개서를 쓸 때 4일 동안 두문불출하며 면벽수련하듯 글을 쓴 기억이 있다. 돌이켜보면 정작 글을 쓰고 다듬은 시간은 반나절 정도였다.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자기와의 대화’였다. “내가 뭘 잘했지?” “내 성격은 어땠지?” “프로젝트 때 무슨 발전을 했지?” 와 같은 질문과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지리하게 이어졌다.
여기에 글 쓰기를 시작하기 전 준비 사항에 대한 본질이 있다. 바로 이야기할 내용을 정확히 정하는 것이다.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충분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다. 서점가에는 일단 시작하라라는 글 쓰기 안내서가 나오고 있다. 맞다. 단, 뭘 쓸지 정해야 시작할 수 있다.
필자가 자기 소개서 쓰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나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나에 대한 성찰과 고민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친구 소개서가 있다면 오히려 쓰기 편했을지도 모른다. 글이 아예 안 써질 때는 내가 쓰려는 글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을 했는가에 대해 의심해야 한다.
나의 성격을 어필하려는 글을 쓰겠다는 식의 시작은 부족하다. 최소한 "나의 차분하지만 침울하지 않은 그래서 주변에 부담스럽지 않게 동화되는 성격을 어필하겠다" 정도로는 시작해야 한다. 시작이 최대한 정교하고 구체적일 수록 좋다. 이러한 시작은 그 자체로서 글 쓰기의 이정표가 된다. 차분했던 경험을 찾게 될 것이고 주변에 자연스럽게 어울렸던 그래서 마중물 같은 사람으로 어필 포인트를 만들 수도 있다.
필자는 회사원이기에 상사의 의견이 담긴 글을 쓰는 경우가 흔하다. A에 대해 글을 쓰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하자. A를 들고 본인 책상에 앉기 전에 A에 대해 상사한테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르고 정확하다. “A의 어떤 면을 어떤 어조로 써야 합니까? 특히 이 글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안다. 까칠하고 피곤한 부하 직원이다. 정작 시키는 상사도 이런 고민이 없었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이런 충분한 대화로 시작한 글은 최소한 말귀 못 알아 들은 글 취급은 피할 수 있다. 칼을 만들기 전, 장수가 쓸 대장검인지 아녀자가 쓸 단도 인지는 정해야 한다.
지시 사항 이행에 대한 글과 자기 소개서 쓰는 방법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자세히 이야기할 시간이 있을 것이다.
다음엔 글 쓰기 전 고민 방법에 대해 풀어 보겠다.
By 건조한 글 쓰기. 정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