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주제를 선택하자
지난번에는 글쓰기 전 루틴에 대해 설명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글을 써보자.
보통 글을 쓰기 전, 무엇을 쓸지에 대해선 선생님, 상사, 친구, 본인이 처한 상황에 의해 어느 정도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해진 그 무엇의 무엇을 쓸 것이냐'이다. 필자는 이를 '주제 정하기'라고 하겠다. 적절하고 매력적인 주제를 잡는 건 성공적인 글 쓰기의 5할은 차지할 정도로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이는 3회에 걸쳐 자세히 풀어보도록 하겠다.
설명이 아닌 주장하는 글의 주제는 크게 '착한 주제'와 '나쁜 주제'가 있다. 도덕적 기준의 착함과 나쁨이 아니다. 나쁜 남자의 나쁜 정도의 용례를 적용하면 이해가 빠르겠다. 언제나 그렇듯 쉬운 예로 시작하자. ‘외모와 소개팅’을 주제로 주장하는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하자. 이제 외모와 소개팅에 대한 무엇을 쓸 것이냐를 정해야 한다. 바로 생각나는 평소에 많이 접했던 논리는 이렇다.
"소개팅에서 외모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그러나 외모로 그 사람의 매력을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소개팅에서 외모 평가보다는 상대방의 내면의 모습을 잘 살펴야 합니다."
필자는 이런 주제를 착한 주제라 한다. 누구나 반론의 여지가 별로 없고 적어도 공개 석상에서는 상당수가 동의할 수밖에 없는 주제이다. 혹자는 위 소개팅 착한 주제에 대해 이렇게 반박할지 모른다. "무슨 소리냐! 소개팅은 전적으로 외모 평가이며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면은 보지도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적어도 공개 석상에서는 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이런 착한 주제로 주장하는 글 쓰기는 수월하다. 글은 누군가에게 의견을 설득하는 것이 목적인데 설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즉 설득할 필요가 없는 착한 주제는 쓰나 마나 한 결론이 도출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런 착한 주제로 쓰인 글이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글 쓰기가 어렵게 느껴질수록 혹은 글 쓰기가 익숙해져 매너리즘에 빠질수록 착한 주제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필자는 소개팅에 대해서 차라리 아래와 같은 주제가 더 좋다고 생각한다.
"소개팅에서는 외모가 다입니다. 따라서 소개팅에서 잘 안되시는 분들은 외모가 매력적이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따라서 안된다고 무조건 소개팅을 나가는 것 보다 외모를 가꾼 다음에 나가는 것이 효과적일 것입니다."
이 주제는 바로 논란이 생길만하다. 다소 극단적인 예시였지만 차라리 이런 주제가 훨씬 더 좋다.
왜냐하면
첫째. 무엇보다 읽을 맛이 난다. 필자의 개인적 주관이 고스란히 담긴 글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교과서에서 나올 이야기보다 글 쓴이의 생각을 알기 위해서 읽는 것이다.
둘째. 다소 도전적인 이런 주제의 주장은 보다 엄밀한 근거를 찾게 만든다. 소개팅과 외모의 상관관계, 소개팅에서 어필하는 외모에 대한 정의, 외모를 가꾼다면 어느 정도까지 가꿔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 기준 등 근거 자료가 없으면 위 주제에 대해 쓸 수 없다.
셋째. 글쓰기의 내공이 높아진다. 글씨 한자, 문장 한 줄, 근거 하나 면밀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또한 주제에 대해 갑론을박이 나왔을 때 이를 대응하면서 해당 주제에 대한 논리가 강화되고 더욱 디테일하게 생각하게 된다.
필자는 무조건 자극적인 주제를 쓰자는 것이 아니다. 나쁜 주제를 넘어 글쓴이 스스로가 소화를 못 시킬만한 자극적인 주제에 대해 쓰는 것은 분명 경계되어야 한다. 다만 "못 쓴 글보다 뻔한 글이 가장 안 좋다"고 생각한다. 독자가 글을 다 읽고 허무한 기분으로 So what? 이란 반응 대신 Oh What! 이란 감탄을 하게 하자.
주제 정하기는 그 감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첫 걸음이다.
By 건조한 글 쓰기. 정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