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까칠함과 의심을 입는다.
안녕하세요? 건조한 글 쓰기 정연승입니다. 이전에 '천사'가 글 쓰기의 처음과 끝에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간략히 내용을 정리하면,
글 쓰기 처음에는 소재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필요합니다. 글 쓰기 마지막에는 본인 결과물에 대한 자신감과 자존심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글 쓰기의 처음과 끝에는 매사 긍정적이고 결과에 대해 낙천적인 '천사'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처음과 끝에 천사가 있다면 악마는 중간에 있겠지요? 글 쓰기에서 소위 '악마 마인드'가 왜 필요하고 또 어떻게 쓰이는지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악마 마인드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볼까요?
전편과 마찬가지로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혹시 주변 지인 중 타인의 의견을 까칠할 정도로 의심하면서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으신가요? 친구가 점심시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크기가 A4용지만 한 돈가스 집이 있는데 가격이 5000원밖에 안 한데"
악마 같은(?) 지인은 이런 반응을 보일 겁니다.
"에이.. 어떻게 돈가스 크기가 그렇게 커? 그리고 주변 돈가스 집이 대부분 8000원 이상인데 진짜 5000원밖에 안 한다면 고기에 문제가 있는 집일 것이야."
직장에도 이런 악마는 있습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편집장 미란다 프리슬리와 같은 느낌일까요? 일 할 때의 느낌은 영화 속 그녀와 비슷합니다. 앤 해서웨이의 '그냥 파란색 니트'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편집장 미란다는 이렇게 말했죠.
'넌 그냥 네 옷장으로 가서 그 미련스러운 파란색 스웨터를 골라 들었겠지.
옷 따위에 신경 쓸 틈 없는 진지한 인간이라는 걸 세상에 증명하고 싶어서 말이야.
하지만 네가 모르는 사실은, 그 파란색이 그냥 파란색이 아니라는 거야.
그건 파란색 중에서도 터키즈(Turquoise) 색이 아니라 정확히는 세룰리 언(Cerulean) 색이지.
2002년에 오스카 데 라 렌타가 세룰리 언색 이브닝 가운을 발표했고, 다음에는 이브 생 로랑이 세룰리 언색 군용 재킷을 선보였지.
그러자 세룰리 언색은 급속하게 퍼져나가 8명의 다른 컬렉션에서도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백화점을 거쳐서 네가 옷을 사는 그 끔찍한 캐주얼 코너로 넘어가게 된 거지.
네가 입고 있는 그 파란색은 셀 수 없이 많은 일자리와 수백만 달러의 재화를 창출했어.
그러니까 근본적으로 너는 여기 패션계의 사람들이 골라준 색깔의 스웨터를 입고 있는 거야.'
-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중-
악마의 특징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냉정하고 까칠하게 받아들입니다. 그게 설령 본인의 일이라 할지라도 그렇습니다. 원인이 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 결과를 믿지 않습니다. 본인이 한 일에 대해서도 남이 한 일처럼 까칠하게 평가하는데 타인의 일에 대해서도 관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분위기를 냉랭하게 만드는 의견을 자주 내곤 하죠. 계획은 치밀하되 실행은 조심스럽습니다. 일에 실패할 때 그 이유를 남에게서 찾지 않으며 본인의 계획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일의 원인과 결과가 본인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신에게 행운을 바라지 않습니다. 덕분에 스트레스는 온전히 본인이 감당합니다.
제 주변에는 잘 보이지 않는데 어떠신지요? 까칠하고 부정적인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글 쓰기의 악마는 원인과 결과를 본인이 모두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기준이 매우 높습니다. 뭔가 고고한 느낌마저 드네요. 개인적으로 이런 마인드가 많은 분을 상사로 모실 때 최고인 것 같습니다. 평소에 너무 피곤하려나요?^^
이런 악마의 마인드는 글 쓰기 중간에 필요합니다. 아이디어 발산을 통해 다양한 소재를 펼쳐놨다면 고고하고 까칠한 악마가 이를 판별하는 것이죠. 소재별 퀄리티도 중요하지만 전체 이야기 속에서 필요 없는 소재라면 철저히 버립니다. 전에 천사 편에서 '취업에 성공하는 법'을 예로 들었습니다. 취업에 성공하는 법에 대한 글을 쓴다고 할 때, 그 방법에 대해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면접관께 커피 사드리기, 본사 건물에서 큰 소리로 인사하기, 리젠트 헤어로 단정하게 꾸미기, 만년필로 필기하기 등등 수많은 아이디어가 있겠지요. 악마는 까칠하잖아요? 차가운 정색과 함께 소재를 추리기 시작합니다.
먼저 '취업에 성공하는 법'이라는 주제를 쪼개서 분석합니다.
"취업의 정의가 뭐지? 회사에 들어가서 월급 받는 것이 취업인가? 아니면 돈에서 자립하는 것이 취업인가?"
"성공했다는 기준은 뭐지? 본인이 만족하면 성공인가? 아니면 최소 기준이 있는 것인가?"
"취업에 다 쓸 것인가? 아니면 면접에 집중해서 쓸 것인가?" 등등..
취업에 성공하는 법을 쓰는데 참 따지는 것도 많죠? 이런 디테일에 악마가 숨어있는 것입니다. 상세한 고민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글을 쓰면서 중언부언할 확률이 높아지죠. 더군다나 글을 읽는 입장에서 글 쓴이와 취업 성공의 기준이 처음부터 다르다면 글 자체를 아무리 잘 썼어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주제를 잡는 방법에 대해서는 앞선 글에서 설명했습니다. (1) 나쁜 주제를 선택하자 (2) 주제를 한 줄로 요약해보자 (3) 누울 자리를 보고 뻗는 주제를 선택하자 였는데요. 조만간 주어진 주제를 본인 것으로 재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지금은 글을 쓰는 자세에 대해서만 보겠습니다.
'취업에 성공하는 법'이라는 주제를 '대기업 면접에서 합격하는 전략'으로 재 정의한다면 이 기준으로 초기 아이디어를 걸러냅니다. 예를 들어 면접관님께 커피 사드리기는 대기업 면접관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요? 찬성과 반대가 공존할 것 같습니다. 제 사견으로는 큰 회사일 수록 이러한 개인적 행위를 곱게만 보진 않을 것 같네요. 이 아이디어를 살리려면 긍정적인 어필이 가능하다는 근거를 충분히 나열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불식시킬 수 있어야 하죠. 긍정적인 부분을 부정적인 부분을 상쇄할 만큼 크게 설득할 수 있다면 이 아이디어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자신 없다면 일찌감치 탈락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아이디어를 냉정하고 까칠하고 의심 많은 눈초리로 판별하는 것. 결국 점차 글의 설득력을 높이고 체계를 갖추는 것. 그것이 글 쓰기에서 악마의 마인드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야누스적인 마인드에서 글을 쓰는 법에 대해서 한 가지 팁을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자주 쓰고 스스로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방법입니다.^^ 바로 일종의 대화법입니다. 천사와 악마의 대화인 것이죠. 천사의 아이디어를 악마가 부수는 형식입니다.
만년필로 필기하는 것이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천사의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이를 부수기 위해서 악마는 말합니다.
"만년필로 필기하는 것이 취업과
무슨 연관성이 있는데?"
이에 천사가 이렇게 응수합니다.
"면접관에게 첫인상은 매우 중요해.
필기를 만년필로 하는 모습은 뭔가
전문적인 느낌을 줄 수 있어"
악마는 다시 묻습니다.
"만년필을 사용하는 것과 전문성과
무슨 관계가 있지?
저렴한 연필을 사용하는 사람은 전문성이 떨어져 보인다는 말이야?"
이에 천사가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합시다. 악마가 이겼고 아이디어는 채택되지 않거나 반론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야 합니다. 이 대화법에 대해서도 조만간 자세한 설명을 드리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야누스적 글쓰기 편을 마무리하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처음과 끝에 천사가 중간의 악마를 감싸는 모습을 생각하세요. 참신하고 멋진 글일수록 악마와 같은 까칠함과 의심, 그리고 작가의 스트레스가 집약되어 있을 것입니다. 베스트셀러 작가 중에 줄담배를 피는 분이 많은 게 이유는 이 악마 때문은 아닐까요?^^
사진 출처-다음 영화 포토[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