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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조한 글쓰기 Feb 06. 2017

독서 감정기#1 -  숨결이 바람 될 때

멀리 있는 죽음이 보내는 단순한 질문에 대해서

들어가기전: 본 글은 (숨결이 바람 될때 - 폴 칼라니티 저)를 읽고 쓴 소감입니다. 개인적 소회를 풀다보니 책 내용의 일부가 있습니다. 또한 본 글이 저작권 위반 사항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삶은 가깝고 죽음은 멀다.

그래서 삶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지만 죽음에 대해 철저히 무시한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아는 것에 대한 집착이고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죽음은 살아있는 우리가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망각하는 쪽이 편하다. 현대인은 편한 쪽을 택했다. 탄생은 화려하고 죽음은 사라졌다. 거리의 시체에서라도 자연스럽게 목도했던 죽음을 이제는 찾을 수 없다. 90% 이상은 병원에서 삶을 맞이한다.


평생 모은 재산의 70%를 임종 전 1년간의 의료비, 수술비로 지출한다는 통계가 있다. 죽는 순간의 의료비를 위해 지금도 일하는 중일지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있는 삶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한다.


77년생 미국의 폴 칼라니티는 유망한 의사였다. 그리고 꽤나 솔직한 사람이었다.


나는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에서 일생을 보낸다면 연민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스스로의 존재도 고양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 숨결이 바람 될 때 , p105


마치 경영 컨설턴트가 스타트업 창업가에게 옆에서 조언하면서 파산의 리스크는 없으면서도 사업의 냉정함을 배우겠다는 태도이다. 죽음에 대해 알고 싶지만 죽을 수 없기에 그것과 가장 가까운 의사라는 직업을 택한 것이다.


36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폐암은 예상하기 힘든 전개이다. 갑작스러운 죽음과의 대면은 그의 삶을 일순 바꿨다. 망가뜨렸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삶에 대한 고찰은 없고 살고싶다는 욕망만이 남았다.


달리 어떠란 말인가 - p155


이 젊은 의사는 죽음의 저편은 몰라도 그 문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잘 알았다. 담당 주치의와의 대화에서 카플란 마이어의 생존 곡선에 대해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삶의 가능성을 통계로 설명하는 것이다. 아마도 "당신은 95%의 확률로 3년 정도 수명이 남았습니다." 정도의 뉘앙스가 아닐까. 폴 칼라니티는 이 정보를 알고 싶어 한다. 객관적 정보를 바탕으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주치의는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진부한 표현 외에 더 적절한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95%의 죽을 확률과 5%의 살 확률은 같은 말이다. 그러나 이들에겐 전혀 다른 말이다. 95%의 죽을 확률은 당장의 살아있는 시간을 죽인다. 5%의 살 확률은 나중에 죽은 후의 시간을 살린다. 작가 역시 치료 중간에 예후가 다소 좋아지자 평소의 삶으로 잠시 돌아갈 수 있었다. 암 발병을 알기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10시간 이상의 수술을 집도했다. 암 발병을 알고 한 달간 급속히 몸이 망가졌다. 암 전개에 대한 검사 결과 후 곧 몸이 좋아졌다. 미래에 대한 희망은 몸과 삶을 지배한다.


작가는 죽음이 다가오면서 그 소회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공감된다.


나는 나 자신의 죽음과 아주 가까이 대면하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 p161


불편한 이야기를 하자면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 죽고 있다. 내일도, 모레도 그럴 것이다. 충분히 살다 가는 삶이 있겠냐만은 갑작스러운 죽음도 있을 것이고 예상한 죽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당장의 유한한 삶이 찬란하다. 작가는 주어진 유한한 시간을 체감하면서 무기력해졌고 너그러워졌다.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문장에 대해 불편해했다.


미래 시제는 공허해 보이고 다른 사람들이 입에 올리면 귀에 거슬린다.
- p232


애써 외면한 시간의 유한함에 대해 눈을 뜨게 한다. 그것도 누구도 준비가 안되어 있는 상태로 급작스럽게 말이다. 자칫 허무주의와 원망만이 남을 수 있는 이때, 폴 칼라니티는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여느 때처럼 나는 통증을 느끼며 깨어났고, 아침을 먹은 다음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에 대한 응답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오래전 학부 시절 배웠던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 p179

삶은 발산의 신이고, 죽음은 수렴의 신인 듯하다. 찬란하게 시작한 삶이 죽음이 다가올수록 우리가 가진 문제를 단순화시킨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찾아내야 해요' - 주치의가 작가에게 - p197


돌이켜보면 돌잔치 때도 우리 모두 이런 질문을 받았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게 뭐지?'

누군가를 실을, 누군가는 돈을, 누군가를 연필을 잡았다.

돌이켜보면 입시 때도 우리 모두 이런 질문을 받았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게 뭐지?'

주어진 점수 안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했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졌다.


눈을 감는 순간에도 우리 모두 이런 질문을 받을 것이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게 뭐였지?'

그 순간 중요했던 무엇인가가 선명하게 떠오른다면 가장 중요한 답을 찾은 사람이고 좋은 인생이었을 것이다.


저자의 답은 딸 케이디였다. 투병 중 어렵게 얻은 딸이고 본인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태어난 딸이다.

우리도 계속될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무엇인가를 죽기 전에 찾길 바란다. 그의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쓴다.

 

RIP Paul kalanithi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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