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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조한 글쓰기 Mar 17. 2017

독서 감정기#2 - 인에비터블

디지털 트렌드의 인문학적 해석

들어가기 전: 본 글은 (인에비터블 - 케빈 켈러 저)를 읽고 쓴 소감입니다. 개인적 소회를 풀다 보니 책 내용의 일부가 있습니다. 또한 본 글이 저작권 위반 사항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 날을 예측한다는 것처럼 허망한 일도 없을 것이다. 특히나 급격히 변화하는 디지털 생태계를 전망한다는 것은 더욱 그렇다. 다만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대략의 흐름을 잡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케빈 켈리의 인에비터블은 이 흐름을 집어낸 책이다. 그래서인지 디지털 트렌드 책이라고 하기엔 인문학 서적에 가깝다.

저자 케빈 켈리는 과학 기술 잡지 '와이어드'의 공동 창간자로 유명하다. 그도 디지털 트렌드의 예측이 어려움을 인정하며 특히 기술적 부분의 예측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의견이다. 대신 큰 흐름, 책에서는 불가피성(인에비터블)이란 용어로 설명한다. 불가피성은 현재 지속되는 기술 발전이 일으키는 관성이다. 물론 이러한 관성은 혁신적이고 불연속적인 사건에 의해 그 방향성이 달라질 수 있다. 학창 시절 내내 평균 50점을 받았던 학생의 수능 점수는 관성의 영역이다. 그 학생도 특정 분야에 천재적 능력이 어느 날 갑자기 발견되었다면 입시의 방향성이 달라진다.


책의 목차는 인문학 서적에 가깝다. 제 1장 '되어가다'부터 '인지화하다', '흐르다', '화면보다', '접근하다' 등 12개의 동사로 불가피성을 해석한다. 디지털의 미래를 인간의 행위와 연결하여 찾으려는 접근이 신선하다. 동시에 인간과 기술에 대한 깊은 통찰이 목차에 묻어있다. 참고로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바를 목차 순서와 관계없이 아래에 적는다.




모든 것은 무엇인가로 되어 가고 있다. 당연하다. 그러나 최신의 것들은 무엇인가로 되는 것 같지 않다. 그 자리에 그 상태로 영원할 것만 같다. 도무지 앞을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스마트 폰 이후의 통신 수단을 상상하기 힘들다. 앞으로 최소 십 년은 스마트폰을 쓸 것만 같다. 2008년 일반 터치폰이 큰 인기를 끌 때도 당분간 그 인기가 지속될 것 같았다. 당장 1년 뒤 몰려올 스마트폰을 상상하지 못한 채 말이다. 따라서 현재를 사는 우리는 미래 조망에 대해 좀 더 유연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센서가 주변 여기저기 널려있는 IoT 시대이다.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를 클라우드 컴퓨팅을 활용하여 군집과 분석을 실시간 처리한다. 여기에 결과 데이터를 결합시키면 일련의 시나리오 예측이 가능하다. 즉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은 변수의 조합으로 시작할 수 있다. 맨 땅에 헤딩하며 노하우를 쌓을 필요가 없다. 그저 남이 쌓은 데이터를 이용하면 된다.


이러한 시대에서 인간은 기계의 효율성을 넘어설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기계가 낸 결과값대로 수행하는 게 성공을 약속하는가? 과거에 작곡가 주형훈 씨가 어느 토크쇼에서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노래에는 어느 정도 패턴이 있다는 이야기가 기억난다. 이렇듯 기계에게 히트곡의 패턴을 익히게 하고 그 요소 중 인기와 상관도가 높은 조합으로 곡을 낸다면 성공할 것인가? 필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선 과정(곡 요소)과 결과(인기) 간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 인기는 인간의 선택이고 그 선택은 불확실성의 기반에 있기 때문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빅 히트 후 그 성공 요인을 찾아내는 것만큼 억지도 없다. 정답이 있는 곳에는 기계의 세계가, 선호가 있는 곳에는 인간의 세상이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이미 우리 주변에는 데이터를 비롯하여 각종 정보가 무수히 흐른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인간은 결정한다. 그 사이클이 쌓이면서 신뢰도가 높아지고 그 결과도 최선이라는 믿음이 자랄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실수가 용인되는 마지막 세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선택이란 행위가 갈수록 스트레스가 되는 시대이다. 결혼 준비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너무 다양한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각 선택별 후보지도 너무나 다양하다. 당장 드레스를 고르려 해도 몇 가지 요인을 고려해서 선택한다. 그뿐인가? 식장, 신혼여행, 집부터 TV 크기, 소파 재질 등이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따라서 자연스레 최적화된 콘텐츠와 서비스를 찾아주는 필터를 원한다. 풍요는 선택의 신을 만들었다. 그러나 AI 알고리즘 기반 최적화가 인간의 진보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다양한 선택지에서 최선의 것을 선택하는 의사결정은 인간이 하는 최고의 지적 활동이다. 정보를 통합하여 새로운 결론을 내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최고 지적 능력이 자칫 떨어지진 않을까 걱정이다.


더구나 쉬운 선택은 삶을 단순화시킬 것이다. 과거 데이터를 근거로 추천하기 때문에 보고 싶은 내용만 보여주게 된다. 대하소설만 구입하던 사람에게 경제학 이론서를 추천하진 않는다. 이를 책에서는 과적합이라 하며 경계한다. 그러나 최근 서비스는 거의 대부분 사용자가 선호하는 것을 더 선호하게 만든다. 아쉬운 점은 우연히 접하게 될 전혀 다른 분야의 경험을 놓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전혀 다른 영역의 콘텐츠를 제공하면 될까? 익숙한 것을 보여주며 서비스에 Lock-in 하기도 벅찬 현실에선 다소 낭만적인 이야기 일 수 있다.


그렇다면 최적화란 무엇인가? 그리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은 그렇게 생산적이지 않다. 최적화된 생산성, 효율성을 강조하는 현대 디지털 사회가 과거 테일러리즘과 유사하게 느껴진다.

 

디지털 세계에서의 소비는 선택과 함께 즉각적이다. 과거 저장&플레이 방식에서 실시간 스트리밍 방식으로 변화했다. 소비하는 콘텐츠가 잘게 쪼개져 있어 자유롭게 원하는 만큼만 소비한다. 동영상도 1분만 소비하는 시대이고 책도 A4용지 1장으로 압축된 줄거리만 소비하는 시대이다. 콘텐츠가 통째로 소비되던 시대와는 다르다. 따라서 과거에는 디바이스 또는 플랫폼에 맞게 콘텐츠의 형태를 바꿨다. 전자책에 맞게 책의 구성을 변화시켰다. TV에 맞는 콘텐츠가 있었고 영화에 어울리는 콘텐츠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콘텐츠에 맞는 디바이스를 개발하고 소비한다.


필자는 콘텐츠 자체의 분절성 때문이라 생각한다. 예전의 문화 소비는 하나의 큰 장난감이어서 전체 완성도는 높을지 모르지만 그 장난감이 지겨워지면 다른 것을 사야 했다. 지금은 레고 블록처럼 분해하여 재 생산하면 된다. 더군다나 누군가가 조립 설명서를 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소수의 전문가의 시대에서 대중의 지성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화하는 것이다. 혹자는 대중의 지성이 검증받지 못한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 또한 대중의 집단 지성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 속 수많은 전문가가 그것을 바로잡기 때문이다.


정리하자. 앞으로 콘텐츠, 데이터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이 증가는 그것들이 가진 속성이 분절적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우리는 많은 것들 중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자. AI라는 선택의 신이 있다. 내가 좋아했던 것들 그리고 효율성이 가장 높은 선택을 해준다. 다만 삶의 단순화, 수동적 선택 그리고 그에 따르는 불필요함에 대한 지나친 경계가 두렵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인생을 낭비하고 싶을 때가 있을 테니 말이다.


From. 건조한 글쓰기 - 정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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