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울 자리를 보고 뻗어라
주제 정하기 벌써 마지막이다. 앞서 주제 선택 방법과 선택 주제를 한 줄로 요약하는 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끝으로 채택한 주제가 타깃(Target) 독자와의 교감을 만드는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옛말에 '누울 자리를 보고 뻗으라'는 말이 있다. 글도 마찬가지다. 누울 자리를 보고 글을 써야 한다. 그 주제가 아무리 매력적이고 명확해도 타깃 독자와 교감을 이룰만한 것이 아니면 원하는 반응을 끌어내지 못한다. 오히려 뜻하지 않은 반응으로 난감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하나씩 짚어보자. 우선 글을 읽을 타깃 독자를 설정해야 한다. 보고서라면 상사, 논술이면 대학 채점관, 연애 편지라면 애인이 되겠다. 이 정도 수준의 타깃 독자 설정으론 곤란하다. 소위 '성향 파악'이 필요하다. 만약 필자가 언론의 정치부 기자라 가정해보자. 타깃 독자를 단순히 신문 구독자 정도로 설정하면 안된다. 해당 언론과 주 독자층의 정치적 성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감성적이다. 제 아무리 정의롭고 진실된 사실이라 해도 정치적 성향이 달라 감정적 공감을 이끌어내지 않으면 소용없다. 대신 독자는 이런 반응을 나타낼지 모른다.
그래 당신 말 다 맞는데, 왠지 당신 마음에 안 들어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A기업의 전년도 마케팅 실적 대비 올해 실적이 안 좋았다. 평소 하면 된다의 정신으로 무장한 CEO는 실적 악화 이유에 대한 분석을 지시했다. 이에 부하 직원이 이런 보고서를 썼다고 해보자. “올해 실적이 안 좋은 이유는 환율 약세에 따른 글로벌 환경 악화와 고질적인 내수 부진의 영향 때문입니다.” 자. 어떤 반응이 예상되는가?
분석이 아니라 열심히 안 해놓고 핑계 대고 있군.
사장의 경영 철학인 '하면 된다'를 고려하지 않은 경영 전략 분석은 위와 같은 처참한 반응을 가져온다. 다시 써오라는 피드백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인지 부조화 이론이란 것이 있다. 심리학 이론으로 두 가지 이상의 반대되는 믿음, 생각, 가치를 동시에 지닐 때 또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과 반대되는 새로운 정보를 접했을 때 개인이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나 불편한 경험 등을 말한다. 즉 믿고 있던 것과 다른 정보를 접했을 때 스트레스를 받으며 이를 회피하기 위해 정보를 회피하거나 부정한다는 것이다. 사이비 종교 집단 내 교주의 명백한 부정과 비리가 밝혀졌음에도 애써 진실을 부정하는 사람하고 오히려 교주를 감싸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 않은가?
이는 글을 읽는 독자도 다르지 않다. 따라서 타깃 독자를 보다 면밀히 분석하고 그에 맞는 글 쓰기 주제를 골라야 한다. 하면 된다 CEO에게 맞는 글 쓰기는 영업 환경이 A사에 끼친 영향이 아니라 '영업 실적 향상을 위한 직원 정신 교육'이 보다 적합한 주제였다. 설령 외부 환경 변화로 인해 구조적인 문제가 정확한 주제라 할 지라도 말이다.
독자 비위에 맞추는 글을 쓰자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타깃 독자의 성향에 위배되서는 안되다는 것이다. 글을 통해 타인을 움직이려면 먼저 그 사람의 마음을 사야 한다. 독자의 아픔을 찌르는 글을 써야 할 때도 많다. 이 때도 아픔을 바로 찌르지 말고 성향을 파악해서 찔러야 한다. 그래야 듣는 사람의 마음에 울림이 있을 수 있다.
최소한 타깃 독자의 성향에 위배되서는 안된다
하면 된다 CEO에게 영업 환경의 악화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영업 환경 악화로 인해 직원 사기가 저하되었고 이것이 영업 실적으로 연결되었다. 따라서 직원 사기 진작 차원에서 영업 인센티프 확대가 고려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영업 환경 변화와 판매 인센티브 구조 개선 제언'으로 보고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중국 법가 사상가 한비의 제왕학인 한비자에서 가장 먼저 언급하는 내용이 "임금에게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라"이다. 쉽게 말해 누울 자리를 보고 뻗으라는 내용이다. 읽히지 않거나 글쓴이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반감을 불러 일으키는 글이라면, 굳이 어렵게 고민해서 글 쓰기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글 쓰기는 독자와의 교감이 목적이다. 이를 항상 염두하고 주제 선정의 최종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By 건조한 글 쓰기. 정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