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라 글쓰기 19기] 12일 차 글쓰기
언젠가 쓰겠지 하며 집안 한구석에 쌓아둔 물건을 떠올려 본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비워야 하나 싶은데,
비울 수 없는 물건들만 자꾸 떠오른다.
첫 번째, 편지 박스다.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에게 받은 편지들을 모아놓은 박스다. 어디에 둘까 고민하다가 딸아이 침대 밑, 빈 공간에 깊숙이 보관해 두었다. 꺼내지 않은 채 몇 년이 흘렀다.
왜 이 편지들을 버리지 못하는가.
편지를 써준 사람들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위로와 격려가 가득 담겨 나를 살린 글이기 때문이다.
나의 계획은 이것이다.
언젠가 시간이 아주 많이 생겨서, 할 일이 없이 심심해 죽겠다는 마음이 들 때, 그때 하나씩 다시 펼쳐서 읽어볼 생각이다. 이런 날이 오긴 오려나 싶다. 70세 정도면 여유가 생기려나. 요즘 70세 어르신들도 쌩쌩하고 너무 바쁘던데.. 나 역시 열정 넘치게 살지 않을까.
그럼 80세? 아님 90세? 그때쯤 여유로운 시간이 생기려나.
아무런 할 일이 없는 때가 되면 그때 편지 박스를 열고, 하나씩 읽어보면서 추억을 떠올리고 싶다. 그리고 인상적인 편지를 쓴 사람에게는 답장을 보낼 계획이다. 그 편지가 닿을지 안 닿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면서 내 인생을 돌아보고,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는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이것은 내 인생 계획 중 가장 최장기 계획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이 편지 보관박스는 절대로 버릴 수가 없다는 사실..
하지만, 언제까지 그 박스를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을 수 있으려나.
곰팡이가 생기진 않았으려나 걱정이 되기도 하네.
조만간 한번 박스를 열어보기는 해야겠다.
두 번째, 화선지, 켄트지 세 박스 정도 있다.
한참 캘리그래피에 빠져 먹과 붓을 들고 글씨를 쓰겠다고 열정을 부렸던 시기가 있다. 종이 욕심이 점점 커져서 동네 문방구에서 사는 종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고급 종이들을 화방에서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때 사들인 화선지와 먹, 종이들이 베란다 한쪽 구석에 있다. 화선지도 초등학생들이 쓰는 문방구 화선지와는 결 자체가 다르다. 먹이 스며드는 맛이 있다.
요새는 붓을 들 여유가 없어서, 아니 붓을 빨고 관리할 여유가 없어서 글씨 쓴 지는 몇 년이 됐다. 지금은 붓 펜조차 들기 힘들다.
요즘은 글 쓸 시간도 부족하니, 글씨 쓰기에 마음 내기가 어렵다.
아, 종이들이 습기를 먹으면 안 되는데, 이 또한 한번 열어봐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이 또한 언젠가 다시 붓을 들리라, 그림을 그리리라 하는 마음으로 버리지 못하고 있다. 지금 안 쓸 거면 다 버리라는 남편의 압박이 있지만 아직까지 사수 중에 있다. 오히려 지류 박스를 사야 하나 싶을 정도로 종이를 소중하게 보관하고픈 마음이 든다.
이 또한 여유 생기면 다시 글씨를 쓰고픈 마음이다.
세 번째, 피겨와 인형 박스다.
공룡 피겨, 동물 피겨, 인형 등을 베란다 장 안에 작은 리빙박스부터 큰 리빙박스까지 5박스 정도 모아 뒀다.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것부터, 다른 친구네 집에서 처분한다고 해서 가지고 온 것들도 있다.
이걸 왜 베란다 장에 모아두었는가 하면,
언젠가 상담소를 내야지 하면서 모아둔 물건이다.
어린이 상담을 위해서는 피겨, 인형이 많이 필요하다.
하하하.. 언제 상담소를 개소할 수 있을지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이렇게 쓰다 보니, 시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하나 싶다.
50세로 잡을까?
상담소를 열고, 피겨를 장에 꽂아둘 내 모습을 상상한다.
아이들과 피겨를 가지고 상담해야지.
이렇게 집에 있는 물건들 중에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떠올리다 보니
자리도 차지하고,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이 떠올랐다.
그동안 잠시 잊고 있던 추억과 꿈도 되살아났다.
지금 쓰지도 않으면서 가지고만 있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어 버려야 하나 싶지만,
버릴 수 없는 물건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물건에 담긴 나의 추억, 꿈,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꼭 버려야만 하는 건 아니다.
그 안에 담긴 나의 시간과 꿈을 내 가슴에 포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