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걱정 속에 사는 사람에게
"엄마가 집 사준대"
와.. 부럽다. 졌다.
Y가 툭 던진 말에 나와 친구들은 Y 어머니 딸을 하고 싶다며 앞다투어 말했다.
하지만, 정작 Y는 울상이다. 걱정과 근심이 가득하다.
우리들이 오히려 옆에서 성화다.
"뭐가 걱정이야? 그냥 어머니께 받아! 감사한 일 아니야?"
하지만, 친구는 영 마음이 편치 않은가 보다.
남일이라고 쉽게 얘기하지만, 다 헤아릴 수 없는, 각자만의 고충과 어려움이 있다.
우리는 고등학교 절친 4인방이다. 이제는 흩어져서 인천, 대전, 양평, 양주에서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사회적으로 역할을 하며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잘 살고 있다. 멀리 살다 보니 1년에 한 번 다 같이 모이기도 쉽지 않다. 오랜만에 송년 모임으로 만났다.
그동안 쌓인 이야기들을 끝도 없이 나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지독한 불안으로부터 마음을 어떻게 편안하게 해야 할지,
투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지,
사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직장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앞으로의 무슨 일을 할지,
자식 공부를 어떻게 시켜야 할지,
평안하고 행복하기만 한 인생은 없다. 다 각자 나름대로의 고민과 걱정이 있다.
돈을 1억 벌게 된다고 해도 2억 가지고 있는 사람이 부러워질 테고,
매출 500만 원이 된다고 해도 천만 원인 사람이 부러울 테다.
퇴사를 한다고 해도 다시 일하고 싶어질 테고,
자녀 대학을 진학시키고 나면 취업을 어디 될지 고민이 커질 테다.
우리는 평생 여러 다양한 고민 속에 살아간다.
한고비 넘기면 또 다른 고민이 찾아온다.
고민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불안과 걱정은 때로는 무겁고, 피하고 싶지만 그것 덕분에 우리는 더 나은 삶을 꿈꾸고 더 좋은 선택을 생각하도록 이끌어주니까.
불안, 고통 없는 인생은 없다.
힘들고 어려운 게 인생살이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행복은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내 마음의 상태에서 비롯된다. 집을 얻고, 돈을 벌고, 지위를 높이는 일은 잠시 만족을 줄 수 있지만, 또 다른 갈망을 일으킬 수 있다. 또 다른 것을 찾아 헤매게 되는 게 인간 본성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작은 기쁨과 감사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게 필요하다. 지금 내가 있는 이 현실에서 행복과 감사를 발견할 수 없다면, 다른 곳에서도 행복을 느낄 리 만무하다.
저 멀리 어딘가에 행복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찾아 헤맬 터이니.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이미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다. 힘들고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살아가는 힘,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는 힘, 지루하고 따분해 보이는 인생 속에서도 작은 기쁨을 누리는 힘. 이런 크고 작은 이들은 내 삶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 된다. 결국 내 안에 모든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그제야 내 삶은 빛나기 시작할 테다.
내 인생에서 가장 지속적인 행복은 사회가 정해준 조건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돈, 학위, 직위, 직업, 물질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내 마음 상태에서 비롯됐다. 이를테면, 술을 끊고 주변 사람들에게 더 잘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내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였을 때, 그리고 나보다 더 큰 힘과 연결됨을 느꼈을 때, 그 힘이 서부 텍사스의 시인 테리 앨런이 말한 대로 "저 높은 곳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내 안에 들어앉아 있음"을 깨달았을 때, 감히 생각하건대 행복이 바로 여기 내 안에 들어앉아 있다는 깨달음이야말로 마음 챙김의 한 가지 모습이 아닐까? <편안함의 습격> 마이클 이스터, 수오서재 31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