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홀씨되어 하나의 꽃을 피우리
무슨 말을 할지 훤히 보이는 산문도 쓰기 어렵다.
시 쓰기는 아직 엄두도 낼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 가는 게 중요하다.
꾸준히 매일 쓰는 연습이 필요하다.
오르막길이더라도 천천히 걸어가 보자.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평지도 만나게 되고, 조금 편하게 걷게 될 날도 올 테니.
그리고 발걸음 닿는 대로 걷다 보면 도착하게 된다
언어는 등불이다.
삶을 비추고
생각을 비추고
행동을 비춘다.
글을 쓰고 발행하는 순간,
그 글은 신발을 신고 어디론가 달려간다.
어느 누구의 마음에
닿을지 알 수 없다.
며칠 전, 어느 분이 블로그에 안부글을 남겨주셨다.
내 글을 읽고 조각조각 퍼즐 맞추듯 도움이 되었다며 감사인사를 남겨주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감사 인사에 글 쓰는 게 이렇게 감사한 일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민들레 홀씨가 바람을 따라 날아가서 어디에 자리 잡을지
얼마나 또 많은 꽃들을 꽃피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민들레 홀씨가 또 하나의 꽃을 피우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오늘도 글 한편 쓰면서 또 하나의 씨앗을 심어보자.
분명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게 될 테니.
86.
산문은 대낮에 평지를 걷는 것과 같아요.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훤히 보이니까요.
시는 밤에 등불을 들고 오르막길을 걷는 거예요.
가고 있다는 사실만 알 뿐, 앞을 내다볼 수가 없어요.
이때 등불은 언어겠지요.
시는 인생과 참 많이 닮았어요.
나중에 어떤 손자를 볼지,
언제 어디서 죽을지 알 수 없듯이,
시가 어떻게 끝날지는 시 쓰는 사람도 몰라요.
시는 언제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물어요.
그 물음은 윤리와 맞닿아 있고, 그래서 아름다운 거예요.
<불화하는 말들> 이성복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