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로피칼 오렌지 Jun 12. 2019

동남아와 성매매(2) 돈을 받았으면 서비스를 해야지

초면에 성접대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동남아시아에 살면서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이야기. 동남아와 성매매.


미국에서 한인들에게 사기를 당하거나 좋지 않은 일들이 많았기에 말레이시아 생활에서는 한인과의 관계, 특히 한인 이민자들에게 얽히지 않도록 유의했다. 모든 사람들이 나쁘다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특히 법적으로 도움을 받기 어려운 환경에, 가족과 떨어져 혼자 해외에서 지내려면 위험요소는 최대한 줄여야 한다.


왜 하필 한국식당이에요

당시 거주하던 아파트 1년 계약이 끝나기 전 2주 정도를 계약 연장하고 이사하기 위해서 에이전트와 만났다. 에이전트는 어차피 점심시간이니 함께 식사를 하러 가자고 제안했다. 에이전트와 함께 향한 곳은 한국 식당. 이전에 점심이나 저녁을 먹으러 종종 들렀던 곳이었다.


점심을 먹는데 로컬 중국인(말레이시안 차이니즈)인 에이전트는 식당 주인과 막역한 사이인 듯했다. 거주하던 곳이 한인이 많이 사는 곳이기도 해서, 에이전트는 한국인 고객이 꽤 많았다. 


밥을 먹으면서 식당 주인과 몇 마디 나누는데, 영어가 서툴어 나와는 한국어로 대화를 했지만 에이전트와는 몇 마디 나누지 못했다. 식사 도중 다른 한국인 손님이 한 명 더 들어왔는데, 역시 에이전트의 고객이었나 보다. 같은 테이블에 합석해 식사를 했다.


이게 화근이었다.


안 하면 죽어?


그 년이 돈을 받았으면 돈값을 해야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하는데, 마지막에 들어와 합석한 손님의 태도는 매우 불량했다. 어차피 나와는 관계없는 사람이다. 빨리 밥을 먹고 자리를 뜨자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된장찌개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에이전트와 나, 식당 주인은 모두 여성이었다. 그 손님 한 사람만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 갑자기 큰소리로 지난 주말의 무용담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아니 가라오케에 갔는데, 이년이 돈 받아쳐먹고 도도하게 구는 거야
아이 시발 돈을 받았으면 서비스를 해줘야지.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이년 저년 소리에, 성접대와 성매매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양 큰소리로 떠들어대기 바빴다.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에이전트 앞에서 저딴 개소리를 지껄이니 얼굴이 화끈해졌다. 성접대 업소에서 유흥한 게 뭐가 자랑이라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니면 내가 잘못된 걸까.


우리도 아가씨 쓸려고 했는데 싸가지가 없어서 원.


그야말로 가시방석.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왜 이 사람은 내 앞에서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 에이전트만 아니었다면 서둘러 계산하고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사장이 이렇게 말했다.


맞아요. 우리도 주재원이나 손님 접대 때문에 아가씨 고용하려고 했는데,
다들 얼굴이 이쁘면 싸가지가 없더라니까?
그래서 (아가씨) 못쓰잖아.


그동안 무시하고 덮어놓고 보지 않으려고 애썼던 시간들이 무색하게, 성접대, 아가씨, 가라오케, 주점... 듣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아무런 말에도 대꾸하지 않고, 맞장구를 칠 수도 없었다. 그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뿐.


서둘러 계산하고 식당을 빠져나오면서 매일 저녁을 해결하러 오던 이 곳이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내가 자주 가던 한식당에서, 회식을 했던 고깃집에서, 슈퍼 옆 노래방에서, 카페 건너 주점에서. 내가 다니는 이 길에서 매일같이 더러운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정말이지 목구멍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역겨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남아와 성매매(1) 무시하고 싶지만 무시할 수 없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