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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모래 Apr 20. 2020

남편의 반성문

4년 차 신남성의 생각

팝송만 들어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지만, 가사의 의미를 모르니 어느 순간인가 가요를 다시 듣고 있다.

(지금 나는 미국에서 지내고 있다.)


초록색 검색창에서 매일 같이 쏟아지는 코로나 기사들 속에서 이미 화제가 된 미스터트롯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임영웅”이라고 적힌 동영상이 어느 날 눈에 확 들어왔다.

제목을 보면 그냥 들어보고 싶은 노래, 그냥 보고 싶은 책이 있지 않은가?

바로 그런 제목 있였다.


그냥 좋은 노래였다. 아무 이유도 필요 없었다.

가사의 모든 구절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덕분에 원곡이 故김광석 선생님의 노래라는 걸 알게 되어서 다시 원곡을 들어보았다.

개인적으로 감정이 많이 몰입되는 건  임영웅 님이 부른 노래였다.

중간에 휘파람 소리에서 무엇인가 더 많은 울림이 있었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여운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출처:미스터트롯, 이 부분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자꾸 들어보니 아내에 대한 반성을 많이 하게 된다.

노래에 나오는 남편의 이야기처럼 내가 60이 되면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지금과 시대 차이가 조금 나는 이야기지만 그 의미는 충분히 느껴지기에 여러 가지 감정에 빠져들 수 있었다.


아내와의 많은 추억을, 좋은 기억을 간직할 수 있다면 좋을 거 같은데

나는 그럴 수 있을지, 그리고 그렇게 하고 있는지 고민에 빠져 들었다.


친구가 없는 나에게 가장 친한 사람은 아내이다.

하지만 가장 많이 싸우는 사람도 아내이고,

가장 미안한 사람도 아내이며,

가장 고마운 사람도 아내이다.

모든 자리에는 아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주 간단한 거 같은 의견의 조율이지만,

서로의 생각은 항상 두줄의 평행선으로 달리고 있다.

우리는 한 줄이 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미국에 와서 부부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한국에서 나이가 들은 대다수 아버지들은 가족들의 왕따 대상이다.

특히 사회적 직위가 사라진 아버지들은 더더욱 외톨이가 되어 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흔하게 보이는 모습이 노부부가 함께 하는 모습들이다.

마트에서, 공원에서, 산책길에서도 부부가 함께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세월이 흘렀는데 그렇게 다정할 수 없다.

심지어 보행이 불편한 남편을 챙겨가며 마트에서 장을 보는 할머니를 뵌 적이 있다.

아내에게 질문을 했다.

“혹시 내가 나이 들어 저렇게 불편해져도, 우리도 저렇게 다닐 수 있을까?”


내가 왜 이런 질문을 하였을까?

아마도 스스로 불안해서가 아닐까 싶다.

결혼을 하고,

아빠가 되고,

나는 아내에게 딱히 칭찬받을, 아내가 좋아할 만한 행동을 하지 못하였던걸 아마 나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늘 마음의 표현방법이나, 행동은 우리 부부에게 융합보다는 충돌과 분리가 더 많이 생길 때가 많은 거 같다. 함께한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융합이 아닌 분리가 되어 가는 느낌이라고 할까?

서로에게 많은 상처만 남기고 있는 거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잘못들을 생각하다 두 가지로 줄여보았다.

뭐 셀 수 없는 잘못이 많이 있지만 다 파생된 거 같아서 아주 축소하여 두 가지로 줄여봤다.


1. 회사생활: 가족과 건강을 잃어버리다.

누구보다 회사에 충실했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나에게 봉급을 주는 곳이고 그 돈으로 가족을 생활하게 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짧은 회사 생활이지만 누구보다 굵은 회사 생활을 했다. 나름 인정도 받았고, 진급도 빨리했다. 하지만 가족과 멀어졌고, 건강은 엉망이 되었다.


2. 부정의 집합체: 성악설을 믿는다.

 모든 생활에 부정으로 접근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성격이다.

인간은 본디 악하게 태어났다는 성악설이 가장 맞는 거 같다는 생각을 하고 살고 있다. 일을 할 때에도 모든 것의 문제점부터 생각을 하게 된다. 일상생활도 그러하니 나 자신도 피곤할 때가 있는데 가장 근처에 있는 가족은 얼마나 나로 인하여 힘들어했을까 싶다.

장점도 있는 접근 방법이지만, 사실 나 자신도 바꾸고 싶지만, 이상하게 불안한 생각에 쉽게 바꾸지 못하고 있다. 다만 많이 줄여나가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위와 같은 나를 보는 아내는 힘들었을 건데 난 그게 맞다고 생각을 하면서 꿋꿋하게 살아왔다.

다행히 나는 나를 나보다 걱정해준 아내의 배려로 멀어진 가족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회사를 그만두었고, 육아와 살림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아빠로, 남편으로 우리 가족에게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대한민국에서 남자는 직업이 없으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회의 시선이 따갑지만, 나는 벌써 4년 차 주부로 직업을 전환하여 "신남성"이라는 호칭으로 나 자신을 조금씩 인정해 나가고 있다.

 

아직도 한 없이 부족하고, 부딪치는 일들 투성이다.

하지만 앞으로 함께 해야 하는 시간을 생각하여 본다며 현명한 선택이었고, 고집쟁이인 나를 설득하여준 아내에게 고마움이 크다.


결혼 선배들은 이야기한다.

“져주는 게 이기는 거다.”,

“아내의 말을 그냥 들어라.”

”너는 집에서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된다. 무조건 OK 하면 된다.”

“회사의 고민은 집에서 티 내지 마라.”

이게 무슨 말인가 싶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고 하는데 이건 모순이 아닐까 싶다.


자꾸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에 대한 원망이 화로 쌓이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다 어느 날에 그들은 화산같이 폭발하지 않을까? 얼마나 모순된 행동인지 과연 그게 맞는 행동인가 싶다.


가족을 위해 살았지만, 가족들은 멀어지고

가족을 위해 희생한 자신에 대한 대가를 찾지 못해 그 원망과 화는 결국 미움이 되어, 서로 왕따를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여본다.


나의 선택이 정답은 아니다.

우리의 아버지들과 같이 열심히 사는 것이 정답이라고 믿고 살았지만,

그래서 아내와 아이에게서 멀어졌었고,

 과연 내가 아버지의 역할을 잘한 것인지 고민을 하였었다.

물론 돈도 많이 벌고, 가족에도 충실할 수 있는 아빠라면 아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건 생각보다 쉬운 선택지가 아녔었고,

아마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알고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나의 삶도 다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언제 가는 문제가 생겨도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내에게 나는 기억되고 싶다.

세월이 흘러 60대가 되고, 80대가 되었을 때

나의 모든 행동이 나의 아내에게 존중받기를 바란다.

아내와 나의 선택이 서로를 원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인생을 함께 걸어온 게 다행이고, 잘한 선택이기를 바란다.

서로에게 고마움만 가득하기를 바란다.

서로에게 큰 기쁨이기를 바란다.


모든 바람의  대답은 지금 내가 아내에게 하는 행동의 누적의 결과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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