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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모래 Dec 02. 2019

아파트 놀이터의 이방인

우리 아빠는 회사에 갔는데 아저씨는 왜 안 갔어요?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아내와 꼭 지키기로 한 육아원칙이 있다.

”공부는 시키지 말자 “ 무슨 생뚱맞은 소리인가 할 수 있지만

너무 공부하라는 소리가 싫었던 나에게는 중요한 육아 원칙이었다.    

아이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기회를 만들어주고, 하고 싶지 않다면 빠른 정리를 하기로 약속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6년 동안 지키고 있는 육아원칙이다.

덕분에 우리 아이가 확실하게 좋아하는 건 알고 있다.

바로 노는걸 참 좋아한다.

뽀로로의 주제가가 정확하게 매칭이 되는 아이이다.

(뽀로의 주제가의 첫 소절은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이다.)

  


아이의 주종목은 놀이터이다.

아이의 체력도 길러주고 하는 목적으로 4살 때부터는 하루에 두 시간 정도는 놀이터에 같이 나가서 모든 놀이기구를 할 수 있게 도와준 결과 지금은 혼자서 대부분의 놀이기구에 겁 없이 즐기는 아이가 되었고 어설픈 아빠의 육아에서 가장 잘 한 행동이라고 자화자찬을 하고 있다.


그런 놀이터라는 공간에서 어느 날 동네 아이에게 신선한 질문을 받았다.


”우리 아빠는 회사에 갔는데, 아저씨는 왜 회사에 안 갔어요? “

”우리 엄마는 여기 있는데 왜 소윤이 언니 엄마는 없어요? “    

”음... “ 

순간 무슨 이야기를 하여야 하나 고민을 하였다.

그리고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였다.

”아저씨는 소윤이 엄마 대신 여기에 있고, 언니 엄마는 회사에 가셨어. “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였고 동네 아이는

”아! 그렇구나 “ 

하는 아주 빠른 이해로 대화가 종료되었다.    


아이의 눈에는 늘 한결같이 나오는 놀이터에 아빠라는 존재가 나오는 것이 궁금한 부분이었고, 그것을 물어볼 수 있는 순수함이 있기에 나에게 물어보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른 대다수의 아빠, 엄마들이 회사에 출근하는 시간에 아이와 다니면 하루 정도 만나는 사람들은 궁금해하지 않지만 하루, 이틀, 여러 날을 자꾸 보다 보면 다들 나에 대한 존재를 궁금해한다.

이곳에 있으면 낯선 이방인이기 때문인 거 같다.

아직까지 육아를 하는 남자는 적으며, 나와 같이 전업으로 육아와 살림을 하는 주부 남편은 거의 없기 때문에 그 부분에 궁금증을 가지는 건 당연할 거라고 생각을 한다.    


어른들은 무한한 상상력으로 이방인인 나에 대한 존재를 추측하고 궁금해 하지만,

아이들은 순수한 호기심에서 궁금한 사실을 질문하였을 거고,

나 또한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는 것이 무한한 상상보다는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부 남편이 되고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바이오 리듬과 같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순간들이 지속되고 있지만 아이들을 통하여 나에 대한 존재의 답은 알 수 있었던 순간이었던 거 같다.


나에 대한 존재는 무슨 의미를 부여하여야 하는 존재인 것도 아닌 것이며,

아이들이 보는 거와 같이 있는 그대로 모습이 아녔던가 싶다.     

생각이 복잡해져 있는 어른들의 눈에서는 이방인은 신기한 모습일 것이며,

좋은 이야기 거리가 될 수 있지만,

그런 것에 나 자신을 맞추거나 위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나 자신에게 집중을 하여야 하며,

나의 가족에게 집중을 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방인인 아니라 똑같은 한 아이의 아빠인 것을 늘 마음에 새겨야 할 거 같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가 행복할 수 있도록 존재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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