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애를 첫눈에 알아봤다. 몇 마디 말을 나눠보지도 않았어도 알아챌 수 있었다. 내가 그토록 기다려왔던 사람이라는 걸. 이미 마음이 99%는 넘어갔지만 1% 정도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었다.
“만약에 제가 길에서 갑자기 춤을 추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허무맹랑해 보여도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한 번에 간파할 수 있는 내 나름의 평가기준이 들어간 회심의 질문이다.
음… 하고 잠깐 고민하더니 그 애가 대답했다.
“같이 춰야죠.”
꺄악! 그 애는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할지 몰라도 나는 흥분을 감출 수도 감출 생각도 없었다. 그 애의 심중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 애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었다. 마지막 1%의 마음까지 몽땅 그 애한테 빼앗긴 나는 어떻게든 그 애를 꼬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자신만만했던 나는 그 애를 꼬시는 데 꼬박 두 달이 걸렸다. 그 과정은 뭐랄까… 굉장히… 찌질했다. 간절한 만큼 찌질해졌다.
“나 좋아?”
“내가 왜 좋아?”
그 애는 사귀기 전부터 사귄 지 반년이 된 지금까지 매일, 하루에도 여러 번 물어왔다. 처음엔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줄 알고 내가 왜 너를 좋아하는지 더듬더듬 읊었다.
“예쁘고, 귀엽고, 멋있고, 사랑스럽고, 똑똑하고, 섹시하고… 음… 그리고…”
그 애는 지치지도 않고 묻는데 거기에 지치지 않고 대답해야 하는 의무가 나에게 있다.
“나 좋아?”
“응!”
“내가 왜 좋아?”
“음… 멋있고, 섹시하고, 똑똑하고,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음… 그리고…”
그때그때 그 애가 더 듣고 싶어 할 것 같은 이유를 앞쪽으로 옮기는 것 말고는 더 이상 덧붙일 말을 찾지 못한다. 그 이유가 전부여서가 아니라 내 어휘력이 궁색한 탓이다. 그 애는 묻고 또 묻는다. 나의 빈약한 대답이 성에 차지 않아서일까. 아님 들어도 들어도 또 확인하고 싶어서일까. 둘 다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후자를 생각하기로 했다. 매번 다르게, 더 멋진 표현으로 내가 너를 왜 좋아하는지, 얼마큼이나 좋아하는지 말해주고 싶지만 매번 실패한다. 대신 어떻게든 내 마음이 전해지기를 바라며 목소리에 진심을 꾹꾹 눌러 담는다.
그런 나와는 달리, 그 애는 매번 다른 문장들로, 매번 유려하고 탁월한 문장들로 나를 놀래키고 감동시킨다. 그 애는 언어의 바다에 살고 있는 게 분명하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도 사랑을 자유자재로 말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 애가 써준 편지들에 이런 문장들이 있다.
‘맘대로 되는 것 없는 세상에서 나만은 언니에게 변함없는, 보장된 행복이고 싶어.’
‘나를 내 사랑이라고 불러주는 그런 아침이면 내가 얼마나 팔랑대는지 넌 알까. 발걸음도, 표정도 조금 팔랑거린다. 너무 행복해서.’
그 애는 나에게 편지를 자주 써주는데, 매번 나는 편지를 읽다가 울어버린다. 나를 향한 시선이 너무 따뜻해서, 나를 향한 사랑이 너무 실감 나서. 또 나로 인해 그 애가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또 얼마나 불안해하는지가 눈앞에 선명해서. 그게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그 애는 나에게서 편지를 자주 받고 싶어 한다. 몇 번 쓰긴 했다. 그런데 몇 번에서 그쳤다. 귀찮아서 그런 게 아니다. 내가 너를 왜 사랑하는지,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애만큼 은 아니어도 유려하고 탁월한 문장들로 그 애를 감동시키고 울리는 데에 죄다 실패했기 때문이다. 일단 쓰기 시작했으니 끝까지 썼지만 그 애한테 주기에는 너무… 부끄러운 글이었다. 한 번 더 읽어볼 엄두도 안 나서 눈을 질끈 감고 꼭꼭 접어서 봉투에 넣었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편지를 건네고선 편지를 읽는 그 애의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
내 편지는 뭐랄까… 너무… 심하게… 느끼하고, 너무… 심하게… 장황하다. 너무 잘 쓰고 싶을수록 너무 느끼해졌고 너무 장황해졌다. 너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쓰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너무 잘하고 싶으면 너무 힘이 들어간다. 힘이 잔뜩 들어간 글은 어딘가 어색하고 왠지 우스꽝스럽다. 너무 잘하고 싶은 연애도 그렇다. 힘이 잔뜩 들어간 마음이 자꾸만 과녁을 비껴간다. 몇 번의 연애를 실패하고 깨달았다. 관계도 수영처럼 힘을 빼야 한다는 것을. 힘을 빼고 물에 몸을 맡기듯 흐르는 시간에 마음을 내맡겨야 한다는 것을. 너무 잘하고 싶을수록 힘을 빼야 한다는 것을.
그 애가 가끔 물어본다. 왜 이 관계에 최선을 다하지 않냐고. 그 애가 서운해한다. 나는 대답한다. 이게 최선이라고. 그 애는 또 서운해한다. 그 애가 이 글을 보면 알게 되겠지. 너무 잘하고 싶어서 힘을 빼는 거라고. 힘을 빼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거라고. 너를 많이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사랑해서라고.
그 애에 대해 앞으로 글을 종종 쓸 것 같다. 내가 왜 그 애를 사랑하는지. 내가 얼마만큼 그 애를 사랑하는지. 어떤 때 그 애가 좋아 죽겠는지. 느끼하고 장황한 문장을 최대한 걷어내며. 최대한 힘을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