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시 청춘으로 돌아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제발’이라는 단어를 쓸 줄 아는 사람을 사랑할 것이다.
너를 만나기 전의 사랑은
간섭하지 않겠다는 관용보다
그 과거에도 질투의 눈빛을 반짝이는 사람을 사랑할 것이고,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는 냉정의 논리보다
너는 내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이를 사랑할 것이다.
사랑은 변할 수도 있다는 말보다
사랑이 변하면 죽어버릴 것이라는 그의 열정을 사랑할 것이고,
하루의 정해진 규칙 속에
사랑도 묶어버리는 질서보다
사랑으로 인해 하루를 망가뜨릴 수 있는
자유로움을 사랑할 것이다.
사랑으로 다치지 않기 위해
슬그머니 붕대를 미리 챙기는 사람보다
상처가 나서 죽더라도
사랑을 움켜잡는 용기를 가진 그를 사랑할 것이며,
밀고 당김의 계산보다
가슴이 탄식하는 대로
제발, 제발이라 신음하는 사람을
죽을 때까지 사랑할 것이다.
⸻
그 애는 이런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했다.
그때의 나는, 정말 그랬다.
그 애의 과거에 내가 없다는 게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그 애가 나를 만나기 전에 겪었을 계절과 사람들,
그 모든 시간에
내가 단 한순간도 없었다는 게, 왠지 슬펐다.
그래서 더 오래 사랑하고 싶었다.
그 애가 살아온 시간마다 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앞으로의 시간만큼은 오롯이 나로 채우고 싶었다.
그 애에게 마지막 사랑이 되고 싶었다. 영원히, 완전히.
⸻
잠들기 전이면, 나는 꼭 그 애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이마에서 미간으로, 콧날을 따라
입술을 지나 턱 끝까지—
손끝으로 조심스레,
그 곡선을 스케치하듯 쓸어내렸다.
마치 이 얼굴을, 오래도록 기억하려는 사람처럼.
그리고 왼쪽 눈, 오른쪽 눈, 코, 입술에
차례로 입을 맞췄다.
마지막으로는, 이마에 오랫동안 입을 맞췄다.
그건 일종의 의식이자 기도였다.
‘얘랑 오래오래 사랑하게 해 주세요.’ 하는 기도.
간절한 기도.
동시에
그러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그 애가 없는 미래가 너무 두려웠다.
눈물이 고였고,
나는 그 애 모르게,
조용히 눈물을 닦았다.
그 애가 물었다.
왜 그렇게 이마에만 오래 입을 맞추냐고.
나는 말했다.
내 거라는 뜻의 도장을 찍는 거라고.
매일, 눈물로 도장을 찍었다.
⸻
“너랑 결혼하고 싶어.”
처음으로 그 말을 꺼냈던 날,
그 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길거리 한복판에서 훌쩍훌쩍 울었다.
그 애를 온전히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은
결혼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일 청혼했다.
매일 같이 미래를 말했다.
“우리 나중에 결혼하면…”
그 말이 내 하루의 주문이었다.
나는 당장이라도 결혼하고 싶었고,
현실은 당장 결혼할 수 없었다.
우리는 겨우 스물여섯, 스물일곱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겨우
“우리 나중에 결혼하면—” 하고
미래를 가정하는 일뿐이었다.
겨우 이마에 입 맞추며
간절한 기도를 올리는 일뿐이었다.
⸻
내가 손을 놓으면 이 관계가 끝나버릴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 애가 타서 죽겠는데,
그 애의 손은 어딘가 확신이 없어 보였다.
그 애가 전화로 헤어지자고 했던 날,
나는 모든 걸 다 제쳐두고
네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달려갔다.
그 애가 등을 돌리려던 순간,
나는 다급하게 손을 뻗어
그 애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숨이 가쁘고, 손끝이 떨렸다.
나는 애원했다.
제발, 내 손 놓지 말아 줘.
제발, 이대로 끝내지 말아 줘.
그 애는 아무 말이 없었고,
나는 무너지는 마음으로 그 손을 놓지 못했다.
그 순간의 나는
사랑이라기보다
절벽 끝에 매달린 사람 같았다.
무너지는 건 마음이었고,
붙잡고 있는 건,
그 애인지 나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그때 내가 그렇게 움켜쥐고 있던 건
사랑이 아니라,
불안이었는지도 모른다고.
그 애의 손이 점점 느슨해지는 걸 알면서도,
더 세게 쥐어버렸던 내가,
사랑보다 두려움을 더 사랑했던 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때 정말 사랑했다.
온 마음으로, 온몸으로.
제발, 제발이라 기도하듯. 신음하듯.
그렇게 뜨겁고 간절하게 사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