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hero
나는 수면제 및 약물 과다 복용으로 자살 시도 후 중환자실을 거쳐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 네 달간 사람과의 교류도 없이 한동안 방에 틀어 박혀서 90년대 홍콩 영화만 주구장창 봤다. 홍콩 문화 부흥기였던 8~90년대 당시는 아니고 불과 얼마 전이다.
현생의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서 몰두할 것이 필요했다. 뭐라도 좋았다.
어쩌다 보니 홍콩의 습한 날씨, 조잡한 건물, 가난하고 분주한 사람들, 엉성한 특수분장과 엉성한 특수 촬영 효과의 와이어 액션, 특히 조잡하고 코믹한 영화에 빠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악당은 있지만 악인은 없는 감정 낭비 없이 유치한 주성치 영화만 주구장창 봤다.
주로 가난하고 키 작고 얼굴도 그저 그런 주인공이 에너제틱하게 본업 열심히 해서 말도 안 되게 성공하는 스토리다. 알면서도 본다.
나는 80년대 후반~2000년대 순으로 주성치의 초기작 필모그래피를 역순으로 하나하나 다 봤는데, 엄청나게 웃겨서라던지 작품성이 뛰어나거나 특수효과나 스토리가 훌륭해서 다 본 건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쟤;가 이번에도 결국 해피엔딩을 거머쥐는 장면이 보고 싶었다. 체력은 약해가지고 내일 마저 보려고 하루를 살고, 다음날을 살고 또 산다. 자동으로 살아진다.
(어차피 밑바닥까지 떨어진 인생 행복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더니 아이러니하게 이 당시 좀 행복했음)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내 원동력이었던 그 짓거리를 사실 오래는 못 했다.
주성치는 마지막 출연작에서 내 영웅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늙고 초라하고 무능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게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 자체로 마음이 아파서 한순간에 영화에 흥미를 잃었다.
그럼 어쩔 수 없다. 이젠 현생을 살아야겠다. (어이없지만 사실입니다.)
거짓말처럼 내가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올 수 있던 이유는 주성치가 늙어서도(;) 우울증을 인간승리의 강인한 의지로 이겨 결국 극복했기 때문이 아니다. 힘 빼고 사는 동안 인생의 기둥이 여러 개 더 생긴 게 그 이유일 거다.
사람은 강아지, 가족, 또 뭐라도 좋으니 약간의 성취감 같은 사소한 이유만 있어도 그걸 원동력으로 해서 어떻게든 산다. 최소한의 기둥이 내 세상이 망하지 않게 해 준다.
나는 오늘도 아무렇지도 않게 외출하고, 사람 사이에 아무렇지도 않게 섞이고, 사랑하는 것들에게 둘러싸인 안전한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할배요, 할배가 사람 하나 구한 거 아실지는 모르겠소... 부디 사는 동안 쭉 행복하소서.
근면성실한 나의 영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