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취향껏 9호 <넷플릭스>
어느 날, 넷플릭스를 뒤적이다가 (넷플릭스를 보는 사람들의 패턴은 비슷하다. 이런저런 추천 목록을 내려보다가, 한 개를 틀어서 5분 정도 보고 끈다. 그리고 다시 추천 목록을 보다가 5분 정도 보고는 꺼버린다. 볼 수 있는 게 많으니까 벌어지는 현상이다. 때때로 재밌는 걸 발견하기도 하지만 극히 드물다) 추천도 97%를 장식한, 찜 목록에 아주 오래 들어 있던 ‘윤희에게’를 만났다.
아, 이거 무척 보고 싶었는데.
사실은 간절히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영화관에 가면 특별히 선호하는 좌석이 있다. 오른쪽 뒤, 구석 자리다. 그 자리에 앉아 온몸을 구겨 넣으면 안락한 기분이 들었다. 혼자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개봉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상영표가 엉망이었고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다른 일에 묻혀서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졌던 영화였다. 어느 날 넷플릭스에 올라온 것을 보고서도 나중에 봐야지, 하며 미뤄뒀다. ‘윤희에게’는 내게 그런 영화였다. 그러다 올해 3월, 드디어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 날은 무척 기분이 뒤숭숭했다. 사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내 일기장에 그렇게 쓰여 있다. 그 영화의 끝을 보면서 마음이 무척 절절해졌다. 사람이 ‘나’로 산다는 것, 그것만큼 당연한 일이 없는데도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어떤 사랑은 아주 오래 흉터처럼 남을 수도 있다는 것. 아무리 간절하더라도 닿을 수 없는 사랑이 있다는 것. 추신으로만 전하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날 새벽은 편지를 전하고 싶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지새웠다.
덧붙여,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그 순간까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좌석에 앉아서, 하염없이 윤희를 그리는 일. 나는 대단한 것을 놓쳤던 거다. 바쁘다는 이유로 놓친 소중한 것들이 참 많았다. 중요하지 않다고 미뤄두었던 것이 후회됐다. 혹시나 재개봉을 한다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지. 다음에 보고 싶은 영화가 생기면 시간을 내서 꼭 가야지, 다짐했다.
넷플릭스는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는 ‘애틋함’인 것 같다. 보고 싶은 영화가 개봉하는 그 시간을 기다려야만 하니까. 내 시간과 돈을 들여서 자리를 잡고 관람하는 일. 귀찮음을 이기고 한걸음에 달려가게 되는 마법 같은 일. 반면 넷플릭스는 ‘편안함’이다. 내가 편한 시간에, 언제든지 나를 위해 준비된 목록이다. 심지어 보다가 중간에 그만둘 수도 있고, 띄엄띄엄 볼 수도 있으니까.
인생이 그렇다. 편안하거나, 애틋하거나. 둘 중에 하나다. 나는 조금 귀찮아도 애틋한 것들이 좋다. 편안한 것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것들은 별로 내키지가 않는다. 이 이야기는 넷플릭스와 영화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가 사랑하는 방식, 사랑받고자 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시 한 번 올라가서 읽어보면, 조금은 다르게 읽힐 지도 모른다. 여전히 잘 모르겠다면, 나름대로 좋다. 내 글을 어떻게 읽는 지는 오롯이 당신의 마음에 달렸으니까.
추신은 없다. 다들 안녕.
웹진 취향껏에서 발행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