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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영구 Oct 15. 2020

기왕 태어난 거 재미있게 사는 법

웹진 취향껏 10호 <생일>

          

나는 생일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나 ‘내 생일’에는 진심인 편이다. 매년 생일파티를 하고, 이를 위한 초대장을 만든다면 설명이 충분할까? 내 초대장에는 늘 공통으로 들어 가는 문구가 있다. <케이크 금지/계산은 회비로> 일단 내가 단 음식을 별로 안 좋아하고, 홀 케이크를 선물 받으면 혼자 처리하기가 난감하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잘 알기 때문에 미니푸딩을 사 왔던 친구들아! 이 자리를 빌려 애정을 보낸다. 어쨌든 오늘은 역대 내 생일 파티 초대장을 분석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다. 사진의 초대장은 2018년부터인데, 각각 특징이 있다. 사실 분석이라고 썼지만 내 초대장 자랑이다.









2018


내가 처음으로 초대장을 만들기 시작한 해다. 약간 망한 초대장 만들기가 컨셉이었다. (절대 못 만든 거 아님) 깨알같이 고깔모자를 쓰고 싶다고 어필한 점이 포인트. 정말 친구들이 고깔모자를 사다 줘서 즐겁게 생일 파티를 했던 기억이 난다. 가운데 그림은 내가 그린 시바 그림이다. 겨울에 구청에서 색연필 일러스트 수업을 들었고, 수업 시간에 그린 그림이었는데 아주 잘 그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랑 겸 넣었다. 영화관에서 일할 때라 유니폼 입은 사진도 들어있다. 전체적으로 아주 화려한 색감을 지향하는 것이 인상주의를 표방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2019


우선 디자인적으로 크게 발전했다. 지난해의 배경과 비교하면 퀄리티가 남다르다. 공주님이 컨셉인 만큼 분홍색을 뿜뿜 썼고, 반짝이도 사정없이 뿌려주었다. 초대장을 SNS에 공유해 달라는 문구도 추가되어 있는데, 관종력이 +10 상승했다. 저 헤어밴드는 막내의 물건인데, 너무 귀여워서 뺏어왔다. 입은 건 제일 좋아하는 체크무늬 파자마. 이렇게 내 취향을 모두 공개하게 되었다. 맨 위에는 살짝 엽사를 첨가해보았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2018년 생일에는 고깔모자를, 2019년 생일에는 왕관과 요술봉을 선물 받았다. 얘들아, 놀아줘서 고마워! 참고로 그 5세 유아들을 위한 왕관과 요술봉은 아직도 소중히 보관 중이다.








2020년


대망의 올해! 이번 연도에는 수준이 남다르다. 왜냐하면 아이패드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사실 작년에도 아이패드를 가지고 있었다. 작년에는…왜 안 썼지? 어쨌든 아이패드를 블루투스 스피커로 쓰다가 드디어 쓸모 있는 데에 쓰게 되었다. 일단 초대장 상단에 드디어 캘리그라피가 들어갔다. 다들 아는지 모르겠지만 나 캘리 좀 했다. 포인트는 바로 잔든구. 작년 여름에 코타키나 발루로 휴가를 다녀와서 찍은 나의 최애사진이다. 이번 연도에는 어쩐지 엽사만 잔뜩 들어 있는 걸 보아하니, 초대장 만들기에 진심이었던 것 같다. 사진을 모으다 보니 현타가 좀 와서, 남자친구는 글렀다고 써놨었네…. 그 뭐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다.









매번 생일 때마다 모여 주는 친구들이 너무너무 고마워서, 이번에는 선물을 준비했다. 디퓨저하고 뭐 이것저것, 작은 편지도 썼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친구들이 본인 생일 때마다 선물을 준비한다. 한 친구는 블루베리 잼을 만들어왔고, 한 친구는 손 소독제를 나눠줬다. 내가 그렇게 시작했으니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며… 재밌는 생일파티가 되었다.





매년 생일 때마다 초대장을 만드는 건 나만의 연례행사다. 친구들이 기대…를 하는 것 같진 않다. 이건 진짜 나 혼자만의 즐거움이다. 소중한 내 생일을 축하하는 나만의 방법. 덕분에 나는 나이 먹는 게 싫지 않고, 오히려 기대된다. 사실 이렇게까지 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어서 구구절절 써볼까 했는데, 어차피 다 지난 일이라 굳이 꺼내지 않기로 했다. 어떤 슬픈 경험들은 더 나은 날들을 만들어내기도 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원해서 태어난 건 아니지만, 기왕 태어난 거 재밌게 살면 좋겠다. 






아 내년엔 어떻게 만들지? 벌써 고민이다!



웹진 취향껏에서 발행된 글입니다.

https://www.chwihyangkkeot.com/writing10_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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