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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영구 Jun 18. 2021

지팔지꼰

웹진 취향껏 18호 <사주, 타로>

/사진 안미옥, 생일편지 




언뜻 사자성어처럼 보이는 이 단어, 내가 참 좋아하는 말이다. 속된 말로 “지 팔자 지가 꼰다”는 뜻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팔자’라는 말 정확히 무슨 뜻인가 해서 검색을 해보았다. 원래는 어떤 사람이 출생한 ‘연,월,일,시’에 해당하는 간지 여덟 글자를 말하는 것인데 팔자의 좋고 나쁨이 일생을 좌우한다는 관념에서 현재는 ‘일생의 운수’를 가리킨다고 한다. 이 팔자에 관해서 얘기하자면 나는 ‘지팔지꼰’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선 사람의 인생에는 정말 정해진 사주팔자가 있을까? 사주는 사실 통계학이라고 하는데 인간의 인생이 통계대로 흘러간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닐까?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다양한 선택으로 살아가는 21세기에 말이다. 물론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누가 사주를 보러 갔는데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해서 했는데 잘 됐대! 하지 말라고 했는데 무시했더니 완전 망했대. 이런 류의 이야기들은 귀가 솔깃해지니까. 나만 해도 가끔 사주를 보러가곤 했으니.          




때는 바야흐로 2018년, 취업과 대학원의 기로에서 고민하던 때였다. 친구들 사이에서 어느 사주집이 용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벌써 열댓명이 다녀왔다는데 그 풀이가 소름이 돋을 정도라는 것이다. 나는 당장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하고, 무슨 용기였는지 혼자서 서울 어느 골목에 있는 철학관에 찾아갔다. 혼밥도 잘 못하는 나에게는 대단한 용기였다. 그때는 이 길이 정말 내 길이 맞는지 고민이 됐는데, 돌이켜보니 도망갈 핑계가 필요했던 것 같기도 하다. 탈옥했으니 하는 말이지만 대학원은 정말 진심으로 가고 싶을 때 가야만 버틸 수 있는 곳이다. 대학원은 대학생이 죄를 지으면 가는 곳입니다. 여러분. 상기하세요.          





어쨌든 용하다던 그 분은 나의 생년월일과 이름을 듣더니 대뜸, 사주에 ‘글’이 많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안그래도 대학원 진학과 취업 중에 고민이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그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취업을 하든, 대학원에 가든 학생은 평생 공부할 팔자야.” 나는 용하다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이 아저씨 완전 사짜 아니야? 이렇게는 나도 얘기하겠다! 설상가상 다른 이야기도 너무 나와는 거리가 너무 멀었고 내 대답은 계속 “어, 아닌데요...” 우리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럴 리 없는데?” 라고 하시던 목소리가 여전히 귀에 선하다.            



    

애매모호한 답변에 무척 실망했지만 나는 그래도 평생 공부할 팔자라면 대학원에 가야겠다고 결정했다. 그리고 무려 한 달 뒤, 자퇴서를 내고 취업을 하게 된다. 인생은 정말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나는, 매번 새로운 주제로 전시관을 만드는 전시 기획자가 되었다. 세상 누구보다 공부를 많이 하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으니 그분이 마냥 사짜는 아니셨구나 싶다. 오해해서 죄송하지만 여전히 그런 생각은 들어요. 하나 때려 맞추신 건… 아닐까?               





그때의 나는 내 고민을 단칼에 잘라줄 ‘정답’이 필요했던 것 같다. 고민하지 말고 대학원에 가라든지, 대학원은 네 길이 아니니 취업을 하라든지. 그런데 만약 그 분이 그렇게 말씀해주셨으면 어땠을까? 나는 누가 정해준 길로는 가기 싫다며 청개구리처럼 반대로 행동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결국엔 사주를 보러 가는 건,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남의 입에서도 듣고 싶은 거다. 지금 네 길이 맞다, 혹은 지금은 네가 힘들어도 앞으로는 잘될 거다, 같은 이야기들을 듣고 싶은 거다.          




 

살다보면 참 여러 가지 일들이 생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선택은 나의 몫이다. 막상 선택하고 나서 보면 이게 맞는 길이었는지, 아닌 길이었는지도 알 수 없다. 가보지 않은 길의 결과는 알 수 없으니까. 또 어떤 선택은 정답이었지만 에움길이었던 때도 있고,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는데 막다른 길일 때도 있었다.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후회하고, 그렇게 점점 쌓아온 것들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고 선택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새로운 선택들을 만들어나간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지팔지꼰” 내가 내 인생을 피기도, 꼬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거다.          





내가 겪은 수많은 재수없는 일도, 겪지 않았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슬픈 일들도,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은 분에 넘치는 기쁜 일들도 모두 다 나로부터, 나에게로 오고 가는 길인 것이다. 여전히 힘든 일들이 닥쳐오면 (왜 그런 일들은 꼭, 한꺼번에 밀려오는지 모르겠지만) 사주를 보러가고 싶은 날이 있다. 삼만원, 오만원으로 내 미래를 엿볼 수 있다면 얼마나 수지 맞는 장사인가! 하지만 이제는 그런 날들에 친구들을 불러 치킨을 먹고, 고기를 먹기로 했다. 내 팔자 얼마나 대단하겠나. 견디면 다 지나가고, 아픈 일들은 좋은 일들을 불러오고, 미친 듯 행복하다가도 평범해지고, 그게 다 사는 거지. 오늘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 그것으로 내 인생 피는 거라고 믿는다.                






근데 추신, 예전에 한의원을 갔는데 한의사 할아버지가 손금을 봐주셨다. 그 분 말씀은 꼭 믿고 싶다. 여태까지 이런 글을 쓴 것치곤 좀 그렇지만 마흔 살엔 내가 그렇게 큰 부자가 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걔만큼은 정해진 운명이면 좋겠습니다 선생님. 선생님만 믿으며 살고 있으니 제 인생을 꼭 책임져주세요. 제발요.     



웹진 취향껏에서 발행된 글입니다

https://www.chwihyangkkeot.com/writing18_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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