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요 Jul 16. 2021

개의 혓바닥과 나의 눈물샘

나는 혓바닥으로 온도 조절하는 개처럼 눈물샘으로 몸의 열기를 분출했다.

코로나가 아직 인도에 오지 않았던 2020년 초입의 뉴델리 센트럴 파크

여름철 무더위가 찾아오면 나는 혓바닥으로 온도 조절하는 개처럼 눈물샘으로 몸의 열기를 분출했다. 땀샘이 없는 것도 아니고, 신체에서 땀이 적게 나는 것도 아닌데 그랬다. 눈물샘까지 자극돼서 물을 뺄 필요가 있는지 묻고 싶었으나, 내 신체는 답을 줄 수 없었고 네이버 지식인도 답을 주지 않았기에 그냥 살기로 했다. 




이런 체질임을 알게 된 건 뭄바이의 핫플,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 부근에서 에어컨이 나올 글로벌 프랜차이즈를 찾으면서 울고 있을 때였다. 유감스럽게도, 여행 메이트인 정우는 울며 덥다고 주먹질하던 나를 견뎌내야 했다. 그의 몸과 마음에 다시 사과해본다. 당시엔 미안한 마음이 하나도 없었다. 한국인들이 영화 <김종욱 찾기>에 나오는 루트대로 움직이며 공유와 임수정 같은 동포들을 찾아 주의를 두리번거리고 있었지만, 나는 그 무더위 속에서 '김종욱? 저리 비켜. 열기 나오니까.' 하며 아이스를 찾아 헤매었다. 




잠시 관광지에 대한 감상평을 풀어보자면, '인간은 작고 문은 커다랗고 인부들은 어떻게 살아서 이걸 만들었지? 이 더위를 없애기 위해서라면, 인간 제물을 올릴 수 있겠다.' 라며 아스텍 고대인을 옹호하고 (그들이 날씨의 이유로 인신 공양을 한 건 아니지만), 지구에 CW-7(Cold Weather)를 살포한 설국 열차의 지배자들을 응원했다. 암… 이렇게 더우면 지구 얼리지…. 얼리고말고. 그들은 단지 계산 실수를 했을 뿐, 시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그늘 하나 없이 자외선과 맞서 싸워야 했던 작은 인간은 스타벅스에서 오돌오돌 떨며 기술력을 신으로 삼기로 했다. 에어 컨디셔너 만든 월리스 캐리어, 당신이 이제부터 저의 숭배 대상입니다. 라고 생각하던 것도 잠시, 더위에 녹아내리던 소프트 콘에서 꽝꽝 언 비비빅이 된 나는 미국 대학교의 냉·난방 시스템을 비난하는 뉴스가 공중파에 뜨는 이유를 깨달았다. 이 냉방은 좀 과하지 않나? 40도에 육박하는 날씨에 반팔로 등교해 패딩을 입고 수업을 듣는다는 기사에 '저 사립대학교가 등록금을 냉방비로 쏟아붓나 보지. 몇 학교나 저러겠어.' 하고 말았는데, 인도 스타벅스가 절실히 패딩을 찾게 만드는 걸 보니, 글로벌 이슈가 맞았다.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킨 걸 후회했고, 춥기만 한 스타벅스를 빠르게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뭄바이에 볼 것이 얼마나 많으냐. 체력이 회복되었냐는 정우의 말에 호기롭게 "웅웅!"하며 나왔으나, 몇 걸음 못 가 눈물을 흘리며 정우의 어깨를 내려쳤다. 




그가 맘씨 좋고 몸이 단단한 청년이라 다행이었다. 덥다고 뺙뺙 우는 만 이십 세를 다독여주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그런 점에서 취향껏 읽어주면 좋겠는데. 아무튼, 나를 달래기 위해 그녀는 열심히 에어컨이 나올 법한 가게를 물색하며 스타벅스와 한 두어 블록 떨어진 배스킨라빈스로 내 몸을 이송시켰다.




실내로 들어가니 다시 살만해졌다. 결코, 결코 여름에 인도를 오지 않으리. 동남아 가지 않으리. 초록색 동그라미 마크가 달린 망고 아이스크림을 입에 넣으며 분노의 눈물을 삭였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인도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겨울이라고 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온도가 올라가 인도 전역에 추워 죽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국제면 기사를 분명히 봤건만! 그걸 읽으며 지구 온난화가 재앙이긴 하지만, 나에게는 호재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지구가 경험한 인도의 날씨 중 가장 추운 인도를 경험하러 가는 걸 테니까. 더위에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며 말이다.




실제로 인도인들에게는 다신 없을(이라고 말하지만 매년 기후 위기는 심각해지고 있다.) 추위였다. 나는 눈물을 일본 만화 캐릭터처럼 그렁그렁 주르륵 흘려댈 때 몇몇 인도인들은 패딩을 입고 있었고, 햇빛이 내리쬐는 낮에 나는 열사병으로 죽겠는데, 짙은 분홍색의 패딩을 입은 아이가 평온히 아빠로 추정되는 보호자 품에 안겨있었다. 



눈물은 안 났던 작년 겨울의 타지마할.

“일정 더위를 겪으면 눈물이 난다”라는 신체의 비밀을 깨닫고 있던 내게 있어 말도 안 되는 풍경을 선사한 2015년 1월의 인도는 무척 뜨거웠다. 경험을 토대로 기능성 반팔티를 야무지게 챙겨 간 2020년 1월의 인도는 살 만했다. 남부와 중부 위주의 루트였던 15년도와 북부 위주의 코스였던 20년의 날씨가 분명 다를 순 있겠다만, 여름일 거라 생각한 도시마저도 굉장히 견딜만 했다. 한국도 인도만치 고온다습해서 적응한 것만 같았다. 하루에 1만 보 이상씩 걸었던 조드푸르, 선풍기도 없던 3AC의 뉴델리행 기차에서 눈물을 조금만 흘린 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하나가 가면 하나가 온다 했던가, 더위가 가고 코로나가 왔다. 보석 가게 아저씨는 나를 힐긋 보며 ‘코로나바이러스’라 말하고, 나는 기후 위기가 전염병을 더 많이 양산해낼 것이라는 기사와 대구에 집단 코로나 감염이 터졌다는 기사를 보았다. 히말라야와 바이오티크 대신 마스크와 알코올을 17만 원어치 사서 귀국하니 쿠팡에서 마스크 구매를 성공한 언니에게 ‘왜 그렇게 비싸게 사왔어?’ 라는 소리와 ‘한국이 더 싸네’라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인도의 겨울철 더위는 이제 날 울리지 않건만 울 일은 여전히 많다는 걸 깨달았다.




티베트 고기압과 북태평양 고기압에 갇힌 말티즈 모찌는 작년보다 더 길게 혀를 빼내밀고서 헥헥거리고 나는 그 옆에서 목줄을 쥐고 울었다. 지독한 폭염의 시작이었다.







웹진 취향껏에서 더욱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https://chwihyangkkeot.com/writing19_k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