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취향껏 17호 <집>
강원도 원주에 살고 싶다. 아니 더 정확히는, 나무 가까이에 살고 싶다.
얼마 전에 원주에 캠핑을 다녀왔다. 캠핑 이튿날에 ‘반곡역’이라는 폐역에 벚꽃을 보러 갔는데, 꽃은 다 지고 어느새 푸른 잎이 자라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너머로 보이는 산과,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나무들이 무척 예뻤다. 꽃보다도 예쁜 나무를 만나서 무척 기분이 좋았다. 사실 식물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오히려 귀찮아하는 편) 나무는 참 좋다. 땅에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곧게 디딘 나무, 그리고 그들이 모여 있는 숲을 보고 있으면 싱그러운 기분이 드니까. 서울에 살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했는데, 강원도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니. 사람은 나이가 들면 바다보다 숲을 좋아하게 된다고 하던데, 내가 딱 그 모양이다.
사실 회사 근처에서 집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왕복 세 시간이 넘는 통근이 슬슬 벅찼기 때문이다. 서울은 참 여러 가지 모양의 집이 있었다. 집이 괜찮으면 싱크대가 이상했고, 방이 넓으면 화장실이 이상했고, 모든 게 괜찮다 싶으면 방이 너무 작았다. 나무는커녕 큰 창을 가진 집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마치 시소를 타는 것처럼 삐그덕 삐그덕, 자꾸만 휘청였다. 물론 내 예산이 적은 탓도 있지만, 서울은 좀 심한 거 아닐까? 이 넓은 서울에 내가 살 집이 하나 없다는 게 놀랍고, 수상했다. 다들 도대체 어떤 집에, 어떻게 사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그 와중에 수원을 떠날 수 없는 이유들이 하나 둘 발목을 잡았다. 떠날 이유는 나를 위해, 단 하나뿐인데. 남아야 할 이유는 그들을 위해, 참 여러 가지였다.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한 유튜버를 알게 되었다. 나처럼 적은 자금으로 서울에서 집을 구하는 사람이었는데, 몇 개월을 발품을 팔아 결국 원하는 집을 구하셨다. 그리고 그는 그 집을 구하며 이렇게 말했다. “숲을 선물 받았다.”라고. 밖에 푸르른 나무들이 펼쳐져 있는 그 집이 무척 부러웠다. 나무와 함께 자라나는 삶은 어떨까 상상했다. 상상 끝에 나는 못내 아쉽지만, 독립의 꿈을 접었다. 그렇지만 슬프진 않다. 사람이든, 집이든, 그 무엇이든 내게 올 거라면 반드시 오게 되어있다고 믿으니까. 내가 꼭 서울에 살아야 했다면, 반드시 서울에 알맞은 집을 찾아냈을 거다. 그런 집을 찾지 못했던 것은 아직 나갈 때가 아닌 거겠지. 라고 위안을 해본다. 잠시만, 눈물 좀 닦고 ….
언젠가 나도 숲을 선물 받을 수 있을까? 이 꿈을 마음에 품어보기로 했다. 20, 30년 후에는 강원도 원주에 있는 단독주택에서 살고 싶다.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숲을 창문에 걸어둬야지. 계절에 따라 바뀌는 창을 보면서 커피도 한잔하고, 멋지게 글도 쓸 거다! 언제일지 모르는 그 날을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일해야지.
30년만 기다려줘 원주야. 내가 꼭 갈게!
웹진 취향껏에서 발행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