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취향껏 19호 <여름이니까>
2018년의 나는 내 인생이 여름의 한복판에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우스갯소리로 글 쓰는 ‘나’와 평소의 ‘나’는 다른 사람이라고 말하는데,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그동안 쓴 것을 돌아보니 대체로 우울감에 관해 썼다. 인생이 그렇게 불행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어디에나 있을 법한 정도의 행복과 불행이었는데도 자꾸 슬픈 글을 썼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런 글이 쓰기 쉬웠다. 정확하게는 행복한 이야기를 쓰려고 하면 자꾸 손이 멈췄다.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몰라서 막막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쓸 수 있는 글을 쓰다 보니 <오늘의 우울>이라는 전시가 되었고, <우울할 수도 있지>라는 책이 된 거다.
그때의 나는 인생이 장마와 같다고 생각했다. 살아있는 것은 비를 맞는 일이라고. 언제 그치는지 알 수도 없는 비를 맞으며 “왜 살아야 할까?”라고 물었다. 대답해줄 사람은 없었고, 누구도 대답해줄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가끔 해가 드는 날도 있긴 했지만, 어찌나 잠깐인지 찰나에 가까웠다. 그냥, 다들 나처럼 사는 거겠지, 그러니 티를 내지 말아야지. 하며 살았다. 나의 슬픔은 나만의 것, 이 장마 또한 나만의 장마였다.
그렇게 여름의 한복판에서 나는 자랐다. 수많은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가, 머물렀다가, 떠나갔다가 되돌아오기도 했다. 누군가는 내게 장마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지나갔다. 누군가는 빗속을 뚫고 들어와 우산을 씌워졌고 힘들면 가끔 비를 피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어떤 이는 나 자신을 아낄 줄 알아야 한다며 대신 울어주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어느새 3년이 지나 2021년이 되었다.
음. 2021년의 나 역시도, 여전히 살아있는 건 장마 같다고 생각한다. 매일 비가 오고, 나의 우울감은 디폴트 값이다. 발밑에 찰랑거리는 우울감은 내 삶의 일부이고, 어쩌면 원동력이고, 살아가는 데에 필요조건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렇지만 3년 전의 나와 조금 다른 부분은 저 수많은 사람 덕분에 햇볕이 쨍쨍한 삶이 부럽지는 않다는 것. 나만의 장마가 가끔은 우리의 장마가 되기도 한다는 것. 2018년의 나는 내 삶이 장마 같아서 무척 슬펐지만, 지금의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 삶을 사랑하게 됐다. 나의 우울감마저도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본인의 인생에 나라는 페이지가 생겨서 기쁘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었고. 내 글을 읽고 나를 더욱 사랑하게 됐다는 사람도 있었고,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사람도 있으니까.
<우울할 수도 있지>라는 책을 쓰면서 나는 바랐다. 지금은 우울감에 관해서 쓰지만 언젠가는 꼭 다정함에 관해서 쓰겠다고. 한 번도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되기를 기대한 적은 없지만,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행복한 마음으로 다정함에 대해 말해보고 싶었다. 지금의 나는, <오늘의 우울>을 함께 했던 정미, 경린이와 취향껏을 만들고 있다. 그때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한 혜진이와도 아주 즐거운 작업을 하고, 취향껏 한 부분에 다정한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적어내고 있으니 그 소원이 이루어진 것 같다. 여름의 한복판에서 홀로 장마를 견디던 2018년의 인영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2021년의 인영이도 여전히 여름의 한가운데에 서 있지만, 그때보다 더 많은 사람과 대단히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고. 여전히 비가 오고, 가끔 해가 들지만, 그것마저도 아주 행복하다고.
살아있는 건 여전히 장마와 같은 일이다. 슬픈 일들은 언제나 잔뜩 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좋은 일들도 잔뜩 있다. 당신들과 함께라면 이 장마도 물놀이처럼 즐겁다는 걸, 조금씩 배워간다.
2021년 여름의 초입에서,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P.S 우리의 전시가 궁금한 분들을 위해서!
웹진 취향껏에서 발행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