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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영구 Sep 30. 2021

90년대생의 즐거움

웹진 취향껏 20호 <아이돌> 

8월을 맞이하여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이번 휴가는 무려 5일. 주말을 붙여 쓰니 9일이었다. 6월이 시작되자마자 예약했던 캠핑장을 향해 가는 길, 나는 ‘선곡’이라는 임무를 맡았다. 사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여행길 조수석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 운전자가 졸리지 않도록, 적당히 신이 나도록, 그래서 이 운전이 조금이라도 덜 피곤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그러나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음악은 새벽 감성이 낭낭하게 묻어나오는 인디 음악들이라, 운전할 때에는 별로 좋지 않다. 심지어 여행길 드라이버님은 힙합을 좋아하시고…. 하지만 나에게는 치트키가 있다. 바로, 아이돌 메들리! 왠지 그때 노래를 들으면 그 시절 생각이 난다. 혹시, 이게 바로 라떼?  





지니에는 타임머신 기능이 있어서 년도와 월을 지정하면 그 당시의 인기곡들을 들을 수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초등학교로 돌아가 보았더니 원더걸스의 Tell Me가 나를 기다렸다. 춤도 춤이지만 이 노래를 들으면 전 국민이 UCC에 미쳤던 게 떠오른다. 그때는 JYP 오디션이 한창 유행이었는데 지하철에서 레이니즘을 부르던 남자분과, 네미시스 솜사탕을 부르던 여성분이 기억난다. 여러분 잘 지내고 계신가요? 그리고 90년대생 여러분 이거 나만 기억하는 거 아니죠? 안다면 다들 취향껏 인스타그램에 DM 꼭 보내주세요.  




그리고 그 시절 아이돌 이야기를 하려면 단연 동방신기가 빠질 수 없다. 나의 첫 아이돌이던 그들은 내 책상과 필통의 시간표를 장식했었다. 다들 동방신기하면 무엇을 떠올리는지 궁금한데 그보다 나는 “Love in the Ice”가 떠오른다. 이 노래 모르면 당신은 90년대생이 아니다. 아무튼 아니다. 이 노래의 전주는 심금을 울린다. 어느덧 10여 년이 훌쩍 넘은 지금 이제는 둘밖에 남지 않은 그들을 볼 때마다 슬프다. 영원히 우리 함께인 줄 알았는데. HOT와 젝키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러할까. 심지어 최강창민은 결혼을 해버렸다. 오빠. 잘 사세요. 행복하세요. 창민아! 결혼 축하한드아!  




‘영원히 함께’라고 생각하니 핫티스트였던 시절도 떠오른다. 박재범의 탈퇴 소식을 듣고 엉엉 울던 그 시절의 나. 간담회 녹취록을 들으며 왜 우리 재범 오빠가 나가야 하는지 분석하기도 했다. 그는 nothing on you를 부르며 한국으로 돌아와 거대한 레이블 수장이 되었고, 힙합의 대명사가 된 그를 대학축제에서 만났다. 그날은 무척 피곤해서 마지막 한 곡만 더 듣고 집에 가자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몸매의 전주가 들리기 시작했고, 나는 바로 뒤돌아서 무대 앞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달리기를 잘하는지 처음 알았다. 아, 요즘은 우리 집 준호에 빠졌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때 헤어진 것이 오히려 잘된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보니 선미도, 현아도 원더걸스를 나가서 지금은 솔로로 멋진 활동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어쩌면 사람들은 다 헤어지는 때가 있나 싶기도 하다.  




SM과 JYP를 지나 이번엔 YG로 가볼까 한다. 이제는 언급하기 조금 어색해진 우주 대폭발, 그 아이돌 말이다. 거짓말, 마지막 인사, 하루하루, GD&TOP노래부터 대성이의 날 봐 귀순까지도 사랑했다. 여러 가지 사건 사고에 연루된 그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어디선가 들었는데 어렸을 때의 성공이 사주에서는 참 좋지 않다고 한다. 왜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IDOL은 사실 ‘우상’이라는 뜻에서 왔지 않나. 누군가의 우상으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겠지. 나도 나 하나 건사하기 벅찬데, 너무나 많은 사람의 사랑과 애정으로 살아가게 된다면 그것은 꽤 멋지고 두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슬픈 생각을 벗어나 내 수능을 망친 엑소 노래도 들어본다. 오랜만에 미녀와 야수를 듣고 나니 내 안의 투명드래곤이 울부짖어따. 무대를 찢어따. 어쨌든, 으르렁 춤을 추면서 등교하던 내가 떠올랐다. 블락비의 닐리리맘보와 HER까지 들으면 내 고등학교 시절을 완벽히 대변할 수 있다. 그때는 피오가 이렇게 뜰 줄 몰랐지. 참 연예계는 변화무쌍하다. 





구 비스트 현 하이라이트, 여자친구, 에이핑크, 슈퍼주니어, 인피니트 등 언급하지 못한 아이돌이 너무 많고 그에 담긴 추억들이 아주 더 남아있다. 스키니진을 엄마 바지라고 부르는 요즘, 그 시절의 소녀시대가 보고 싶다. 네이트온으로 밤을 지새우고, 싸이월드 마이룸을 꾸미는 데 진심이었던 나. 평생지기♡들의 사진을 열심히 퍼 나르며 사진첩을 만들던 그 감성. 그 시절이 문득 그리워졌다. 다들 자기 세대를 대표하는 가수가 있고, 또 좋아하는 노래가 있었겠지만, 이 수많은 아이돌과 함께 자라며 수많은 노래를 들었다는 건 90년생의 특권이 아닐까?  







타임머신을 타고 열심히 달렸더니 어느새 캠핑장에 도착했다. 조수석의 임무를 무사히 완료한 것이다. 이제 직장인이 된 내게 아주 소중한, 겨울에는 없고 여름에만 있는 휴가를 누릴 때가 왔다. 이 휴가를 기억하게 될 노래는 무엇이 될까. 언젠가는 또 음악 타임머신을 타고 지금 이때로도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추억은 추억인 채로 남겨두고, 새로운 추억들을 더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역시 텐트를 칠 때는 노동요가 필요하지 않나. 아직 못 들은 노래들, 몇 곡만 더 들어야겠다. 아직 남은 노래가 너무 많다.   


아무리 라떼라고 불러도, 이것이 바로 90년대생의 즐거움이다.




웹진 취향껏에서 발행된 글입니다

https://www.chwihyangkkeot.com/writing20_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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