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이지 Aug 30. 2021

그런 삶은 어떤 삶인거지

웹진 취향껏 12호

ㅡ 언니, 사는 건 뭐예요?

ㅡ 죽어가는 거지.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으려다 고된 일로 앙상하게 말라가는 언니를 보며 그럴 수도 있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는 건 뭐냐는 질문엔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는데, 죽어가는 게 생이라면 열심히 살아서 뭐하나 싶었다. 숨이 붙어있는 정도로만, 최소한의 움직임으로만 살면 되지 않나.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대충 살 걸.



그즈음 당신에게 물었다. 언니가 그러는데 사는 건 죽어가는 거래, 너도 그렇게 생각해? 수긍과 반대 사이에서 길을 잃고 멀뚱멀뚱 쳐다보는 당신이 귀여워 웃다가 얼른 대답하라고 재촉했다. 맞는 듯하면서도 아닌 것 같은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어쩌면 언니와 다른 말을 해주기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삶은 살아감의 줄임말인데 죽어간다는 게 모순되지 않냐고 말해주기를 말이다.



난 언니 말이 이해돼. 그렇다면 굳이 열심히 살아야 하나 싶었어. 어차피 죽는데 노력해서 뭐해. 당신은 널브러져 있던 내 오른쪽 손을 잡고서 대답했다. 적어도 오십 년 뒤에 죽을 텐데, 뭐 벌써부터 그런 말을 해. 당신의 대답이 이해가 아니라 무마가 목적이었다는 걸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당신도 언니도 모두 이해했지만 당신은 아니었다.



잠결에 그런 말을 했다. 내 용기는 자잘한 나뭇가지 같아서, 누가 열심히 불을 지피지 않으면 쓸모가 없는 것 같아. 그런데 누군가 부추겨야만 나오는 용기도 용기라고 볼 수 있을까? 눈을 감고 웅얼거리는 나에게 당신은 그런 삶도 있는 거라고 말하곤 이불을 목까지 덮어줬다. 그런 삶은 어떤 삶인 거지. 그 짧은 대답이 자음과 모음으로 분열되어 마음에 묵직이 자리 잡았다.



작년부터 언니의 연락이 뜸해졌다. 정말 죽기라도 했으면 어떡하지 싶어서 전화를 수백 통 해봤지만 받지 않았다. 그 사이 나는 어차피 모로 가나 도로 가나 죽을 거, 하고 싶은 건 다 해보자고 닥치는 대로 할 일을 주워 담았다. 죽어가는 선택지만 나열된 세상이라면 굳이 아무것도 아닌 것에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았다. `죽어가는 그런 삶`을 `죽어가는 그럭저럭 괜찮은 삶`으로 바꾸는 노력을 언니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뜸해진 연락과 멀어진 거리는 줄어들 생각이 없었다.



나는 작은 용기를 수백 번 내어 열심히 죽어가고 있다. 언니를 떠올리며 불안해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도, 당신의 손을 놓은 것도, 버거운 일을 맡은 것도, 다시 누군가를 믿기 시작한 것도, 이제는 타인이 지핀 불이 아닌 내가 직접 지핀 불 앞에서, 뭐든 다 하고 죽어야겠다.






Photo by CHUTTERSNAP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고양이, 나의 겨울밤 찬란한 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