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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원 Oct 23. 2015

우리, 밥 먹자


식용유와 생필품 몇 가지가 필요해서 마트에 갔습니다. 살림을 하는 주부인지라 식재료의 성분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돼요. 식용유에 '국산 100%' 어쩌고 하는 문구가 보여서 살펴보니 주원료인 콩은 미국산인데 ’ 100% 우리나라에서 짰다'는 말이라서 실소가 나왔네요. 간장은  탈지대두와 소맥분이 100% 미국산이었고 밀가루의 성분은 밀 100% 호주산... 시나브로 수입농산물은 우리가 원하던 원치 않던 벌써 식탁을 다 점령해버렸습니다.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고소한 빵 냄새에 끌려 시식코너를 지나가는데  갓 구운 빵을 먹기 좋게 잘라 놓았기에 먹어보니 참 맛있습니다. 조금 묵직한데 빵 한 개에 5,000원입니다. 예전에 즐겨먹던 단팥빵이 천 원이었는데 그게 가장 싸더라고요. 나오면서 입구에 껌이 보이길래 집어보니 한통에  500원이군요. 아, 쌀 한 포대는 제일 좋은 것으로 5만 원이었습니다. 100% 국산입니다. 아니 어째서 쌀은 10년 전 가격 그대로일까요? 집에 돌아와 한국인의 주식인 쌀값은 얼마나 하는지 궁금해서 검색해 봅니다.


- 쌀 20Kg-

서울 : 57,800원

대전: 46,000원

대구: 46,800원

광주: 46,800원

부산 : 46,600원

평균 쌀값  49,300원입니다.


쌀 20Kg는 대략 200명이 먹을 수 있다는군요. 넉넉히 150명분으로 계산해보니 밥 한 그릇이 340원... 세상에나 밥 한 그릇이 껌 값보다 못하다니 참으로 기막힌 현실입니다.      


다이어트와 외식으로 쌀 소비량은 계속 줄어만 갑니다. 4인 기준 외식 한 끼는 얼마일까요? 우리는 외식 한 번으로 쌀 한 두 가마를 거뜬히 먹어치우는 셈입니다. ㅠㅠ 그런가 하면 커피전문점에서 파는 커피는 기본이 4~5천 원 하죠. 더운 여름 달콤하고 시원한 팥빙수는 8천 원이었답니다. 한국 식당 어디를 가도 커피자판기가 상시 준비되어 있는 걸 보면 가히 커피 수입국 1위가 한국이라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음료인 커피 열 잔과 쌀 한가마를 비교하는 게 훨씬 이해가 쉬울 듯합니다.      


공산품은 말할 필요도 없고 수입과일과 육류도 오래전에 들어왔지만 음식을 만들 때 사용되는 기본 식재료들이 이렇게 수입산으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한 해 풍년이 들면 분명 좋은 일인데 마냥 기뻐할 수만 없는 것이 농산물 가격이 폭락해서 원재료 값도 건질 수 없으니 농부들은 다음 해 농사에 대한 의욕마저 잃어버립니다.

농촌은 지금 젊은이들이 다 떠나가 어린아이들 웃음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아요. 한 개 면단위에 있던 3곳의 초등학교를 한 학교로 통합했다는데 지금, 전교생이 유치원생 포함하여 50명도 안 된다는 말을 듣고 보니 농촌의 암울한 미래가 보이는 듯합니다.     



쌀을 지키고 벼농사를 계속 짓는 것은 곧 농지를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자고 일어나면 뚫려있는 도로들, 조금은 더디 가도 좋으니 그만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헛된 희망을 품어봅니다. 농지 자체가 훼손당하면 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기초식량의 생산기반 자체를 아예 포기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지요. 만약 농민들이 농사를 포기한다면 결국 우리나라는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없게 되고 식량을 모두 수입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지 않을까요? 당장 현재에는 그리 큰 타격이 없겠지만 앞으로 10년∼20년 아니면 머지않을 미래에 우리는 식량문제로 엄청난 문제에 직면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중년인 제가 살아가는 세상보다 후손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생각하면 그저 막막해지고는 합니다.

      

농민이 농사를 포기하여 전 국민 모두가 수입농산물로 먹거리를 해결해야 한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겠습니까? 1980년 우리나라가 흉작이 들었을 때 다국적 곡물기업이 쌀을 평상시의 3배가량 올려서 판매한 사례가 있고 1994년 일본에 흉작이 들었을 때, 국제 쌀값이 톤당 220달러에서 650달러로 3배가량이나 올랐답니다.  설마 그럴 리야 없을 거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네요. 또 어쩌면 괜한 걱정을 사서 하는 저도 미련스럽습니다. 그냥요. 제가 늘 상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고 가끔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그런 날입니다.^^



제가 조금은 젊은 날에 치기 어린 마음도 있었던지, 조금은 정의감에 불타올랐던 열정적인 시절을 보낸 적도 있었답니다. ^^     


2005년 12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각료회의가 홍콩에서 열렸는데 저지 투쟁을 하느라 홍콩을 갔었다지요. 홍콩에선 각 국에서 온, 자국 농업은 지켜야 한다는 의협심이 강한 사람들에 의해 시위가 벌어졌고 홍콩 정부는 사상초유의 유래 없는 다수의 사람들을 감옥에 쳐 넣어야 하는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죠. 잡아들인 사람에게 수갑을 채워야 하는데 그 많은 수갑이 없었으니 전선을 묶는 플라스틱 끈으로 사람의 손을 묶어야 했던 웃지 못할 일이 있었던, 그때 저도 홍콩의 감옥 방에서 하루를 보낸 조금은 재미있는 추억이 있습니다.    

  

요즘은 맑은 하늘을 보기가 너무 어렵네요. 대도시야 그렇다 하더라도 농촌에도 가보면 한낮인데도 안개처럼 뿌연 먼지가 하늘을 가려 햇빛이 제대로 내리지 않습니다. 제가 어린 날에는 땅을 파면 보물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를 했는데 지금은 땅 파면 쓰레기들이 나올 겁니다.  이러다가 우리의 아이들과 아이들의 아이에게 공해로 가득 찬 세상을 물려줄 수밖에 없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밥 먹자고요. 하루에 한 끼만이라도 밥을 먹게요. 근사한 외식 한 번 줄이고 비싼 다이어트 약 먹는 것보다 갓 지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에 맛있는 된장국과 몇 가지 반찬이면 살 안 쪄요. 다이어트 절로 될걸요. ^^

농촌은 도시의 많은 사람들의 고향입니다. 농촌을 살리자는 게 아니라 우리 강산을 지키자는 것이며 우리 삶의 토대인 이 땅을 지켜가자는 얘기입니다.  우리의 입에 들어가는 밥 한 그릇, 농사짓는 농부들의 수고를 생각하며 굶지 않고 배불리 먹을 수 있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 맛있는 밥을 먹읍시다.^^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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