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메일을 정리하다가 일기 쓰기는 귀찮고 하여 기록 형식으로 적어둔 글들을 발견하곤 하나씩 열어본다. 저장된 메일 속에는 짧은 글이 대부분이지만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잘 썼거나 못 썼거나 행복했던 시간도 혹은 힘들었던 심경도 모두 추억이 되었으니 기록은 정말 좋은 것이지 싶다. 나이가 들면 생각도 나이를 먹게 되겠지. 50이 되고 60이 되고 70이 되고 또 세월은 흘러 이 세상을 떠날 날도 올 거야.
이 세상에 온 것 하나만으로도 행운이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까. 사랑하는 내 아이들과 또 아이들의 아이에게 전해 줄 이야기를 사진과 그림과 글을 곁들인 스토리텔링 형식의 책을 쓰고 싶다는 작은 소망 하나, 그래서 오늘을 기록한다. 2002. 4. 18.
25년 전에 사랑하는 외할머니가 떠나시고 유품을 정리할 때는 정말 슬펐다. 할머니가 쓰시던 손때 묵은 물건들과 장을 보시기 위해 쓰신 듯한 글, 혹은 곗돈을 타는 날이거나 숫자가 적힌 종이를 읽어보며 정리를 했는데 할머니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물건들이 할머니가 이 세상에 안 계심으로 더 이상 그 가치를 잃게 되었다. '할머니 86년의 삶이 빛바랜 사진 몇 장으로 남다니...' 생각하며 참으로 허망했는데 선반 위에 고이 모셔둔 상자에서 오래된 몇 권의 족보를 발견했고 마지막 한 권의 족보에 종이가 끼워있는 것을 보았다. 먼저 가신 외할아버지께서 할머니를 위하여 그리 해놓으셨을 것이었다. 남아선호 사상이 유독 강했던 시대에 생전에 아들 없는 허전함을 감내하셨던 할머니는 그 족보 속에 이름 한 줄로 남아계셨다. 아니지~ 할머니의 피가 내 안에 흐르고 있고 내 아이와 아이들이 있으니 할머니는 영영 가신 건 아니다.
애들이 어릴 때는 스냅사진을 찍어서 두터운 앨범에 보관해 놓고는 그 앨범을 꺼내 보는 일이 별로 없다. 사진에 담긴 많은 추억들은 다른 책들과 다름없이 책장에 꽂힌 채로 먼지가 쌓여가지만 대청소를 하게 될 때야 비로소 앨범을 꺼내어 보게 되고 한두 장 넘겼다가 이내 퍼질러 앉아 추억 속에 빠지게 된다. 책장을 살펴보면 다양한 책들이 꽂혀 있지만 한두 번 읽고 나면 나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서 내게는 존재가치는 없어진다. 앨범을 꺼내 보는 일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보아지지 않고, 대대로 내려오는 족보는 내 가족의 이름이 단 한 줄로 기록되어있으니 소장용일 뿐 그다지 의미가 깊어 보이지는 않는다.
큰 녀석이 열 살 되던 무렵에 타임캡슐에 대한 얘기가 자주 회자되었었다. 그때 우리는 예쁘게 나온 사진과 함께 미래에 대한 계획과 포부를 적은 종이와 각자 아끼는 물건 하나씩을 넣어 밀봉해서 뒤뜰에 묻어놓자고, 그래서 20년 후에 꺼내보자 단단히 별렀는데 결국 하지 못했다. 그때 조금만 부지런했더라면 올해는 그 타임캡슐을 꺼내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본다면 허접한 물건들이겠지만 어느 보물 못지않게 소중한 추억이 되었을 것임에 아쉽기만 하다.
스토리텔링 북
휴대폰의 발달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사진을 찍어 올릴 수 있다. 요즘 출시되는 똑딱이 카메라 역시 사진을 찍어서 SNS로 바로 전송이 가능하다고 해서 새삼 놀라웠다. 그런가 하면 디지털카메라는 수백 장을 찍어도 필름 값이 들지 않으니 좋기는 하지만 사진 파일을 컴퓨터나 외장하드에 저장해 두는데 기기의 고장으로 낭패를 보기도 해서 반영구 보존을 하려면 CD에 구워 놓아야 하는 단점이 있다.
감사하게도 큰 포털사이트에서는 개인에게 사이버 공간을 제공해준다. 블로그나 메일 카카오스토리 브런치 등을 택해서 내 공간을 만들어 놓고 그곳에 사진과 글을 올려놓는 일이다. 공개를 해놓거나 나만 볼 수 있게 ‘비공개’를 해놓고 틈틈이 한두 장의 사진이거나 기록 형식의 몇 줄의 글만 올려두어도 나중에 기억을 떠 올릴 수 있으니 이 방법처럼 좋은 것이 또 있을까 싶다.
휴대폰으로 오래된 사진을 찍어서 블로그에 올려놓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책은 부피가 작아서 보관도 용이하고 내가 만든 스토리텔링 북은 책장에서 가장 소중한 가보로 남게 될 것이다. 내 아이들에게 물려줄 우리 집안의 역사책을 써보는 것, 정말 근사하지 않은가!
오래전에 아이들에게 ‘스토리텔링 북’에 대한 얘길 꺼내자 아이들이 말했다.
"엄마가 시작하시면 저희들도 이어서 만들어 볼게요." ^^v
- Epilogue-
제가 그동안 써둔 글을 읽어보니 고개가 갸웃~ 해지며 생각이 많아지더군요. 내 마음이 어두운 건가?? 하는 생각들... 제 글은 소설이 아닌 산문형식이고 개인적인 경험과 견해에 의한 수필에 가깝습니다. ^^
제 기억의 원천이 부모님과 외조부모님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되었으니 글을 쓰다 보면 그리움으로 변해 애잔함으로 끝나기도 하고, 제가 아동보육을 전공했던 터라 아이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짧은 소견을 피력하게 되더라고요?! 일상적인 일들을 보고 느끼고 흥미 있는 것을 생각나는 대로 표현하게 되는데 '기분은 전염되는 것'이라 행여 마음 상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미안해지는 마음도 있어요. ^^;;
제 글을 읽으시는 분은 저의 마음을 훤히 보고 계신 것이나 다름없으니 한편으로는 부끄러워지기도 하지만 '공감하고 응원하고 있다.'라고 말씀해 주시니 용기 내어 올려놓습니다. 읽고 나신 후에는 담벼락에 쓰인 글을 읽었다 생각하시고 돌아서서 까마득히 다 잊어주옵소서~! ^^v
다음카카오 스토리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올려놓은 사진과 글들을 모아 책으로 출간할 수 있게 되었다. 책은 보관이 용이하도록 튼튼한 양장본으로 만들어졌으며 크기는 A4용지보다 크다. 올로그 스토리북은 스마트폰으로 올리는 사진들이 대부분이라서 사진의 크기와 화소수가 적어서 사진 품질이 약간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꽤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