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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원 May 15. 2017

사랑의 깊이


"엄마, 나와 유나 중에 누가 더 좋아?" 둘째가 물었다. 설핏 장난기가 발동하던 것을, 아서라~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거야? 설마 어린 조카에게 질투하는 것은 아니겠지?! ^^ "  "아니 그냥..." 녀석은 무심한 듯한 대답 했지만 어쩌면 정말 궁금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외손녀가 태어난 이래 나의 주된 관심사는 손녀였고 휴대폰에는 온통 손녀 사진으로 도배되었다.      



나는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 그리 길지가 않다. 서울 한강변 서부이촌동에서 살던 집이 원인모를 불이 났다고 한다. 집을 짓기 위해 부모님은 갓 태어난 여동생만 놔두고 3남매를 광주 외갓집에 맡겼다고 했다. 외할머니 슬하에는 엄마와 이모, 딸만 둘이었는데  둘 다 서울로 시집을 보냈으니 두 분은 적적하셨든지 딸이 집을 다 짓고 난 뒤 3남매를 데려가려 했을 때 셋째인 나를 키워주겠다고 잡으셨고 그리하여 나는 유년의 시기를 고스란히 외가에서 보낸다. 

그리고 12살 되던 해 서울로 전학을 하여 부모님 곁에서 살게 되었는데  그 후  또 여러 가지 이유로 가족들과 떨어진 생활을 하게 되더라. 가족과 먹고 자고 잠들었던 시간을 손꼽아보면 고작 1여 년 정도...  




지금이야 난방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60년대에는 지푸라기나 마른 장작, 소나무 잎, 떡갈나무 무 등으로 불을 때어 난방을 했다. 할아버지는 거의 날마다 가까운 앞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는데 산에 갈 때는 항상 바지게(싸리나 대오리 따위로 만든 발채를 얹어 놓은 지게) 위에 나를 올려놓기를 좋아하셨다.  흥얼흥얼~ 할아버지 듣기 좋은 노랫소리를 따라 지게 위의 나는 흔들거리고 파란 하늘과 구름과 잠자리를 보는 동안 나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어느 때는 깜빡 잠이 들 때도 있었다. 산에 도착하면 맹감나무, 아그배, 도토리 열매들을 낫으로 베어 주시고 할아버지가 갈퀴로 소나무 잎을 모으고 나뭇가지를 베는 동안 나는 그 열매들을 쇠곽에 넣고 예쁜 꽃들을 따서 소꿉놀이를 한곤 했다.




친정부모님께 맡겨 놓았지만 부모님은 품에서 떼어놓은 자식이 많이 애틋하셨을 것이다. 부모 자식 간의 소통이 편지가 전부인 데다 유일한 교통수단이 기차밖에 없었던 그 시절에는 서울과 광주는 멀고 멀기만 했을 것이다. 부모님은 광주로 내려오는 인편을 어찌 잘 알아내시었고 자식에게 필요한 물건을 조달해 주셨다. 부모와 자식이 꼭 같이 살아야만 사랑이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외조부모님의 지극하신 손녀 사랑과 함께 내 부모님의 사랑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고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자양분이 된 것은 틀림이 없다.  




내가 지금 딸아이의 나이 때쯤이다. 휴가를 맞아 광주 집에 내려왔는데 방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엄마는 조금은 당황스러운 몸짓으로 보고 계시던 상자를 닫으셨다. "엄마, 그거 뭐예요?" "응, 언니에게 줄 것 하나 샀다." 열어보니 새언니를 위해 엄마가 옷을 사신 모양이었다. 그 옷이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문득 든 생각 하나 '어쩌면 엄마는 나보다 새언니가 더 좋을지도 몰라!' 그때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많이 바뀌어 딸 둘에 아들 하나면 금메달 이라거나 혹은 아들 많은 집을 빗대어 동메달이라는 슬픈 속담이 생겨났는데 내 부모님 세대에는 남아선호 사상이 강한 시절이었다. 부모님 사후에 제사를 모셔줄 맏며느리에 대한 엄마의 사랑을 이해는 했고 또한 나와 엄마가 함께 살 비비며 사는 세월이 너무 짧았던 것이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되더란 말이다. 그러나 엄마에게 굳이 묻지 않았다. 엄마가 딸에 대한 사랑의 깊이를 변명하시게 하는 게 싫었다고나 할까...


     

"할머니의 사랑이 아무리 크다 해도 부모보다 더 하진 않겠지? ^^ 무럭무럭 자라는 유나를 보며 행복해하는 언니와 형부의 웃는 목소리가 엄마는 참 듣기 좋다. 유나가 자라면서 제 부모의 말을 안 듣는다면 내 딸을 아프게 하는 거니까 그때는 손녀가 미워질지도 몰라. 엄마에겐 자식이 먼저거든~!! 그러나 또 그렇더라도 유나는 엄마의 핏줄이고 보면 아무리 미운 짓을 한다 해도 그게 얼마나 미워지겠니. 그렇겠지?! 너희를 키울 때는 바빠서 멋모르고 그냥 지나갔는데 유나를 보며 다시 아이를 키우는 것같이 마냥 신기하구나.  네가 가장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누구겠니? 세상에서 우리 공주를 제일 사랑한다.^^  마치 어린 아기를 달래듯 엄마보다 더 커버린 녀석을 안으며 말을 해줬다.  그러자 녀석 하는 말, "피~ 엄마는 승연이가 물어도 똑같이 말할 거면서... " ㅎㅎ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사랑, 그걸 꼭 말로 해야 할까? 사랑은 마치 구슬과 같아서 그대로 두면 데구루루~ 굴러가 알알이 흩어질 수도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되듯이 '사랑한다.'는 말은 남발할수록 좋다.  돈이 결부된 사랑은 변질되기도 하지만 따뜻한 음성의 ‘사랑한다.’는 서로를 묶어주는 아주 단단한 끈이 된다는 걸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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