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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다시 쓰기 시작한 건 그쯤이었다. 이야기는 항상 골목길에서 멈췄다. 어린 시절, 가여운 것들은 항상 골목에 있었지. 가난한 동네 길고양이, 작은 강아지, 더 작은 공벌레, 개미들, 몸이 불편해 골목 앞까지밖에 나오지 못하던 나의 아버지. 생명이 있는 모든 건 왜 그리 다 슬펐던 걸까. 저마다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들이 가여워 혼자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골목을 서성이곤 했다. 꼬리가 잘린 고양이를 집에 데려가고 싶었지만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 말고는 방법을 몰랐다. 낡은 빌라 입구 평상에는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 앉아 수박을 쪼개 먹거나 깍두기를 버무리곤 했다. 한바탕 소음이 가라앉고 저마다의 부엌에서 밥솥 추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저녁 시간이면 아버지는 그 평상에 앉아 나를 기다렸다.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자꾸만 집에서 멀리, 더 먼 곳으로 빙빙 돌아 골목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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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사람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이른 시간이라 식당 주차장은 한산했다. 대체 왜 이런 곳에서 회식을, 그것도 토요일에 하느냐고 다들 불만이 많았지만 인원이 빤한 작은 사무실에서 빠지기란 쉽지 않았다. 미경 씨가 같이 만나서 가겠냐고 물었지만 어딜 들렀다 가야 한다고 둘러댔다. 다정하고 이야기 잘하는 미경 씨가 좋았지만 조용히 혼자 버스를 타고 창밖을 보고 싶었다. 백숙 집 뒤편에는 숲으로 난 작은 산책로가 있다고 했는데. 외곽이라 서둘러 탄 버스는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고 숲을 걸어도 좋겠다는 생각에 조금 설렜던가. 가을볕을 받으며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그의 차가 주차장에 있는 것을 보았다. 내가 어쩌지 못하고 서 있는 사이 그가 차에서 내려 내 쪽으로 걸어온다.
마음이 방울방울 흐려질 때면 서랍 속 사슴 열쇠고리를 꺼내 만지곤 했다. 그가 보이면 괜히 발길을 돌리거나, 내게 뭘 물으면 답을 못하고 머릿속이 하얘지거나, 점심 식사 자리에선 그와 멀찌감치 떨어져 앉으려 애썼다. 그가 쓰고 있는 글을 읽고 싶다는 생각, 그와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 때면 내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알 수 없어 자주 고개를 돌렸다. 내 책상 위에 누군가 놓고 간 소설가의 신간을 봤을 때 나는 그를 돌아다봤던가. 메모지 위에 적힌 그의 글씨에 가만히 손을 올려 보다가 그가 연필로 쓴 글자 위에 엷은 테이프를 붙였다.
잎이 떨어지기 시작한 가을 나무는 몸통 가득 들숨과 날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숲에 난 좁은 산책로를 따라 그와 나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걸었다. 서로의 어깨가 가까워지기라도 할 때면 금세 간격을 되찾으려 애썼다. 함부로 흔들린 손이 그의 옷자락에 스칠까 어깨에 걸친 토트백 끈을 꼭 쥐었다. 그의 발자국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내 주변을 서성인다. 햇빛이 부서지는 숲에 네 개의 발자국이 어지럽게 흩어진다. 무슨 말이든 하고 싶은데 떠오르는 문장이 없다.
“사슴은 효과가 좀 있어요?”
“네?”
“도은 씨는 사랑하는 게 많아서 더 슬프겠어요.”
“.......”
“이번 기획 기사요. 참 좋았어요. 인터뷰 글은 인터뷰어가 인터뷰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고스란히 드러나잖아요. 도은 씨가 어떤 마음으로 그 분을 보고 있는지 다 전해졌어요. 아주 작은 것들도 어떤 마음으로 사랑하는지 느껴졌어요.”
“아, 네.......”
“도은 씨 글 참 좋아요. 읽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져요.”
무언가 말하고 싶은데 문장을 찾는 일이 여전히 어렵다. 마음이 와르르 쏟아져 버릴 것 같아 어떤 말도 꺼내지 못한다. 저도 당신의 슬픔이 궁금해요. 당신이 혼자 쓰는 문장이 궁금해요. 속으로 말하는데도 마음이 먼저 달려 나간다. 볕이 어른거리는 그의 얼굴을 스치듯 본다. 내 발 주변을 서성이는 그의 발자국. 어지러운 우리들의 발자국. 다가섰다 멀어지고 다가섰다 돌아서는 그 발자국을 혼자 두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 나는 어쩌자고 그의 팔을 붙잡았을까. 실수였을까. 내 발이 어디를 딛고 있는지, 내 팔은 어디를 젓고 있는지. 마른 나뭇잎에 미끄러진 것도, 발을 삐끗한 것도 아니었는데 몸이 휘청거리고 정신이 아득했다. 그의 손이 내 어깨를 잡았는지 내가 그의 허리를 안았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그를 안은 채 숲의 바람을 맞고 서 있다. 서늘하고 가슬가슬한 그의 카디건에서 마른 나뭇잎 냄새가 났다.
그날 숲에서 그냥 돌아서 나왔다면 지금 우리는 다른 모습일까. 그 숲이 아니었다고 해도. 같이 걷던 골목길에서, 좁은 복도 끝에서, 엘리베이터에서 어깨를 비껴 지나치다가 한번은 닿고야 말았을까. 나는 자주 그날을 떠올렸다. 시작하지 않았어야 했다고 경솔했던 나를 원망하고 탓하면서도 서늘한 그 감촉이 그리워 숲 냄새가 남은 니트 스웨터를 가만히 만져보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