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호> 4

by 남몰래

*


대낮의 침실은 허공에 떠 있는 새 둥지 같다. 우리에게 전부인 비밀스러운 세계는 실은 태양이 내리쬐는 세상 한가운데 매달려 있다. 오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고개를 들어 우리를 쳐다본다. 온갖 소란스러운 소음과 눈빛을 얇은 블라인드 한 장으로 가리고 있다는 것이 새삼 부끄럽다. 블라인드와 창 사이 틈으로 스민 햇살이 침대 모서리를 엷게 비춘다. 이 위태로운 둥지에서 우리는 말할 새 없이 서로를 안는다. 그는 내 옆에 누워 있고, 우리는 어느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겠고, 그러면서 나는 눈을 감지도 그의 얼굴을 바로 보지도 못하고 빛과 소음이 들이치는 창문의 틈만을 내내 바라보았다. 이곳이 어딘지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순간이 신기루 같다.


우리는 아주 가끔, 그의 출장이 취소되는 일처럼 예측할 수 없는 시간에 회사 밖에서 만났다. 함께 공원을 산책하거나 카페를 가는 건 허락되지 않았으므로. 갈 수 있는 곳은 내 오피스텔, 404호뿐이었다. 그가 내 책장 앞을 서성인다. 내가 쓰다만 글을 읽는다. 도은아, 그가 내 이름을 부른다. 도은아, 나는 네가 좋았어. 네가 쓴 글들도, 낮은 목소리도, 눈빛도. 따뜻했어. 안고 싶었어.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마음이. 그렇게 됐어. 미안해. 그는 나를 안는다. 나는 그의 눈에, 눈물에 키스한다. 세상에서 그의 슬픔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가 불운이라 여기는 것들을 아니라고 속삭여주고 싶다. 서늘한 그의 목덜미를 감싸 안아주고 싶다. 내가 없었던 그의 모든 시절을 거슬러 올라가 내 사랑을 쏟아 주고 싶다. 세상에서 당신을 가장 사랑해 준 사람은 누구에요? 할 때 그 얼굴에 들이치는 엷은 빛이 되고 싶다. 그 일이 내겐 왜 그리 중요했을까.


서울이 낯선 것이 그와 나의 공통점인지도 몰랐다. 십년 가까이 살았는데도 지나치게 높은 건물과 많은 사람이 익숙해지지 않았다. 넘치는 사람만큼이나 피로감이 쌓였다. 하루 종일 높은 빌딩 사이를 해매다 밤이 되면 서둘러 집으로 갔다. 내 방 문을 닫고 침대에 누우면 종일 들은 소음이 귓가에 남아 웅웅 거렸다. 암막 커튼 너머로 꺼지지 않는 조명이 밤새 일렁였다. 커튼을 치면 방은 금세 어두워졌지만 옅은 잠을 자다 자주 깼다. 내 방에서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은 길어야 서너 시간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에도 우리는 자주 설핏 잠이 들었다.

“죽은 듯이 자 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는데. 네 곁에서는 꼭 이렇게 잠이 들어. 어릴 때 눈 오는 밤이 꼭 그랬거든. 흰 눈이 쌓인 밤엔 어둠 속에서도 빛이 느껴지는데 그 빛이 부드럽고 따뜻해서 유독 더 깊은 잠을 잤어.”

내가 살던 곳은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 남쪽의 소도시였는데 그는 폭설이 흔한 강원도 산간에서 나고 자랐다. 광부였던 아버지는 그가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홀로 그곳에 남아 계신다. 워낙 교통편이 불편하고 먼 곳이라 명절이 아니고는 가기가 어렵다고. 좋았던 기억이 별로 없었다고도 했다. 나는 그의 팔을 베고 누워 온 세상이 흰 천으로 덮인 풍경 위에 눈이 소복소복 쌓이는 모습을 그려보곤 했다. 도시의 조명과는 다른 부드러운 빛이 어둠 속에서 신비롭게 빛나는 밤의 풍경. 그의 얼굴에 남아 있을 그 빛을 찾으려 잠든 그의 모습을 내내 들여다봤다.


짧은 시간 그가 머물다 돌아가면 오피스텔을 나와 해질녘 공원을 걸었다. 여름의 태양은 아직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밝다. 햇살은 부서지고 나무는 긴 그림자를 만든다. 사람들은 분주하고 나는 발길 닿는 대로 걷는다. 빈방에 혼자 남아 그가 신었던 슬리퍼에 발을 넣어 보거나 그가 앉았던 소파에 앉아 있노라면 내 방이 통째로 어미 새에게 잊힌 둥지가 된 것 같았다. 그가 있었던 자리에 그가 없는 빈 풍경을 마주하기가 싫다. 돌아간 그에게서는 연락이 없고, 함께 나눈 시간이 꿈처럼 아득할 때면 발자국도 없는 그의 방문이 쓸쓸해 어두워질 때까지 집 밖을 서성였다. 깜깜해지길 기다렸다가 방으로 돌아와 불도 켜지 않고 침대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 자다 깬 새벽에 그의 문자를 본다. ‘도은아, 잘 자.’ 어둠 속에서 작은 휴대폰 창이 빛난다. 의미를 곱씹을 것도 없는 몇 개의 글자를 이리저리 바라본다. 꿈은 아니었구나.



*


회사를 옮긴 건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무실에서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는 게 힘들기도 했지만 회사의 비전에 맞는 희망을 찾아 매번 새로운 얼굴을 발견한 듯 글을 쓰는 일이 지겨웠다. 선배 언니가 소개해준 작은 출판사였고, 수입은 적고 일은 많았지만 뻔한 문장에서 조금 더 자유로운 곳이었다. 그와 만나는 시간도 자연스레 줄었다. 나는 언제든 괜찮았지만 그는 시간이 자유롭지 못했으므로 오로지 그의 시간, 언제일지 모를 그의 일상 속 균열만을 기다려야 했다. 그의 연락이 드물어지면 그와 헤어지는 중이라 생각하며 나를 달랬다. 어차피 우리는 헤어져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이대로 영영 연락이 없다면 우리가 우리였다는 사실은 영원한 비밀이 되겠지. 그리운 마음은 조금씩 부스러져 사라질 거야, 생각하면서도. 생각만으로도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아침의 결심은 밤이 되면 무너지고. 그와 다시 만나고 혼자 헤어지는 일을 반복했다.


“퇴근하고 사무실 앞으로 갈게. 두 시간쯤 같이 있을 수 있겠다. 보고 싶어. 도은아.”

“응. 기다릴게.”


우리는 어두운 곳을 찾아 헤맨다. 안부를 물을 겨를 없이. 차를 세우고 급하게 키스를 한다. 그와의 키스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 날이 올까. 그가 그리운 날에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가만히 빈 손등에 입술을 대어보곤 했다. 그의 입술이 닿는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그가 나를 안는다. 그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가 내 뺨을 만진다. 나는, 나는 오직 그를 위해 존재한다. 이 세상에서 오로지 나만이 그를 위로할 수 있다는 어리석은 착각을 하면서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춘다. 이 끝에 어떤 허무가 밀려와 잿더미가 된다 해도. 지금 이 순간 그를 안은 팔을 풀 자신이 없다.


그의 아내에게 전화가 왔을 때, 나는 깜짝 놀라 차에서 내렸다. 급하게 내리느라 외투도 챙기지 못하고 차 문을 닫았다. 바람이 차가웠지만 그가 아내에게 하는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는 나를 부를 때와 같은 목소리로 아내를 부를까. 그의 아내는 어떤 말로 그를 부를까. 나는 그의 삶 어디쯤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났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나는 그의 삶에 어떤 자리도 아닐 텐데. 소수점 뒤 희미하게 쓰인 숫자는 될까. 반올림도 안 되고 사라지고 말 숫자. 차 문을 내리고 그가 나를 부른다.

“도은아, 춥지? 얼른 타. 옆에 있어도 되는데 뭐 하러 내려.”

그가 미안해하며 내 손을 잡는다. 나는 그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아 손을 놓지 않는다. 그가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과 나를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같고 다를까, 둘 중 한 마음은 거짓일까.


정해진 시간이 되면 그는 돌아가야 하고 우리는 단정히 작별 인사를 한다. 나는 그의 차에서 내려 소음과 빛이 가득한 지하철로 간다. 규칙적인 기계의 소음은 서로의 소리를 덮고, 밝은 조명은 마주 앉은 사람을 지나치게 밝히고. 나는 조명아래 옷을 벗고 서 있는 기분이다. 방금 끝낸 섹스를 사람들이 눈치 채지 않을까. 나의 목소리, 표정, 몸짓, 옷매무새 같은 것이 그들을 상상하게 하지 않을까. 한바탕 앓아도 좋겠다고. 앓다 사라져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가 울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슬프다는 말을 하려다 허락되지 않은 말이라 생각한다. 글로 쓰지도, 마음을 호소하지도 말고 조용히 혼자 삼킬 일이라 생각한다. 어디에 선을 그어야 울지 않을 수 있는 걸까. 그건 내가 정할 수 있는 일일까 생각하는 사이 지하철은 빈 몸으로 공허한 어둠을 가로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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