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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둠 속에서 차를 몬다. 말이 없다. 그의 눈도, 그의 입도. 미동 없이. 오로지 운전에만 집중하는 그의 서늘한 얼굴에 마음이 얼음으로 베는 것처럼 시리다. 기어 변속기 위에 있는 그의 손 위에 내 손을 얹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어쩐지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운전할 때 한 번도 내 손을 놓은 적이 없었는데. 지금 그는 그럴 정신이 없다. 신호가 바뀌기 무섭게 차를 몬다. 속도가 높아지고 나는 눈을 감는다. 모두 내가 자초한 일이다.
"준호 씨, 나는"
자동차 소리에 목소리가 묻힌다.
"나는. 적당한 마음을 몰라. 나는......."
"도은아, 무슨 소리야......."
"나는 준호 씨......"
끼익. 너무 놀라 눈을 감았다. 차선 변경을 급하게 하던 그의 차가 옆 차선 트럭을 받았다. 당황한 그가 차에서 내렸다. 함께 차를 타고 갈 때는 속도나 신호 위반을 조심해 왔다. 그런데 교통사고라니. 그는 내게 내리지 말라고 당부하고 차에서 내려 트럭으로 다가갔다. 주변에는 시시티브이가 많을 것이다. 나는 덜덜 떤다. 차는 앞 범퍼가 좀 찌그러졌고 상대편 트럭은 별 이상이 없었다. 그가 트럭 기사에게 명함을 건네고, 아내에게 전화를 한다.
"응. 자기야. 아, 다친 데는 없고. 응. 괜찮아. 응. 혼자지. 출장 왔다가. 걱정 마. 미안해.“
나는 차에서 내려 아내를 안심시키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 응, 자기야. 응, 걱정 마. 응, 자기야. 응, 미안해. 나는 돌아서 걷는다. 이 자리에서 도망쳐 어디로든 사라지고 싶다. 오직 사라지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새 없이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큰길을 지나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 그의 전화가 울린다. 받지 않는다. 낯선 골목길. 언제나 함께 걷고 싶었지. 그 골목길에서 무엇이 얼마나 슬펐는지 같이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단 한 번도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그 슬픔은 나의 것이었는데 나는 왜 항상 그의 슬픔에만 애가 탔을까.
'도은아, 어디야. 걱정되니까 전화 받아.'
메시지 창이 깜빡인다. 그에게도 내 전화를 기다리던 순간이 있었을까. 그의 시간 어디에 나는 머무는 사람이었나. 나는 그동안 휴대폰에 매달려있던 나의 슬픔, 언제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나의 작은 사슴을 낯선 골목에 내려놓는다. 안녕. 너와 함께 하는 순간부터 나는 전보다 훨씬 더 많이 울었어. 길을 걷다가도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그 슬픔은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것이어서 마음에 깊은 우물을 파고 또 피고. 그 안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나는 매일 너무 막막했어. 너는 내 마음에 관심이 없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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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울리고 나는 홀로 골목을 걷는다. 휴대폰 전원을 끈다. 끼고 있던 장갑을 본다. 그가 사준 털장갑 한 짝을 잃어버렸었지.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장갑 안에 붙은 테그를 찾아 같은 상품을 다시 주문했었다. 새로 산 장갑을 한참을 만져보면서. 내가 잃었던 것과 지금 이 장갑은 다르다는 걸 나만 알면 되는 걸까. 그에게 말하지 않아도 되나 미안해하면서도. 아니 어쩜 그도 알고 있었을지 모르지. 우리는 항상 잃어가고 있다는 걸. 귀퉁이부터 무너지는 마음이, 파도가 닿을 때마다 쓸려 나가고 허물어지는 위태로운 우리를 매순간 느끼면서도 우리는 애써 모른 척해왔을지도.
전원이 꺼진 세계가 이렇게 고요하구나. 매일 밤 그의 문자를 기다리며 옅은 잠에서 깰 때마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는데. 도은아, 부르는 목소리도. 잘 자, 깜박이던 메시지도 기다릴 수 없는 세계에서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나는 어두워진 거리에서 밤바람을 맞으며 쓰고 있던 소설의 마지막을 떠올린다. 열쇠를 찾던 여자에게는 자물쇠를 통째로 던져버리는 방법이 있다. 찾을 수 없는 슬픔은 깊고 검은 밤바다 속으로, 영영 던져버릴 수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