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우, <또 하루>에서
날이 맑고 하늘이 높아 가을이구나 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여름 구름은 흔적도 없고 하늘은 파랗고 깊은 우물의 눈동자 같다. 중력을 거슬러 던져 올린 작은 돌은 깊은 바닷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물구나무를 설 수 있다면. 저 하늘을 향해 팔 대신 발을 뻗고 밀려드는 파도를 발로 툭툭 차면서 겅중겅중 가을 하늘을 걸어볼 텐데. 걸을 때마다 파란 잉크가 바짓단을 적실까. 물속을 걷는 두 개의 다리 휘적휘적. 열 개의 손가락 뻗어 나무의 정수리를 간지럽히는 동안. 날이 맑고 하늘이 높아 고개를 들어보니 숨을 곳 없는 새가 부끄러운 날갯짓하며 긴 바다를 횡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