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록, <염소 계단>에서
주저앉는다. 뭘 하려다 말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리는 건 오랜 습관 중 하나. 파라솔 아래에 앉아 탄산이 빠져나간 콜라를 마시며 간절해지는 일 없이. 접힌 무릎으 기어가는 법 없이 주저 않은 채로 눈을 감는다. 무엇을 더 얻을까 궁리하기 보단 무엇을 포기할까 각오하는게 그의 일. 파도는 백사장 앞에서 매번 엎어진다. 맹렬히 달려오다가도 새하얗게 부서진다. 부서지고 사라져 밀려간다. 파도에게 가장 두려운 건 간절히 원하는 일. 무릎으로 기어서라도 어딘가에 닿고 싶다는 마음. 사람들이 돌아간 오후의 해변에서 마음을 버린 파도가 다시 먼바다로 밀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