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 쓰기> 내가 새라면

김현, <내가 새라면>에서

by 남몰래

내가 새라면 나는 먼 숲의 새 떼들 속에 살고 있겠지. 가을볕이 찡그린 얼굴 위로 쏟아질 때 그 빛을 뚫고 날아오르겠지. 허공에서 우뚝 멈출 수 없어 기쁨도 슬픔도 없는 날갯짓하겠지. 날아오르는 내 그림자를 나는 본 적 없겠지. 그게 얼마나 길어지는지 우스꽝스럽게 짧아지는지. 나는 그림자의 무게조차 잃어버리겠지. 감탄을 잃은 돌덩이가 되어 고개를 파묻고 걷는 사람으로 태어난 건 어떤 형벌일까? 내가 새라면 오후의 가을빛이 정수리를 따뜻하게 감쌀 때 뜻 없이 눈물짓겠지. 훌쩍 날아오르면 그 눈물 무게조차 흩어지겠지.

작가의 이전글<10분 쓰기> 목소리처럼 사라지고 싶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