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며칠 후>의 첫 문장
며칠 후 나는 서울에 간다. 마침내 이름의 운명을 따라 서울로. 엄마, 내 이름 끝자는 왜 서울 '경'이야? 서울이 좋은 데니까 그렇지. 크고 귀한 곳이니 그렇지. 나는 서울 '경'의 경이. 경이는 이제 며칠 후 서울에 간다. 엄마, 잘 지내. 나는 이제 내 운명을 살러 가.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서울은 새초롬한 얼굴로 역에서부터 경이를 모른 척하겠지. 시골 철학관에서 십만 원에 갖게 된 경이의 이름에는 관심도 없겠지. 경이가 숲에서 나무를 세듯 쏟아지는 사람들의 머리통을 세면서 그들을 나무둥치 껴안듯 일일이 안으려 할 때. 나가시는 분은 오른쪽으로 가세요, 오른쪽! 역무원 아저씨는 경이를 다그치겠지. 아저씨, 실은 제가 서울이에요. 서울을 사랑하러 왔어요. 입안에서만 맴도는 말이 들릴 리 없지. 엄마, 내 이름 끝자는 왜 서울 '경'이야? 크고 귀한 곳에 가야지. 야자 끝나고 집 가던 밤이면 골목길 앞에서 주머니 안에 손을 넣어 미리 데웠다가 얼른 잡아주던 작은 손바닥, 발가락 끝이 비좁던 낡은 운동화를 새하얗게 빨아 말리던 아랫목 230미리 두 쪽만 한 곳. 서울 '경'의 경이는 그냥 그런 경을 갖고 싶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