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호> 1

by 남몰래

인적이 드문 바다를 찾을 수 있을까. 그가 낯선 도시로 출장을 간다고 했을 때 연차를 쓰고 따라나선 건 바다 때문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대. 거기서 한 시간 정도 있을 수 있겠다. 그는 지도를 확대해 건물이 없는 바다 쪽으로 차를 몰았다. 바다 얼마만큼 가까이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손바닥만큼만 볼 수 있대도 충분해.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해 당장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지만. 하늘이 파라면 바다도 파랗고, 하늘이 흐리면 바다도 흐린 게 좋았다. 애쓰지 않아도 닿아 있는 빛깔들. 우리도 손을 잡고 바닷가를 걸을 수 있을까?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급해진다. 그는 바다 입구에 차를 세운다. 흔한 편의점 하나 없는 외진 곳의 바다라 사람이라곤 개를 산책시키는 아주머니와 맨발 걷기를 하는 아저씨뿐이다. 낯선 지명에 마음이 놓였을까. 우리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와 나는 나란히 백사장을 걷는다.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초여름 해질녘의 공기는 시원한 해방감을 주었다. 바닷물이 쓸려나간 모래사장의 물결무늬를 본다.

“여기까지 파도가 밀려왔나 봐.”

“이 무늬는 어떻게 사라지지 않았을까.”

우리는 몇 번의 파도가 닿았다 멀어졌을 조개더미를 발견하고, 콩콩 작은 강아지 발자국을 찾아내고, 바람에 흔들리는 물소리를 듣는다, 나란히. 부드러운 모래에 발자국을 남길 때마다 나는 우리가 만든 무늬를 돌아본다. 파도가 밀려와 곧 사라질 흔적인 것을 알면서도 남겨진 자국에 마음이 떨린다.


밤중에 보낸 문자 메시지도, 책에 연필로 적은 메모도, 그리워 쓴 편지도 사라져야 한다. 책 귀퉁이를 접은 삼각형, 업무 관련 메시지, 단체 사진 속의 그와 나는 남길 수 있겠지. 가끔 내가 준 편지를 그가 어떻게 없앨까 상상해 본다. 그는 집에 들어가기 전 차 안에서 혼자 편지를 읽는다. 그리고. 더 이상 접을 수 없을 만큼 작게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있다가 몰래 종량제 봉투 아래쪽에 밀어 넣는다. 아니, 집에 가져가기 전에 더 이상 찢을 수 없을 만큼 잘게 찢어서. 그와 나의 이름을 아는 사람 없는 세차장 쓰레기통 같은 곳에 무심히 버릴까. 궁금할 때도 있지만 한 번도 묻지 않았다. 그건 마치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될까? 라고 묻는 일 같았으니까.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더 작아질 수 없을 만큼 작아지다 사라질까요? 잘게 찢어져 흩어질까요? 서로 사는 곳도 모르는 낯선 사람들이 될까요? 그는 뭐라고 답할까. 나는 왜 그를 곤란하게 할 게 뻔한 편지를 쓰고 또 쓸까.


나뭇가지를 주워 모래사장에 그림을 그린다. 나무를 그리고 꽃을 그리고 구름을 그리고 새를 그린다.

“도은아”

“응.”

“또 슬픈 생각해?”

뒤따라 온 그의 뺨이 내 목덜미에 닿는다. 지금 함께 있다는 것. 이 순간만이 유효한 꿈. 가만히 창밖을 보거나 말없이 그의 손을 만지작거릴 때, 가질 수 있는 건 그의 엄지손톱뿐이라는 듯 내내 그 작은 원 안을 맴돌 때, 흐르는 구름을 보며 '구름은 잠시도 같지 않아' 같은 말을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할 때마다. 도은아, 응. 말해, 혼자 슬픈 생각 하지 마. 그의 손톱을, 함께 본 구름을 잊고 싶지 않은데 잊으려 애쓰게 될 어느 날을 생각하면 나는 그것들을 오래 바라보거나 가만히 만져본다. 잊고 싶지 않다. 잊어야 한다. 부드러운 모래, 흐린 하늘과 바다, 그와 나란히 남긴 발자국, 나뭇가지로 그린 그림들. 지금도 나는 이 바다를 혼자 기억하려는지 모른다. 어디에도 쓸 수 없고 사진으로도 남길 수 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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