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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KGOD Oct 11. 2019

금연과 일기

3일차

18:26

주간과 야간을 오가는 보안 일을 하다보니, 하루의 기준이 광장히 모호하다.

내가 적는 시간대를 보면서 더 그런 생각이 든다.

마음이 든다.

아까 나오기전에 뜬금없이, 별로 친하지 않은, 심지어 같이 담배피기 조금 불편한 기사님깨서 담배 안피냐고 물어보는 상상을 했다.

왤까?

아직 그분은 나에게 안 여쭤봤고, 내가 아직 거절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런 논리라면 거절해야할 사람들이...

잠깐 상상했는데 너무 많아서 바로 포기했다.

기침 할 때 가래 튀어나오는게 너무 공포스럽다.

옷에 튀면 개노답이다 정말.....

아, 달빛조각사 게임 나온김에 소설도 정주행하려고 한다.

이 망할 작가가 어떻게 완결냈는지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18:58

팀장님이랑 종진이형 막담 피는 건 자연스럽게 안 따라가놓고, 정작 퇴근하는 종진이형이랑 막담 피는 상상함. 그 명치부근 쪽 장기가 꿀렁하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19:46

또 뭐 상상했는데 내가 여기에 적기 전에 얼른 사라지는 느낌?흠....

아 글고 어영부영 3일차. 그러니까 정확히는 2일하고도 7시간째인데 사실 헷갈려서 겁나 계산하고옴.

암튼, 어영부영 3일차 진입하다보니 괜히 들떠서 오랜만에 보게되는 사람들한테 말하는 상상을 한다.


"아, ^^ 나 담배 참고 있어. 한달 됐나?"


오바떨면 더 가기도 한다.


"담배 참은 지? 음... 1년정도 됐나?"


염병떠네 싶다가도 괜시리 기분 좋다.

흡연하는 상상 사이로 금연하는 상상도 들어가기 시작했으니까!


21:16

어제 야간 근무를 서면서, 담배 맛있게 핀다고 생각했던 외국손님이 씨카페에서 나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시원하게 담배 빠는 상상함.


23:40

고객이 택시 불러달래놓고 시간 남았다니까 담배피러갔다. 속으로 나도 모르게 부럽다고 생각해버림...이 걸 쓰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냥 오늘 피자! 며 달려드는 자기합리화. 거의 뭐 암살자 수준인데.


00:09

동원쓰 순찰 가고, 나 방제실 들어오는데 나도 모르게 '아, 시간이 비니까 담탐...'했다. 또또 이거 쓰는데 훅 하고 흡연욕구 치고 올라온다. ㅋㅋㅋㅋㅋㅋ 나참. 귀엽네?


00:25

범죄도시에서 윤계상이 담배 쫘악 피는 장면 나오는데 어우야....

좀 더 심도깊게 얘기하자면 '저 유명인도 피는데 나도 펴도 되잖아?'라는 자기합리화의 심뽀다. 유사품으로는 멋들어지게 담배피는 모델들의 담배컷이다.


06:23

비몽사몽

근무 중 가볍게 물을 한 잔 하는데 목이 건조하게 말라왔다.

아까부터 물을 너무 자주 마셔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러다보니 기다렸다는 듯이 내면에서 속삭여온다.


'물 많이 마셔도 칼칼해지네 목. 담배 피나 안 피나 거기서 거긴데 피자.'


자기합리화. 너란 녀석. 대단하다.

흡연이 아니더라도, 전 영역에 걸쳐서 자기합리화는 대단하다. 게으름의 주범.


07:04

이렇게 아침에 조장과 근무교대를 하면, 잠깐의 시간 텀이 생긴다. 담배 피기 아주 좋은 텀이다.

그런 연유로 자연스럽게 치고올라오는 흡연욕구.

이렇게 일일이 써보려고 하니 알겠다.

얼마나 많이, 자주 흡연욕구에 대한 유혹들이 많은지.

개중에서도 나 스스로가 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거!


08:22

아침에 민재 출근하는데, 당연하게도 같이 담배폈었다.

한명은 출근을, 한명은 퇴근은.

난 안핀다고는 했지만 혼자 피게하기 뭐해서 일단은 옆에 있어주긴했다. 뭐... 생각보다? 흡연욕구는 없었다.

슬슬 뻔한 타이밍에는 안 나타나는 느낌?

예를 들면 방금전에 진호형한테 안핀지 3일차라니까 코웃음치며 한달은 채우고 말하라고 했을 때?

괜시리 오기가 생기면서 약간의 스트레스에서 빼꼼 얼굴을 내민 것이다.


'실패했다고 우스워하는 게 한두번이야? ㅎㅎ그냥 피자. 한두번 겪어보냐!'


근데 얼마나 쫀심 상하는 건지도 모르도 눈치없게 튀어나오기는. 쯧


17:15

강준혁이랑 얘기하는데 어차피 못 끊을 거 잖아 이 병신아 이 등신아 이러는데, 나도 내가 실패한 전적이 많으니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나도 날 믿기 어려운 경지에 이르렀으니까.

그에 맞춰서 자기합리화가 또 지랄한다.


'저 말대로 어차피 못 끊을 거 잖아 ㅎㅎ 펴. 피자. 뭐 어려운 일이라고!'


그래.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여태 안 피웠을 때 뭐 별일 있냐? 없다. 돈도 아끼고. 오진다. 벌써 3일 4시간째...

아니, 이 기록이 올해 최고기록이라는 게 더 레전드다. ㅋㅋㅋㅋㅋㅋㅋ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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