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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KGOD Oct 12. 2019

금연과 일기

4일차

20:51

민구를 만나서 왕십리역을 나오는데

대학가다 보니 애들이 많다.

그 애들이 골목마다 즐겁게 담배를 피는데 캬...

나도 모르게 그 옆에 서서 담배 피는 상상을 했다.

이민구 이새끼 한시간 30분 지각해서 그 짬 나는 시간에 담배 피는 상상은 뭐 당연하게 했다.

이걸 쓰면서도 자기합리화는 속삭인다.

어차피 못끊어. 피자. 그냥 피자.

엿.


22:37

민구 만나서 간단히 맥주 한잔 하면서도 10번이상은 담배 욕구가 올라온 것 같다.

지금은 강구가서 은철이 볼 수 있으면 보는데 하나 얻어피는 상상하고.

근데 이 상상의 정도가 거의 기정사실화 하는 수준이다.

하긴, 가만보면 지금 단계에서 가장 거절하기 힘든건 은철이다.

워낙에 자주 담배도 같이 피기도 했고, 같이 피는 만족감도 있었고.

아까 준혁이 보면서 벤젠피졸인가? 강아지 구충제로 암 때려잡는 영상을 봤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이 '어차피 담배피다 암 걸려도 이거 먹으면 되잖아?'

무섭다 무서워.

일단 안 걸리는게 우선 아니냐?


23:27

술이 욕구를 증가시키긴 하나봄.

평소보다 목소리가 강해진게 느껴진다.

평소에 술 먹으면 오히려 담배 안 마렵다고 말하고 다닌 내가 쪼금 창피하다 ㅎ


00:02

은철이 만날 때가 다 와간다.

얘랑은 밥 먹다 담배피고 술 먹다 담배피고 게임하다 담배피고 하던 애라 더 날뛴다. 그러니까, 흡연욕구와 상상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면서 내심 이 브런치를 안 키게끔 압박을 넣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어찌됐건 몇일이나 참게 한 대표 공신이 이거였으니 말이다.

마치 전쟁에서 지휘관을 먼저 처단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00:17

담배가 급격히 피고싶어지고, 그 상태가 지속될 때면 '에라, 모르겠다.' '될 때로 되라지.' 하는 마음들이 강해진다.

'하고 싶은건 하고 살아야지!' '왜 참으면서 살아야해?'같은 마음의 소리가 볼륨을 높이기도 한다.

근데 가만보면, 몇 년이나 참은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게 되는 계기도, 정말 큰 일들이다. 집안의 우환이 크게 닥쳤을 경우가 대부분인데....

난 3일 11시간 조금 지나서 술 마시고 친한 친구 만나는 걸로 존나 힘들고 흔들리는 척 한다.

이게 팩트지.

담배 피워도 별 일 없고 누구도 욕 안하고 웃고 넘어가지만 반대로 안 피워도 별 일 없다.


01:59

술 마실 거 다 마시고 나오는 길.

나 빼고 다 담배 무는데, 하나만 달라고 하고 싶었다.

목구녕 끝까지 차오름.

어영부영 안 피긴했다. 내 의지로 안 핀거 같진않고 진짜 어영부영..


04:47

은철이랑 택현이랑 피시방 달리고, 마무리하고 나와서 빠빠이하고, 이제 은철이가 택시타기 직전에 막담을 피는데도 나는 안피고 있다.

술을 섞어마셔서 그런지 머리가 아픈데, 담배 폈으면 한 세배는 아팠을 것이다.

내가 자랑스롭땅


04:54

집 도착하기 직전, 마지막 편의점에 다가오자 자기합리화는 소심하기 유혹의 목소리를 내본다.

은철이랑 피는 담배들도 참은 마당에 어딜....

오늘도 이렇게 무사히 넘기고 자나보다.

고생했다 정말.

오늘도, 담배를 안 피워도 아무 상관 없다는 걸 다시 한번 증명했다.

씻고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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