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KGOD Oct 19. 2019

금연과 일기

11일차, cham bar, feather bar-birthday

13:06

일어나고나서 흡연욕구가 일은 적이 없다.

오히려 이걸 키니까 내가 흡연자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달까.(11일차의 패기)

나에게 있어서 흡연욕구란, 마치 똥 마려운 것과 같아서 굳이 참을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참기도 어려웠고.

똥은 너무 참으면 병이 되겠지만, 담배는 너무 참으면 너무 건강해지리라.

그런 생각이 든다.

흡연욕구도 어떻게보면, 강렬하게 이는 나의 마음중에 하나다.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이곳에 적는 날들이 이어지다보니 잊고 있었던 글 욕심이 스물스물 번져오는 것이다.

무언가를 쓸 때는, 이 흡연욕구가 일어날 때 가슴이 꿀렁거리면 화들짝 놀라 브런치에 적었듯이 해야겠다.

뛰어난 상상력... 필력... 치밀한 전개... 뭐 다 좋지만, 내가 실제로 느끼고(상상에 가깝지만) 감정을 되새겨서 적어야지.


16:54

대림미술관 가는 길.

좋은 날씨와 탁 트인 광경에서 절로 흡연욕구가 올라왔다.

자연스럽게 미래에 가게될 넓은 자연이나 멋진 경관을 보면서 담배 하나 쫘악 피는 상상까지!

좋은 날씨... 넓은 공간...

스트레스 받을 때뿐만 아니라, 기분이 좋은 순간에도 담배와 함께 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언제고 스트레스 푸는 용도로 핀다고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태반이다.


17:42

전시 다보고 나와서 커피 한잔 하려는데, 이...이런 아주 흡연자 한두명씩은 꼭 꼬이는 골목은 눈길을 떼기 어렵다.

영혼이 빨려들어가는 기분.

골목대장도 아니고... 골목에서 담배 피면 맞춤정장 입은 듯이 찰떡같이 달라붙기때문이다... Everything......

애써 고개를 돌리고 커피나 냠냠했다.

금연 초기에 비하면 이정도는 흡연충동 축에도 못 낀다.


19:30

아씨 쓰고 있던 거 날라갔다.

BAR CHAM에 왔다. 대겸이형 보러왔다 뜬금포

세컨드 서브라는 칵테일이다.

맛은 모히또 같은 느낌?

첫번째 서브 실패한 후에는 두번째 서브는 부담스러울 거 같고 그런데, 산뜻하다.

적당한 신맛이 긴장감을 부여잡아준다.

첫번째에 어떤 음식이나 술을 마셨더라도, 리프레쉬하게 잡아준다는 뭐 그런 의미랜다.(대겸찡 말로는)


22:09

참바에 혼자 앉아있는 현재의 기분을 잡아내보자면

조금의 어색함, 아는 바텐더가 있는 곳이라는 조금의 당당함, 다른 바와 비교하는 여유를 가진 나에 대한 조금ㅣ 뿌듯함, 혼자 바에와서 좋은 술을 마시는 나의 취미에 대한 기쁨, 현재 이쁘게 차려입고 와있는 나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 등등이 있다.

하도 혼자 바를 많이 와서 이제 혼자 바 오는 건 어색함이 많이 덜어져서 좋다 ㅎㅎ


22:16

'함양'이라는 칵테일에 들어가는 술.

이것만 따로 먹어봤는데, 약간 브라우니같은 느낌?

내가 설명하고도 이게 무슨 설명이지 싶다.


20:28

참바 나왔다.

페더 사장님 생일이래서 얼른 들렀다 가려한다.

똥마렵다.

경복궁역에 화잘실 없으면 어쩌나하고 살금살금 여유로운척 걷는 와중에 화장실 발견.

하지만 함부로 기뻐하지 않는다

빈칸이 없을 때 겪는 충격은 가히 설명할 수 없이 강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있다. 개꿀.


20:54

아, 아까 술 마시다말고 나와서 대겸이형 담배 피는데, 같이 안 피웠다.

난 짱이다.


21:30

페더 도착!

망할놈의 상수역은 내리자마자 담배투성이.

길빵러 투성이.

죽빵을..


21:43

역시나 페더는 바쁘다.

혼자서 앉아있지만 난 이곳을 많이 와봤다는 이상한 자존심과 사장님과 대화하기가 애매한 포지션 등등.

괜시리 식은땀도 조금씩 난다.

마냥 더워서 나는건 아닌 것 같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나를 신경쓰지 않는다.

나는 나를 신경쓰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생일축하를 해주러 왔지만 핸드폰만 잡고 있는 내 어색한 모습에 대한 자괴감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뭐라도 사왔을 걸 하는 생각이 10초에 한번씩은 스쳐지나간다.

어느순간부터 난 이곳을 내 퀄리티를 높이는 악세서리처럼 여겨왔던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해보지만 나니까 나를 안다.

이곳은 이어진 인연이 타고타고, 나의 깊은 곳 무언가를 조금씩 바꿔준 곳이다. 사람을 하도 많이본 사장님이라면 나에게서 무언가 그런 어색함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나도 나 스스로에게 이곳에 온 나를 어색해하던 순간이 있었으니.

낱낱히 적으니까 속이 편하긴하다.

난 생각이 참 많다.

쓸데없는(아닐지도 모르는)


21:54

참바에서 후다닥 쓴 건데, 결론은 100문장중에 한 문장을 건진다는 얘기다.

귀찮기전에 얼른 옮겨놔본다.


22:11

내 마음과 생각을 관찰하고, 강렬한 한순간의 찰나를 포착하는 습관이 들고 있는 것 같다.

점점 익숙해져간다.

이건 확실히 갈고 닦아 광을 내서 전시할 필요가 있다.


20:40

사장님이 생일주로 마시고 싶은 걸 주문하겠다고 했더니 나온 '모닝글로리 피즈'.

사진과 같이 크림이 들어간 걸 알 수 있다.

요거트를 술로 만든 느낌??

맛나다!


23:02

더 사장님이 담배 끊었냐고 그래서 그렇다고 했다. 그러니 여태 어떤 사람보다 적극적으로 못 참게 하겠다고 도발하셨다. 슬쩍 도발에 넘어가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꿀렁한다. 그래도 담배 피실 때 같이 나가자고 말씀드렸다.


23:21

정말 같이 안 필거냐고 물어보는 사장님의 말 한마디에 감이왔다. 사람은 생각보다 유치한 동물이라 이런 사소한게 쌓여서 삐지곤 한다.

그냥 하나 같이 폈다. 내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뭘...

중요한건 이제 내가 '에이. 하나 폈으니까 뭐!' 이러면서 다시 본격적으로 흡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라지만 자꾸 변명같다. ㅜㅡㅜ 흐규..


00:48

은철이 만나서 또 한 3까치 핀거 같다.

어울리지 않게 진지하게 연애고민이나하고 말이야....

이걸로 흡연욕구는 내일부터 또 썽이나서 염병 떨 확률이 높지만 난 돈도 없고, 그러니까 참을 수 있을거라 믿는다.

오늘 핀 담배는 좀, 사회생활한 느낌이다.

ㅅㅂ...


뭔가 창피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맴돈다.

이상순이 이효리에게 했던 말처럼.


'적어도 나는 알고 있잖아.'


01:36

난 너가 아니여도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금연과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