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KGOD Oct 20. 2019

금연과 일기

12일차

07:18

버스에서 튼 라디오애서 '나비무덤'이 흘러나온다.

오랜만에 듣는다.

이 노래를 듣기전에 나는 민증을 가지러 탔던 버스를 급하게 내려야했다.

1초가 될까말까한 사이에 싸하게 번지는 귀찮음!

게으름과 귀찮음이 휘두르는 강력한 무기 중에 하나가 자기합리화다. 자매품으로는 '아몰랑!'이 있다.

아무튼, 그 짧은 사이에 자기합리화는 속삭였다.


'이미 버스비를 내서, 집에 다녀오면 또 요금 내야돼!'

'에이, 오늘 당장 필요한 거겠어?(근거없는 자신감)'

'늦을지도 몰라!(뻔한 거짓말)'


진실과 거짓을 교묘히 섞는 훌륭한 선동가라고 할 수 있다.

속에서 나를 아끼는 것이다-라고 영혼없는 외침이 맴돌았다.

 

09:01

점심에 밥 먹고 식당 옆에 있는 편의점에서 담배 사 피는 상상함.

어제 밤에 몇 대 피웠다고 꿀렁임이 조금 강해졌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09:12

근무교대하고 올라와서 권기사님 보자마자 담배 피러가자고 말하는 상상과 동시에 욕구가 꽤나 씨게 치고 올라왔다.

마치 RPG게임을 하다가 죽어서 아이템을 잃고 레벨과 경험치가 다운된 느낌.

담배를 쉽게 나눠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으면 이렇게 어렵습니다요.


09:42

넓고 깨끗한 로비를 거닐며 남들모르게 방구 뀌는 이 기분.

마치 배덕의 방귀왕자가 된 것만 같다.


09:56

손 물어 뜯는 것도 적어야겠다.

요즘 갑자기 손을 또 물어뜯는다.

무슨 꿩 대신 닭도 아니고, 안 좋은 습관들은 out


18:58

이제 퇴근할 시간.

교대하러 온 민재가 정말 안피냐고, 서운하네요 -라고 장난쳤지만 가슴이 미어진다.

내 가슴이 담배를 원하지만 너무 단점투성이야.

꺼-져억


19:39

흡연욕구가 올라올 때마다 이걸 급하게 킬 때면, 내가 이 플랫폼에 의지하고 있는건지, 나 스스로에게 의지하고 있는 건지 헷갈릴때가 있다.


20:46

문영이랑 밥먹고 집 가는 길.

나는 피시방에 들리겠다고 따로 빠졌는데, cg편의점까지 가는 골목에서 흡연욕구가 미친듯이 올라왔다.

거의 사서 피는게 확정일 정도로 강력한 울렁거림이었다.

애써 넘기고 지나왔더니 내 머리는 자연스럽게 그 다음으로 가까운 편의점들을 떠올린다.

이거 키고 적기 시작하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남김없이 증발이다.


'이번 한갑만...'

'진짜 마지막이야...'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남발한다.

난 나한테 담배냄새가 나지 않아서, 집에 있을 여동생에게 쩐내를 맡게하지 않아서 좋다.

돈 안 쓰는 것도 좋다.

운동할 때 효율이 떨어지는 느낌이 안들어서도 좋다.


굳이 의미부여를 하고, 다짐하듯이 좋은 점만 따올리고 싶지 않긴 하지만...  뭐 아무튼, 깜짝 놀랄만큼 강한 욕구였다.

그동안의 패배는 사실 지금을 위한 한 수였다!!! 같은 느낌이었음.


00:30

딱히 할 말없다.

오늘 하루도 잘 참았고, 난 짱이다.

잘자자.

작가의 이전글 금연과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