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할아버지의 창고

by 록시

계획은 완벽했는데, 창고에는 들어가지도 못했다. 학교에서 대문까지, 마당을 지나 현관까지는 아무 문제 없었다. 현관문 맞은 편에는 여전히 가족사진이 걸려있다. 율도국 그림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운동화를 휙 벗어던졌는데, 안방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 오늘 아침에는 농담도 하셨는데.

“에구, 영감, 그렇게 갈 거면서….”

할아버지 생각하시는구나. 할머니는 안방 바닥에 사진과 신문 기사를 펼쳐놓고 눈물 콧물을 삼켰다. 이런 때는 그냥 지나치면 안된다.

“할아버지 생각하세요?”

“흐윽, 우리 강아지 왔냐? 예전 단골이 안부 문자를 보냈지 뭐냐. 잊지 않고 인사를 보내니 을매나 고마운지….”

눈가의 주름을 타고 눈물이 맺혔다. 할머니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네 할아버지 같은 사람 또 없다. 착한 사람은 일찍 간다더니만….”

훌쩍이느라 말끝을 흐렸다.

흩어진 신문 기사를 모아 스크랩북에 꽂았다. 대충 내용을 알지만, 사 년 전 일이라 세세한 부분은 잊어버렸다.

기사 속의 할아버지는 용감한 영웅이다. 건물 붕괴 현장에서 마지막까지 사람들을 구하다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어서 뭐가 뭔지 잘 몰랐다. 장례식에서도 어른들만 쫓아다녔고, 기자들이 몰려와 사진을 찍어대기에 신기해서 바라보았다.

할아버지를 다시 못 만난다니 슬펐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친구들과 게임 레벨업 내기를 했는데, 내 관심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게임은 이기고 싶었다. 아니, 게임이라도 이기고 싶었다.

녀석들의 실체를 알았다면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았을 텐데. 후회해도 어쩔 수 없다. 그따위 놈들은 잊어버려야지. 생각하면 나만 손해니까.

‘장례식… 붕괴 사고….’

사고 나기 전날, 할아버지가 내게 하얀 상자를 주셨다. 그때 뭐라고… 분명히 뭐라고 말씀하셨는데.

빠지직 갈라질 듯 뒤통수가 울렸다. 갑자기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똑바로 앉을 수가 없다. 할머니가 놀라 내 팔을 잡았다.

“왜 이려? 배고파서 그려? 하이고, 내 정신 좀 봐라. 벌써 저녁때구먼.”

할머니는 서둘러 사진과 스크랩북을 문갑에 밀어 넣었다.

“누워 있어라. 얼른 밥 차릴 테니께.”

할머니는 일어나다 말고 내 손을 꽉 잡았다. 손도, 목소리도 심하게 떨렸다.

“그러니까 말이여. 너… 그게… 막 졸립거나 그렇지는 않제?”

“괜찮아요. 좀 어지러워서요.”

“오래 잘 거면 미리 얘기혀라. 그래야 걱정 안 하제.”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나가셨다. 오래 잔다니? 늦잠 잔다는 말인가?

벽에 기대고 앉아 할아버지가 주신 상자와 붓을 떠올렸다. 서랍에 잘 넣어두었는데… 가 아니라 이삿짐 박스 안에 있을 것이다. 아직도 짐 정리를 다 못 했으니까.

붓 모양도 특이했다. 붓대도, 붓털도 새하얗다. 붓대는 길고 차가운 옥돌인데, 용 한 마리가 조각되어 있다.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올라가는 모양이다. 한 번도 쓰지 않아서 하얗고 깨끗했다.

보통 붓과 달리 부드럽고 탄력이 좋다. 굉장히 비싸 보였다. 값은 몰라도 할아버지가 물려주셨으니 귀한 거다. 붓을 위한 상자도 특이했다. 딱 한 자루를 위한 좁고 긴, 하얀 나무 상자. 할아버지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떠날 때가 온 것 같구나.’


사고 나기 전날 맞다. 자려고 누웠을 때, 할아버지가 이불도 덮어주고, 가슴을 토닥여주셨다. 난 벌써 6학년이라고, 필요 없다고 말하려다가 가만히 있었다.

‘할아버지, 어디 가세요?’

‘왔던 곳으로 돌아가야지.’

‘가지 마세요.’

졸려서 잘 못 알아들었지만, 반사적으로 할아버지 손을 잡았다. 할아버지가 좋았고, 올 때마다 용돈도 넉넉히 주시니까 무척 소중했다.

‘네가 태어나서 다행이다. 이걸 물려줄 수 있어 기쁘구나. 앞으로 많은 일을 하게 될 테니 용기를 잃지 말거라.’


거기까지는 생각나는데 그다음은 기억에 없다. 까맣게 잊고 있다가 장례식이 끝나고 한참 뒤에야 붓을 찾아냈다. 어쨌든 그때부터 지금까지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붓을 찾아야지.

비틀비틀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쌓아놓은 이삿짐 상자를 다 내렸다. 두 번째 상자, 겨울옷 사이에서 붓 통을 찾았다. 깨지지 말라고 두꺼운 옷 사이에 넣어둔 것까지는 좋은데, 완전히 잊어버리다니.


붓은 그대로였다. 한 번도 쓰지 않아서 깨끗하고 하얗고 차가운…. 어라? 옥돌이 차가워야 하는데, 따뜻하다. 누가 잡고 있다가 준 것 같다.

“이상한데….”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모양과 색깔은 그대로인데 온기만 다르다. 겨울옷 사이에 넣어놓아서인가. 아니야. 상자가 차갑잖아. 안에 넣어놓은 붓만 따뜻한 게 말이 돼? 무슨 장치가 들어있나? 가늘고 긴 돌덩이라 뭘 넣을 수도 없다.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렸다. 뭔지 몰라도 뭔가 있어. 내게만 보였다가 사라진 그림도 그렇잖아. 설마 할아버지의 신호인가?

그건 아니지. 장례식에서 염한 시신도 보았고, 관에 넣는 것도 보았다. 무섭지는 않았지만, 할아버지가 너무 작아 보여서 많이 놀랐다. 그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리 없어.

도저히 모르겠다. 머리만 지끈거린다. 이런 때는 마음을 비우고 그림을 그리면 두통이 가라앉는다.

차가운 붓 상자에 따뜻한 붓을 가지런히 넣었다. 붓은 찾았고…. 그림이나 그려야지. 연극부 부장의 문자가 생각난다. 일단 얼음 여왕부터 피하고 보자. 암행어사물인지 뭔지 하는 배경 말이다.

모임 첫날부터 선배한테 찍히면 골치 아파진다. 문자 보낸 스타일 보면 성격도 엄청 까칠할 것 같다. 내 소개로 쓸 거면 대충 그려도 되겠지. 그동안 조선시대 배경도 여러 장 그려 봤다. 시뮬레이션 게임에도 그런 배경 많으니까, 따라 그리면 금방 끝난다.


스케치도 준비했겠다, 지루한 수업도 끝났겠다. 모임 시간에 맞춰 연극부실로 갔다. 문 앞까지 갔지만 막상 들어가려니 내키지 않았다. 복도 창문으로 보니 스무 명 정도가 와 있었다. 문밖에 서 있어도 안에서 떠드는 말이 다 들렸다.

“그러니까 왜 하필 연극부냐고?”

“지도 쌤이 담임이라잖아? 뻔하지 않냐.”

“괜히 우리까지 학폭위 가는 거 아냐?”

관심 끄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런 말을 듣고도 문을 열 만큼 강심장은 아니다. 어떻게 하지? 발끝으로 툭툭 바닥을 치는데 하얀 운동화가 눈에 들어왔다.

“정지민? 뭐해? 안 들어가?”

금테 안경을 쓰고 머리카락을 질끈 묶은 여학생이다. 명찰이 노란색이니까 2학년, 이름을 보니까 연극부장 맞다.

상상한 마녀는 아니지만, 역시 까칠하다. 부장은 휙 고개를 돌리더니 문을 벌컥 열었다.

교실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부장 때문인지 나 때문인지 몰라도 부원들이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자기 소개하라기에 대충 얼버무리고 자리에 앉았다. 난 소품 담당이니까 구석에 찌그리고 있다가 나가면 되겠지.


연극부의 최대 과제는 8월에 있을 청소년 연극대회. 이번에는 반드시 우승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시작부터 삐그덕거렸다.

암행어사물이라더니 그건 지난주에 나온 얘기였고, 의견이 제각각이었다. 특히 2학년 선배들이 묘하게 신경전을 벌였다. 계속 주제에 대해서만 줄다리기다.

우정이나 가족애에 대한 이야기가 어떠냐는 선배도 있고, 인간성 상실이나 환경문제를 다루자는 선배도 있었다.

‘학생 연극인데 시대물은 빗나가도 엄청 빗나갔잖아.’

솔직히 나도 반대다. 소품 만들기도 난감하다. 의상은 어쩔 거야? 이런 식으로 대회 참가가 흐지부지되면 나로서는 좋은 일이다. 기다려보자.


“요즘 학교 폭력과 왕따도 큰 문제잖아? 그런 게 점수 많이 받을 거야.”

한 선배의 말이 끝나자 분위기가 싸늘했다. 무엇 때문인지 안다. 다들 입을 다문 이유도.

이래서는 맘 편히 창밖만 바라볼 수가 없구나. 허리를 펴면서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시선을 피했다.

부장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나 때문이 아니라 연극 주제 때문에.

“지난주에 결정했잖아? 왜 그래?”

“우린 그때 없었거든?”

가만히 지켜보니 2학년 선배 중에서 세 명만 불만이 많았다. 다른 부원들은 무관심하거나 덤덤하다. 1학년들은 얌전하다. 우리가 무슨 힘이 있나. 이렇거나 저렇거나 시키는 대로 해야지.

이 조그만 동아리에서 권력다툼이라니. 유치하네. 부장 선거에서 떨어져서 그런가. 생활기록부가 여럿 잡는다니까. 손으로 턱을 받치고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았다.

회의는 지루했다. 교장 선생님 훈화처럼 똑같은 말을 하고 또 하고, 결론이 날 듯하다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언제 끝나나, 빨리 할아버지 창고에 가봐야 하는데. 내 관심은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갑자기 유리창에 하얀 안개가 서렸다. 처음에는 아지랑이였다가 점점 하얗게 바뀌었다. 안개가 두 사람의 실루엣을 만들었다. 뭐야? 햇빛이 눈부신데 웬 안개? 다른 유리창은 멀쩡하다. 눈에 뭐가 들어갔나?

눈을 깜빡이고 다시 봐도 하얀 실루엣 그대로였다. 이제는 소리도 들린다. 부원들이 떠드는 소리와 안개 속 소리가 섞여서 웅성거렸다.

‘큰일이구나. 이럴 때 대사님이 계시면 얼마나 좋겠느냐.’

‘아바마마, 소자가 직접 찾아보겠습니다.’

나이 많은 남자와 젊은 남자였다. 아바마마면… 왕과 아들? 대낮에 귀신은 아닐 테고. 환영인가? 하다하다 환청까지 듣다니… 내 머리가 어떻게 되었나.

‘빈아, 넌 그분을 본 적도 없으니… 혼자서는 어려울 거다.’

왕이 말하는 대로 유리창의 실루엣이 흐느적거렸다.

‘널 도와줄 이가 어딘가….’

희미한 소리에 귀를 바짝 세우는데, 갑자기 탕!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부장이 책상을 두드린 것이다. 어찌나 힘을 주었는지 탁자가 우우웅 울렸다.

“톡 게시판에 올릴 테니까 내일까지 투표해. 반드시!”

그 순간, 유리창에 서린 하얀 실루엣이 흐트러졌다. 투명해지더니 결국 사라졌다. 느낌이 왔다. 이것도 사라진 그림과 관계가 있구나!

‘뭔가 있어! 나도 모르는 뭔가….’


드디어 회의가 끝났다. 서둘러 교실을 빠져나왔다. 어깨가 뻐근하다. 안개 구경하느라 그나마 견뎠지, 아니었으면 지독한 편두통에 시달렸을 거다.

복도를 돌아 계단에 내려섰을 때, 스케치 가방이 생각났다. 구겨질까 봐 잘 끼워 왔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우, 기껏 그려놓고는….’

그냥 갈까 하다가 복도로 올라섰다. 괜히 트집 잡힐 일은 하지 말자. 약속을 지켰다는 것만 보여주자.

주제도 안 정하고, 대본도 없는데 스케치가 왜 필요하냐고 따지고 싶지만, 말이 길어지면 귀찮아진다. 말싸움에서 여자를 이기는 건 꿈에서도 불가능하다.

뒷문 가까이 서니 교실 안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연극부장과 대본을 담당한 선배였다.

“걔네 뭐야? 왜 뒷북이래?”

“냅둬. 반대를 위한 반대야. 네가 쓰고 싶은 대로 써.”

“벌써 5월이야. 이러다 아무것도 못 하면 어쩌지?”

“걱정 마. 다 잘될 거니까.”

“그래도, 나… 수술….”

대본 담당 선배가 말하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이 동시에 나를 찌릿 노려보았다. 에잇, 엿들은 것처럼 되어버렸잖아! 이런 식으로 찍히다니, 재수 없네.

“이거 스케치요.”

부장 앞에 스케치만 내려놓고 후다닥 나왔다. 도화지 한 장이 왜 이렇게 두껍지? 느낌이 이상했지만,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마음이 급하다.

집에 가서 할 일도 많은데 여기서 붙잡히면 아무것도 못 한다. 나한테는 율도국 그림이 더 중요하다고!

할아버지 창고는 아주 조용했다. 멍하니 앉아 있으니, 학교에서의 일이 하나둘 떠올랐다. 연극부장과 선배의 눈초리도 찝찝하다. 교실에서는 또 어떻고.

나를 향한 무거운 침묵, 잔뜩 경계하는 눈초리, 알아듣기 힘든 수업에 하기 싫은 공부와 시험까지.

“에잇!”

열어놓았던 상자 뚜껑을 탕 소리 나게 닫았다. 이제 정말 한계다. 그따위 학교, 그만두고 싶다. 그냥 집을 나가 버려?

선생님들도 다 싫다. 이전 학교에서도 아무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왜 내 말은 듣지 않아? 상담실에 불려갔을 때, 엄마도 항의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우리 지민이가… 자기가 누군지 아직 몰라서 그래요. 곧 알게 될 거예요. 저희는 그때까지 기다리려고요.’

엄마가 화내지 않아 다행이라고 여기면서도, 몹시 서운했다. 거기서도, 여기서도 다 싫다.


이런 때 할아버지가 계시면 얼마나 좋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려주실 텐데. 한숨을 푹푹 쉬면서 먼지 쌓인 상자를 하나씩 열어보았다. 옛날 책도 있고, 연적과 벼루도 있고, 조각보도 있다. 한 마디로 잡동사니가 들어있다.

오래된 수묵화도 몇 장 찾아냈다. 어딘가의 풍경인데, 오래되어 종이도 바래고 색깔도 희미하다. 이것도 율도국일까?

내가 찾던 그림은 아니어도 보고 있으니까 마음이 점점 가벼워졌다. 숨쉬기도 훨씬 편하다. 바닥에 그림을 펼쳐놓고 그 앞에 주저앉았다.

창고에는 퀘퀘한 냄새가 가득했다. 시간의 냄새라고 해야 하나. 조금 전까지는 오래 묵은 냄새만 났는데, 은은하게 묵향이 느껴졌다. 먹을 갈 때 나는 쌉쌀하고 야릇한 냄새였다. 그림을 내려다보며 코를 킁킁거렸다.

그림 속 검은 선이 꾸물거렸다. 이번에도 환각인가. 고개를 들고 눈을 깜빡였다. 창고 안의 모든 것이 제대로 보였다.

‘눈에 뭐가 들어갔나?’

다시 눈을 감았다 떴는데, 눈앞에 아지랑이가 꾸물거렸다.

아지랑이는 커다란 그림이 되었다. 여태까지 애타게 찾던 바로 그 그림이다. 공기가 울렁거리며 그림이 살아 움직였다. 서서히 진짜 풍경으로 바뀌었다.

“이거… 뭐야?”

그림 속의 사람들이 실제가 되어 움직였다. 강물도 유유히 흘렀다. 햇빛을 받아 물결이 반짝거렸다. 나뭇잎도 바람에 사사삭 흔들리고, 새소리도 들렸다.

허공에서 꾸물거리던 그림이 가까이 다가왔다. 몸을 뒤로 빼려고 했지만, 아무리 밀어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손에 힘을 주었다. 손바닥에 딱딱한 무언가가 만져졌다. 붓 통이다.

서랍에 잘 넣어뒀는데? 방에 있어야 할 붓 통이 왜 내 손에 있지. 그런데, 너무 뜨겁다.

“왜 이렇게 뜨거워?”

머리가 아찔하다. 붓 통을 움켜쥐는 순간, 눈앞이 하얗게 바뀌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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