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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집 루시 Nov 24. 2022

인디스워크와 인터뷰 한 후기

어느 날, LinkedIn 메시지에 빨간 점이 찍혔다.

메시지가 제법 긴 듯하여 헤드헌터에게서 온 연락인가 싶어 설렜다.


안녕하세요! 10만 명이 이용하는 우수기업 채용정보 플랫폼 인디스워크 입니다. 링크드인에서 이력을 보고, 취준생을 위한 직무/취업 관련 인터뷰를 제안드리려 메시지 드립니다 취준생을 위해 소중한 경험을 공유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네? 인터뷰요?? 저랑요?

인디스워크 라는 플랫폼을 찾아봤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채용정보 플랫폼이었다.

여기저기 기웃거려보니 실제로 콘텐츠 카테고리에 현직자 분들의 인터뷰가 유튜브로 업로드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니 대표님, 겁도 없으시네. 당신의 귀한 시간과 에너지를 이런 비루한 나에게 쓰시다니. 성급한 제안에 콘텐츠가 망할까 봐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안녕하세요 담당자님.
먼저 인터뷰 제안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저는 포트폴리오만 화려할 뿐 부끄럽게도 성공적이라고 말씀드릴 만한 프로젝트는 사실 없습니다.

전에 인터뷰를 하셨던 분들의 타이틀을 봤는데
내로라할만한 스펙을 가지셨더라구요
혹시 성공적인 프로젝트로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기대하신다면 저는 좀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한 저의 히스토리 인터뷰 진행을 원하신다면
11월 22일 화요일이 좋을 것 같습니다.



촬영 장소는 성수동 카페24 창업지원센터에서 진행되었다. 다행히 이전한 사무실과 거리가 가까워 퇴근 하자마 바로 갈 수 있었다. 거지꼴은 면하자 싶어 가는 길에 미용실에도 들러서 드라이를 했다


박제를 대비한 몸부림


실제 만나서도 저 말씀을 드렸다.

제가 어떤 사람인 줄 알고 제안을 하셨냐고, 제가 말을 잘하는 사람인지, 못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겁도 없으시다고 야단했다.


 대표님은 그 특유의 다정하신 표정으로 링크드인에 올라온 피드들을 보면서 글로 이렇게 잘 표현하시면 말로도 잘 표현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하셨단다. '아, 당신은 정녕 천사인가요.' 싶다가도 '네, 사람 잘못 보셨네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것을 겨우 참았다. 자꾸 자존감 낮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썩 좋아 보일 것 같진 않았다.


어쨌거나 촬영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나는 분명 12년 동안 국어 정규 수업을 들었는데 왜 바보가 되어 버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나는 한국 사람인데 게슈탈트의 붕괴처럼 한국어가 머릿속에서 붕괴되어 버렸다. 원래 면접도 되게 잘하고 까불기도 엄청 잘 까부는데 원래 말하는 게 이렇게까지 어려운 작업이었나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대답하다 보면 원래 의도했던 질문이 뭐였는지도 까먹기 일쑤였다. 하긴 알콜성 치매가 왔다는 걸 대표님이 알리가 없으시지. 차라리 디스크립션을 작성하지 말고 다 애드리브로 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그래도 질문은 한 번에 하나씩만 해주셨으면 좋았을 것 같은 아쉬움이 있다. 원래 질문은 '가장 성공적이었던 프로젝트는 무엇이고 가장 실패라고 생각한 프로젝트는 뭐였나요'였다. 그것보단 가장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프로젝트는 뭐였나요 한 다음 답변 듣고, 가장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프로젝트는 뭐였나요?라고 해주시는 게 인터뷰어 입장에선 편할 것 같다. 나 말고도 알콜성 치매를 겪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니까.


여차저차 쉬었다가 하고 재촬영도 하면서 겨우 촬영을 마쳤다.


촬영을 끝낸 후 확인 차 보여주신 영상의 내 모습은 조금 초라해 보였다. 이상하다. 거울 속에 비친 나는 저렇게까지 못생기진 않았는데. 태블릿으로 보이는 영상에 나는 너무 낯설었다. 웬 이상한 여자가 앉아있는 것 같았다. 대전에서 망한 쌍꺼풀 수술 덕분에 얼굴은 소시지 눈 밖에 안보였고 구부정한 자세 때문에 오늘따라 뱃살은 왜 이리 겹쳐 보이는지. 존못뚱인건 알고 있었지만 카메라의 내 모습은 그 사실을 더욱 세고 강한 타격감으로 상기시켜주었다.


다들 진짜 이렇게 생각하잖아. 나만 그런 거 아니잖아


대표님은 연신 '영상 어떤 것 같아요. 괜찮은 것 같으세요?' 라고 물어보셨다. '아니요 안 괜찮아요. 일단 인터뷰어 얼굴부터 갈아엎으셔야 할 것 같아요' 라고 하고 싶었다. 외형적인 것은 둘째치고 답변한 내용들이 맘에 들지 않아 마지막 부분은 다시 찍었지만 결국 무너진 내 체력 때문에 제일 처음 찍었던 영상을 쓰기로 했다.  대표님은 또 '영상 어떤 것 같으세요. 괜찮으세요?' 라고 물으셨지만 너무 공들여 찍은 영상이기에 애써 아무렇지 않은 음성으로 '괜찮은것 같아요...'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혹시 체형 보정도 되나요?"

"(당황) 저도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고 싶지만 색조와 밝기 밖에 수정이 안되네요."


사실 나도 영상 편집을 해봐서 안다. 애프터 이펙트가 이펙트만 넣을 줄 알지 체형 보정은 안된다는 걸. 어도비면 글로벌 기업답게 영상에서도 체형 보정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니야? 하는 생떼를 잠시 부려보았다.


인터뷰가 끝나고 너무 허기졌다. 붓기라도 빼보겠다고 어제부터 거의 절식 수준으로 버틴 게 화근이었다.  터덜터덜 성수역으로 향하는데 꽈배기 가게가 보였다. 키오스크 주문을 하고 났더니 사장님이 3-4분 기다려야 한단다. 아니 이렇게 꽈배기들이 있는데요? 가판대에 있는 몇 개 안 남은 뒤쪽에서 기다리는 손님들 거란다. 묘한 배신감이 들었다. 꽈배기 하나도 내 맘대로 못 사 먹는 자본주의 세상. 슬픈 마음을 가득 안고 성수역에서 꼭 어묵을 사 먹고 말리라 하며 다시 발거음을 옮겼다. 그런데 아뿔싸. 성수역 1번 출구엔 뭐 파는 게 없네? 2차 배신감이 들었다. 3번 4번 출구만 흥하는 더러운 세상. 가방을 뒤져보니 다행히 미니 단백질 바가 나왔다. 그래, 단백질은 배신하지 않지. 단백질바를 우적우적 씹으며 터덜터덜 전철 계단을 올랐다.


그래도 인터뷰 덕분에 많은 것을 배웠다. 디자이너라면 얼마나 많이 공부해야 하는지, 얼마나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하는지 새삼 또 깨닫게 되었다. 인터뷰라면 좀 더 구체적인 예시로 살아있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터뷰는 최대한 말을 길게 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체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작업이니 촬영 전엔 든든히 먹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최대한 프로답게 얘기하려고 노력했지만 뒤돌아보니 제대로 얘기하지 못한 게 떠올랐다. 특히 취준생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말이다. 이것은 추후 브런치에 업로드해야겠다. 다음엔 더 잘할 수 있겠지. 기회가 올진 모르겠지만... 





대표님이 제목을 참 잘 뽑으셨다.

내놓기 부끄러운 인터뷰지만 구경 한 번 해보시길... 그리고 좋아요도 꾹 눌러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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