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
우리는 한번 쯤은 설문조사를 했던 경험들이 있다. 가볍게는 '어디 맛집을 갈 것인가'에 대한 투표를 한 적도 있을 것이고 무겁게는 논문 준비 등으로 인한 리서치 조사도 있었을 것이다. 설문조사는 우리 생활과 아주 밀접한 행동 패턴 중이 하나이다.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도, 인사이트를 얻기에도 좋은 방법이다.
이번에 담당하게 된 프로젝트는 CS센터의 CRM 프로그램을 개선하는 프로젝트였다. 어느 정도 개발은 되어 있다고 하지만 CRM이란게 워낙 복잡하게 얽혀있는 시스템이라 엉성한 부분이 많았다.
제대로 된 온보딩 기간도 없이 나는 업무에 바로 투입이 되었고, 다들 바빴고, 제대로 제품을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 와중에 대표님은 이런 저런 말씀을 하시며 압박을 하셨다.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사실 최후에 쓰려고 묵혀놨던건데 압박이 들어옴에 따라 나는 비장의 카드를 발동시킬 수 밖에 없었다.
"설문 조사를 할까 합니다"
대표님 눈이 반짝였다
"좋은 생각 같아요."
다행히도 대표님은 직원들을 끔찍히 아끼는 분이었다. 제대로 된 시스템과 보상을 제공하는 것을 엄청 소원하는 분이었다. 그래서 겁도 없이 시작했다.
뭐 부터 해야하지?
정식으로 하는 설문조사는 처음이라 상당히 막막했다. 뭐 부터 시작해야 하나. 어떤 질문을 해야 하나. 자칫 잘못하면 답정너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CS직원들을 너무 귀찮게 하는거면 어쩌지. 수많은 생각과 고민들 머릿속을 어지럽게 휘젓고 다녔다. 뭐 하나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뭐부터 해야할지 몰라 일단 레퍼런스 리서치부터 하기 시작했다. 남들은 어떻게 했나 들여다 보는게 첫번째 작업이었다. 아니, 맨날 사용자 리서치하라더니 제대로 된 정보는 죄다 유료야.
일단 내가 무엇이 궁금한지 정리해 보자
나는 뭐가 궁금한 걸까 정리를 시작했다. 우선 CS팀 직원들이 제일 개선하고 싶어하는 부분이 궁금했다. 급선무는 입력폼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이 입력폼을 과연 다 입력하는걸까? 이게 정말 필요한 인적 사항인가? 얼마나 활용도가 있는거지? 이 버튼들은 정말 사용하는 걸까?
참고하라며 주신 CS직원들의 업무 화면 녹화 영상을 보며 일단 사용자들을 이해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스크롤이 너무 많아. 이런 빈칸은 왜 그냥 두는거지. 화면을 겁나 많이 띄워놓고 작업을 하시네...뭐 이런거였다.
무엇을 수치화 할 건지 무엇을 개선하고 싶은지 정확히 설정하자
디자인은 논리적인 근거가 필요하다. 논리적인 근거를 위해선 수치화된 데이터가 필요했다. 무엇을 어떻게 수치화 할건지 구상했다. 총 인원은 몇 명이고 몇 퍼센트 이상이어야 제대로 된 수치가 될 지 고민해 보았다.
좋은 질문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생각해 보자
얼마나 잘 정리되어 있는지 평가해주세요
선택 사항이 유용한지 평가해주세요
레이아웃이 좋은지 평가해주세요
당신이 찾고자 하는 것을 찾을 때까지 클릭한 횟수에 대해서 평가해주세요.
시각적 매력에 대해서 평가해 주세요
문자의 균형감에 대해서, 가독성에 대해서, 정확성에 대해서, 정보의 질에 대해서 평가해 주세요
~에 대한 경험이 어떠했습니까?
~할 때 어떠했습니까?
XX 사용해보셨는데 어떠셨어요?
이해가 안가거나 어려운 부분이 있었나요?
이 기능이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무슨 사용성에 의미를 찾고 앉아 있어! 저런 식의 질문들은 사용자들에게 뭐라고 적어야 할 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애초에 그러기 위해 설문조사를 하는거지만 너무 많은 시간을 들여 생각하게 하고 싶진 않았다. 게다가 주관식 답변이나 정성적인 데이터들을 어떻게 가공할 것이며 어떻게 실무와 연결 시킬지도 문제다. 개개인의 요구 사항이 많아질 수도 있게 때문이다.
물론 이런 방법을 써야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 이런 구체적인 답변을 도출해야할지에 대해선 신중했으면 좋겠다.
아무튼 최대한 주관식은 피하려고 했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현대인들은 너무 바쁘다. 깊이 생각하는 것도 싫어한다. 사용성 개선이랍시고 직원들에게 부담을 주는게 싫었다. 질문도 8개로 가볍게 구성했고 그냥 클릭만 하도록 유도했다. 때에 따라 선호도 조사도 필요하긴 하겠지만 뾰족한 결과를 얻고 싶다면 선택형 설문을 추천한다. 선호도 조사는 감정적인 부분을 알고 싶을 때 사용하자. 5점 척도, 10점 척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경기도 일자리 재단의 좋은 점은 상단의 progress bar를 이용함으로써 질문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려주었다는 점이다. 주관신은 1~2문제였고 자연스러운 흐름이 좋았다.
설문조사 하기전에 심층 인터뷰도 해보았다
사용자에게 빙의해서 추측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사용자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선 유저 리서치는 필수이다.
부산 본사에서 팀장님을 모셔왔다. 직접 CS 업무를 지켜보고 어떤 것을 개선 시켜야하는지 고민해보라는 대표님의 큰 그림이었다.
확실히 본사에서 오신 상담 팀장님의 업무 모습을 보며 팀원 사이에서는 공감대 형성이란 공통 분모가 생겼다. 진짜 힘드시겠구나, 진짜 어려우시겠구나, 진짜 불편하시겠구나 라는 생각이 우리 사이에서 연결 고리가 되어주었다. 막연하게, 뜬구름 잡는 듯한 사용자에 대한 이해는 가시적인 정보를 통해 제대로 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실제로 업무을 보는 것과 막연하게 추측하는 것과는 실로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그 이슈를 조직의 공감대로 형성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실로 엄청난 소득이 아닐 수 없었다.
왜 대표님이 무리해서 본사 직원을 서울로 올라오게끔 했는지, 왜 직접 본사에서 전화 상담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서 보여주셨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영상으로는 부족해서 심지어 본사 직원을 초청(?)까지 했던 대표님의 그 놀라운 행동력과 추진력은 정말 존경할만하다.
사용자 인터뷰에도 라포형성이 중요하다
워낙 친화력도 좋아 사용자 인터뷰에서 이런 기질이 빛을 발휘했다. 소개팅이나 면접같은 낯선 사람과 대면해야할 때 아이스 브레이킹이 중요하듯 사용자 인터뷰에서도 대상자와 라포를 형성하는게 중요하다. 라포 형성은 가벼운 일상 대화로 시작하자. 인터뷰가 딱딱하고 어려운 시간이 되지 않게끔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데 주 목적이지까. 안그래도 무겁고 부담스러울텐데 그런 분위기에서 제대로 된 인터뷰가 나오는게 이상한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엔 대표님 뒷담화(?)로 시작했다. '출장오신건데 묵으시는 곳은 어디세요.' '이사님 오피스텔에 있습니다.' '헉 정말요? 호텔 잡아줘야 하는거 아닌가요? 저 같으면 사비 털어서라도 모텔 가겠어요.'(웃음. 나중에 인센티브로 보상을 받는다고 하더이다). 뭐 이런 대화를 통해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드려고 노력했다.
사용자의 이해도 충분한 것 같으니 본격적인 설문조사에 들어갔다.
질문도 워밍업이 필요하다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질문부터 고민이 필요한 질문순으로 조금씩 확대해 나가는게 좋을 것 같았다. 워밍업 같은 것이다. 그래서 초반에 이게 과연 필요한 질문인가? 하는 시시한 질문부터 시작했다.
질문지도 UX Writing이 필요하다
처음엔 '가입 신청 관리에서 가장 필요한 기능은 무엇입니까?' 라고 했었다. 조금 딱딱한 느낌이 들어서
'가입 신청 관리에서 추가하면 편리할 것 같은 기능은 무엇입니까?' 라고 수정했다. 최종으로는 '가입 신청 관리에서 추가하면 도움이 될 것 같은 기능은 무엇입니까?' 로 수정했다. 최대한 받아들이기 쉬운 표현을 하려고 했다. 필요와 편리와 도움 중 어느 것이 더 친절하고 이해하기 쉬운 단어였을까. 조금씩 다른 단어이긴 하다. 사실 더 고민하고 싶었지만 첫번째 설문조사라 가볍게 시작하고 싶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 문장엔 하나의 질문만 하자
고객상담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필요하거나 개선하고 싶은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라고 했다가 '가장 필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와 '가장 개선하고 싶은 점은 무엇입니까?' 로 나누었다. 한 문장엔 하나의 질문만 하자.
머릿말에 질문수와 예상 소요 시간 명시 하자
설문조사 머릿말에 질문지의 수와 예상 소요 시간을 명시했다. 그렇지 않으면 직원들이 지레 겁을 먹을게 뻔했다. '괜찮아 고작 8문항에 시간도 2-3분 밖에 안걸려.' 라고 미리 얘기해 주며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예상 소요 시간은 본사에서 오신 팀장님을 모셔놓고 테스트 한 결과이다. 나는 3분 걸렸는데 그 분은 고작 1분 30초 밖에 걸리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UX는 최대한 친절하고 최대한 배려해야하는 도메인이다. 사소한 하나라도 더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
결론은 최대한 배려, 또 배려라는 것이다. 쉽고 명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