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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집 루시 Oct 22. 2021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용기

아닌 건 아닌거야

어느 날, 탕비실에 간식을 채워넣고 있는데 누군가 우리 팀원에게 커피심부름 요청을 해왔나보다. 우리 팀원이 열심히 믹스 커피를 타고 있는데 이사님이 들어오시더니 별안간,


"잠깐만 자기가 하지마. 내가 다른 매니저 데리고 올게."


하시더니 회사에서 제일 어린 막내 매니저를 데리러 나가셨다.

난 처음에 우리가 나이가 좀 있어서 대우해주려고 그러신줄 알았다.

이제 손가락뼈가 시릴때도 됐어, 쉬어. 이런 꼰대 마인드가 발휘될 수도 있겠다 싶어 그냥 얌전히 있었다.

장유유서가 꼭 나쁘지만은 않으니까.

하지만 그것때문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끌려들어온 막내 매니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커피를 탔다.

그리고 회의실로 출동했다.

탕비실을 나가는 막내 매니저의 모습을 지켜보던 이사님이 운을 떼셨다.


"접대는 어린 친구들이 하는게 맞는것 같애."


순간 내가 잘못 들었다 싶었다. '접대'란 단어가 참 불쾌했다. 우리가 무슨 업소 호스티스도 아니고.

지금이 쌍팔년도도 아니고 굳이 커피를 타고 있던 모매니저를 내치고

제일 어린 매니저를 데려와서 커피를 갖다 주게 하는 말이되나 싶었다.

본인도 말을 내뱉고 아차 싶었던가 우릴 보더니 물으셨다.


"내가 잘못 생각하는건가?"
"네. 이사님이 잘못 생각하시는거에요. 그거 편견이세요. 아무나 하면 어때요?
 이사님처럼 이렇게 미인이신분이 하시면 되죠."


'미인'이라는 단어에 혹하셨는지 부정을 하는데도 그렇게 기분 나빠하지는 않으셨다.

하지만 똑바로 쳐다보면서 얘기했더니 좀 당황하셨나,

"아냐. 접대는 어린애들이 하는게 맞는것 같애." 하고 가버리셨다.

나이 마흔에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뭐야,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을 내가 직관한거야?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내가 당한 일은 아니었지만 현장에 있던 목격자로써 정말 불쾌했다. 나도 간접적인 피해자였다.


인터넷을 뒤져서 폭행에 휘말릴 경우 대처방법이라든지 합의금, 벌금에 대해서 알아봤다.

혹시모를 우발적인 폭행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난 꽤 감정적인 사람이다.

그 날 저녁,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경찰서에서 연락오면 사람 때린줄 알아"
"그냥 찔러."
"아, 찌르기까지 해도 돼?"
"아니 노동청에다가 찌르라고. 사람 찌르지 말고."


참기만 해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나의 생각과 주장은 반드시 표현되어야 한다. 다만 그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정중하고 예의 바른 표현이 필수다. 나처럼 폭행 합의금을 알아볼게 아니라 어떻게하면 따뜻한 햇빛으로 그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한다. 사람 고쳐서 쓰는거 아니라고는 했지만마냥 방관자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도가 지나치다던가 싸우자고 덤벼드는 표현은 안하느니 못하다. 그건 서로에게 마이너스가 되버린다. 감정에 휘둘려서 질러버리게 되면 조직사회에선 책임과 후폭풍이 따라올 수 밖에 없다. 당사자에게 사과를 해야하고 따가운 회사 사람들의 눈총도 받아야 한다. 사건이 잊혀질 때까지 시간도 필요하다. 자아, 그러니 어떻게하면 그녀를 엿 먹일지 한번 진지하게 생각을 해봐야겠다.

 

 불의하고 불합리한 세상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조금만 더 용기를 내주었으면 좋겠다. 감정적인 객기가 아니라 아닌 것은 아니라고 정중하고 부드럽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 그 용기가 더더욱 필요해지고 있는 현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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