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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이김 Nov 19. 2020

우리를 늙게하는 것들


진짜 젊을 때는 자신이 젊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다. 돌이켜보면 젊음의 증거는 좀 엉뚱한 곳에 있다. 한가득 먹고 살이 쪄도 며칠 좀 굶으면 몸무게가 다시 돌아왔던 때. 프라푸치노 음료를 전혀 달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때. 카페에 가면 그런 것을 먹어야지 왜 돈 아깝게 검은 쓴물이나 먹을까 싶었을 때. 그마저도 모자라 자바 초코칩 프라푸치노에 브라우니까지 시켜먹을 때. 배스킨 라빈스 쿼터를 쉬지 않고 혼자서 다 먹을 때. 엽기 떡볶이를 3일 연속으로 시켜 먹을 때.


이젠 밀가루는 속이 부대껴서 못 먹겠고, 떡볶이는 먹은 후에 소화 안 될 것을 알아서 욕망 자체가 줄어들었다. 스타벅스에서 케익을 먹을 때 어떻게 아메리카노 대신 프라푸치노를 먹었던 건지 지금은 이해도 안 된다. 예전만큼 소화가 안되는 것은 몸을 직접 움직이는 신체 활동량이 줄어서이다. 단 것을 먹어도 끄덕없었던 것도 돌아다니며 칼로리를 쓸 곳이 많아 그 정도 먹는 것은 투머치가 아니었단 말이다.


사실 제일 분노스러운 건 이거다. 모든 에너지를 다 쓰고 와서 집에 오면 기진맥진한데 그건 칼로리 소모와는 별개의 문제란다. 힘은 들어도 몸을 실제로 많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소모한 칼로리는 별로 없다. 쌔가 빠지게 일해서 돌아오면 저녁이라도 맛있는 걸 먹고 싶은데, 그렇게 매번 먹었다간 돼지꼴을 못 면한다.


다이어트 차 좀 절제해서 먹으려고 하니, 이런 것까지곤 간에 기별도 안 갈 뿐더러 그렇게 힘들게 일하고 왔는데 먹는 것도 제대로 못 먹는 인생을 살아서 뭐할까 싶다. 인성이 터지기 일보 직전에 그냥 달거나 짠 것을 충동적으로 먹어버린다. 충동적 행위 후에 뒤따라 오는 것은 후회와 분노일 뿐.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나는 20대 후반이라 그 나이 한창 때다, 벌써부터 그러면 어쩌냐, 나중가면 더하다는 말 모두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지금도 이런데 나중가면 얼마나 더할지 굳이 상상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 나이에 노화의 증상을 이렇게나 여러 개 겪게 될 줄 몰랐다.


대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내 기분은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날씨가 나빠져도 컨디션에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맑은 날이면 맑은 날이라서 좋고, 비오는 날이면 촉촉하고 감성적이어져서 좋았던 건 대학 시절이 끝나면서 끝났다. 지금은 비오는 날이면 우산에서 흐른 물방울으로 미끄러워질 출근길을 예상하는 것부터 등골이 오싹하고, 어두컴컴해 평소보다 더 잘 떠지지 않는 눈부터 시작해 온 발끝까지가 무겁다. 비 안 맞으려고 우산을 쓰고 다니는데 몸은 한동안 폭우를 맞은 마냥 축축하게 늘어져 있으니 우산이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고.


비오는 창가를 바라보다 더 솔직해져 보기로 했다. 질문부터 정정되어야 할 것이다.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 양자택일식 질문을 하려고 한다. 시간이 흘러 노화로 인해 비 오는 날 컨디션이 떨어진 것인지, 아니면 비까지 오는 날 일까지 해야하기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인지.


답을 내는 데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간단한 것은 반대의 상황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만약 비오는 오늘 내가 다른 곳에 있다면 내 기분은 어땠을까. 창에 맺힌 빗방울 하나하나를 뜯어볼 수 있을만큼 여유로워 재즈 음악을 틀고 커피를 마시며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다면 지금만큼 컨디션이 저조했을까. 우리 모두는 그 답을 알고 있다.


사람이 늙는 것은 시간 그 이상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를 늙게 하는 것은 시간 뿐만이 아니라 책임이다. 생물학적으로도 25세 정도가 넘어가면 성장이 아니라 노화가 시작된다는데, 하필 딱 그 즈음부터 생계를 책임질 일을 해야하니 급속도로 늙을 수 밖에 없다. 가만히 있어도 늙는 시기에 한번도 꿈꾸지도 않았던 일을 위해 매일 아침 무거운 몸을 일으킬 때, 이런 것까지 들어야 하나 싶은 소리를 속으로 꾹 눌러 담을 때, 아무래도 몸이 좋지 않지만 지금 하지 않으면 내일은 더 산더미 같아 보일 일을 해야만 할 때, 매번 치미는 스트레스는 우리를 늙게 한다.  


어른과 아이의 차이가 책임을 지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라고 들었다. 오늘도 나 하나의 삶을 책임진 우리 모두는 어제보다 조금 더 늙었을 테다.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늙게 되는 것이니 너무 서러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더’ 늙는 것은 싫으니까 눌러담은 스트레스를 위아래로 흔든 탄산음료 병뚜껑을 열 때처럼 분출시키려고 한다. 오늘 조금 더 늙었을지도 모르는 당신, 조만간 어떤 방식으로든 꼭 사이다를 터뜨리며 젊음의 청량감을 되찾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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