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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이김 Nov 16. 2020

조폭과 보살 사이


엄마는 늘 집에만 있어봤자 뭐하겠냐며 나가자고 하는 사람인데, 반대가 끌린다는 게 근거 있는 말인지 아빠는 집돌이 중의 집돌이다. 그런 집돌이도 가끔은 운동으로 등산을 가는지라 그 날은 같은 시각에 우리 모두가 다 집 밖에 있었다.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던 나는 집 근처 대학교 정문 앞에 내렸다. 지금 집에 아무도 없다며 셋 다 밖에 나와 있으니 만나서 같이 들어가자는 제안을 엄마가 먼저 했기 때문이다.


만나기로 한 벤치로 가보니 아빠는 등산복 차림으로 앉아있었다. 바로 집이 코 앞인데 집에 바로 들어가면 될 걸 왜 만나서 같이 들어가자는 건지 이해가 안 되지만 아빠와 나는 엄마에게 대항할 입장이 되지 않기 때문에 독재자의 지시에 따랐다.



 - 저거 완전히 조폭 아이가?



내가 옆에 와서 앉아도 별 말이 없던 아빠는 갑자기 어디 먼 곳을 쳐다보더니 그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나는 핸드폰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를 다급하게 치면서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 쭈야, 눈 돌리라. 조폭 온다 조폭 !



난 애초에 그 곳을 보고 있지도 않았기에 아빠의 다급한 말은 눈을 돌리기 보다도 눈이 정확히 그 곳으로 향하게 하는 반대 효과를 가져왔다. 그 때 시야에 들어온 것은 이미 실루엣부터 낯익은 우리 엄마와 절 이모들이었다. 과연 아빠 말대로 개개인의 인물하며 인물 간의 대형이 어느 하나 빠짐없이 조폭같아 보이긴 했다. 좁은 인도는 아니었지만 승복입은 이모들의 수는 6-7명이었기에 일렬로 늘어서면 도보를 통째로 꽉 막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엄마가 절에 열성적으로 다니는 지라 회색 승복을 여러번 보다보니 승복에 몸매 보정 효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근데 우리가 원하는 살집 축소 효과가 아니라 몸이 한결 튼실해보이는 효과다. 저렇게 풍채좋은 이모들이 단체로 회색 승복을 입고 1행에 4명씩 2행으로 보도를 꽉 가로막으니 누구라도 이들을 쳐다보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킬링 포인트는 이 와중에서 서로를 극진하게 ‘보살님’이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튼실한 이들이 보무도 당당하게 보행자 도로를 걷는데 영화 범죄와의 전쟁 속 OST ‘풍문으로 들었소’가 귀에 음성 지원되었다. 누구도 이들을 보살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보살이 아니라 이들을 참아주고 있는 옆의 보행자들이 보살이다.






우리가 보기엔 조폭이지만 본인들은 보살이라고 주장하는 문제의 절 모임은 이모님들의 풍채만큼 으리으리한 이름이 있었다. 부.자.회. 이름 그대로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이름한번 살벌하지 않은가? 검은 조직 삼합회가 중국을 주름잡았다면 대한민국엔 부자회가 있다.  



- 무슨 불자들 모임 이름이 부자회에요? 너무 유소유인데.



내가 딴지를 걸자 엄마는 스님도 이 이름에 대찬성을 했다고 항변을 했는데, 내가 듣기론 부자회는 이름이 문제가 아니다. 엄마는 크게 나서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마 모임에서도 먼저 나서는 사람을 지지해주는 포지션이지 않을까 예상한다. 하지만 그런 엄마마저도 부자회의 일원으로서 스님과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면 삼합회와 맞먹을 정도의 협박성 멘트(?)가 다분하다.



- 스님, 우리는 언제 부자 한번 되보겠습니꺼.


- 대가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는 것은 진정한 기도가 아닙니다. 그런 것에 연연해 하지 마시고 기도를 하다보면 다음생에라도 꼭 복을 받을 겁니다.


- 이씨!


- ???


- 스님! 다음 생 말고 이번 생이예!


- 뭔가를 받겠다는 생각은 마시고 차분히 보시를 하시면...


- 되도록이면 좀 빨리 받읍시더! 내 안 줄거면 우리 딸래미한테 주이소. 빨리 안 주면 이제 안 올랍니더!



스님의 황당한 표정이 안 봐도 눈에 훤한데 엄마는 저 이야기를 하면서 말괄량이처럼 우하하하, 웃는다. 그런 대화를 듣고 있으면 아빠는 또 혀를 끌끌 차며 ‘완전히 조폭이다, 조폭’을 중얼거리다 이렇게 외친다.



- 부처한테 돈 바치지 말고 내 좀 주라 !



아빠가 저런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은 부자회가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이기 보다도 실제로 부자인 사람들의 모임이나 다름 없다는 것을 알게된 이후다. 물론 부자이신 이모들도 더 부자가 되고 싶은 건 마찬가지니 어쨌든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이 맞긴 맞다.


부자회 이모들은 부유한만큼 절에 보시도 많이 하고 부처님 오신날 같은 중요한 불교 행사가 있으면 몸을 쓰는 자원 봉사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부처님 오신날이 오기 며칠 전부터 음식 준비한다고 엄마가 절에 다녀온 후 집에선 뻐드러지는 건 연례 행사나 다름없다. 추측건대 자원 봉사자가 절실한 절의 중요 행사는 이 부자회가 없으면 그 동력을 크게 잃을 것이다. 그러니 스님도 사회생활 차 부자회의 어처구니 없는 협박성 멘트를 다 받아주고 있는 것이다.


부자회는 보살들이 장례를 치러야하는 경우가 생기면 먼 지역이라도 방문할만큼 끈끈한 조직력을 자랑했다. 우리 외할머니의 49재에도 그 무시무시한 승복을 입고 단체로 일사불란하게 절을 했는데, 퉁퉁 부은 눈에 휴지를 갖다대던 나도 울음을 멈추고 그 장관을 쳐다볼 수 밖에 없을 정도였다.


그 외에도 부자 보살들의 어마어마한 경제력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엄마로부터 들려왔는데, 어느 날 나는 이런 질문이 생겼다.



- 근데 엄만 부자회에 어떻게 들어갔죠? 우린 부자가 아니잖아요.


- 우린 턱별전형이다.


- 무슨 특별 전형이요?


- 마음만은 부자다. 우하하하하!



마음만은 부자기에 수천만원 명품을 두르신다는 그 이모들 사이에서도 자긴 기 죽을 거 없단다. 이제보니 부자회가 승복을 고수하는 건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부처님 아래서 부자든 빈자든 다 같은 보살로서 대동단결의 효과를 가져오는 장치로 승복만한게 없다.


똑같은 유니폼 입지, 오와 열을 맞춰서 걷지, 떼로 몰려다니며 공동의 작전을 수행하지, 이게 조폭이야 보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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