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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이김 Oct 09. 2020

고독한 싸움에 새우등 터지네


엄마는 나갈 때마다 ‘잠깐 나갔다 올게.’ 라고 짤막하게 말한다.



- 어디 가요?


- 요 앞에.



그러니까 그 요 앞이 어디냐고요. 요 앞이라는 게 어딘지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매번 저렇게만 이야기하고 나가버린다. 자신에게도 프라이버시가 있으니 존중해주길 바란다면서.


내가 어디에 가는지는 그렇게 악착같이 알려고 하더니 자기는 끝끝내 말해주지도 않는다. 그러고보니 이 착한 딸은 어디에 누구와 있는지 매번 이실직고한다. 사실 이실직고라고 할 것까지도 없다. 내가 어디 밖에 나가서 헛짓거리를 하고 돌아다닌 적이 있어야 고백할 거리가 있을텐데, 워낙 클-린하게 사는지라.



- 요 앞 어디요?


- 배고프면 칠리새우 먹어라.



늘 이런 식으로 입을 막아버린 후 문을 나서는데, 이 호구는 또 칠리새우의 맛을 상상하다가 문 닫기는 찰칵 소리를 듣고 이번에도 당했다는 걸 아는 것이다. 이번에도 실패. 어디가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엄마가 집을 비우면 전에 없던 긴장감이 생긴다. 특히나 엄마가 언제 돌아올 지 기약이 없거나 다음 식사 시간이 가까워져 올 경우 긴장감은 더욱 증폭된다. 두 딸이 성인이 됐으면 ‘저녁 뭐 먹지’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좀 벗어날 때도 됐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하지만 아빠는 그렇지 않다.


식사 거르는 법 없이 꼭 뭔가를 먹어야 하고, 특히 밥으로 끼니를 채워야만 하는 토종 한국인의 식성은 나보다는 우리 동생과 더 첨예한 갈등을 빚어왔다. 안 먹어도 그만이고, 다이어트를 위해선 안 먹으면 더 좋으며, 먹어도 매일 먹는 거 말고 다른 걸 먹자는 동생의 지론은 어디 하나 아빠랑 맞는 구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긴장감이 생긴다고 식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저녁 시간이 되자 나는 부엌 냉장고 주변에서 부스럭거리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엄마가 던져 놓은 미끼인 냉동 칠리 새우를 냉동고에서 꺼내들었다. 어떻게 조리해 먹을 것인지는 조금 고민이 필요했다.


우선 프라이팬에 조리하기엔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아서 싫다. 엄마는 프라이팬에 데우는 게 무슨 일이냐고 매번 말하지만 그건 엄마가 뭘 몰라서 하는 소리다. 단지 프라이팬을 꺼내는 것부터가 나에겐 대대적인 요리다. 다 먹은 후 기름 번드르르한 프라이팬을 붉은 기름기 낀 수세미로 문지를 생각을 하면 벌써 스트레스다. 그것을 감수하고까지 먹는 요리는 스케일이 큰 요리라 할 수 있다. 고작 이 칠리새우에 그만큼이나 에너지를 쓸 순 없다.


전자레인지가 있지만 선반 남는 자리에 간신히 아무렇게나 올려져 있는지라 선을 최대한 빼도 콘센트에 꽂힐 거리가 안 된다. 전자레인지를 옮기는 선택지는 칠리 새우가 몰고 올 파장을 짐작도 못했던 이 당시에는 떠오르지도 않았다. 무거운 전자레인지를 가슴팍 가득히 안아 낑낑거리며 옮기는 수고를 할 이유도 없이 바로 옆에 문제의 그 신식 문물이 있었다.


에어 프라이어가 대한민국 전역에 보급되어 필수 가전제품으로 자리잡는 동안, 나는 이 땅에 없었으므로 직접 써보는 것이 그 때가 처음이었다. 크기도 한 데다 돌아갈 때 위잉, 하고 겁나는 소리가 진동하는 것은 익히 들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거대한 기구는 온도 설정마저도 통 크게 80-100도를 넘나들었으니, 내가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될 것만 같았다. 프라이팬을 잡는 것만으로도 큰 요리를 한다고 느끼는 사람이 에어 프라이어라는 이름도 생소하고 생김새는 더더욱 특이한 요리 도구를 마주할 때의 긴장감을 상상해보라.


버튼을 내 마음대로 돌려 80도 같이 어마어마한 온도로 그냥 올려도 되는지도 모르겠고, 이 요란한 소리에 기기가 폭발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살림하는 머리에 있어 나는 몸치의 끼가 다분했다. 지난날 가정 생활에 있어서는 가전 살림을 부숴먹거나 아니면 내 몸을 부숴먹었던 파괴적인 기억뿐이라 이번엔 몸을 사려야겠다 싶었다.


불행히도 내가 조언을 구할 곳은 자기 방에 틀어박혀 좀처럼 나올 생각을 않는 98년생 김지영 뿐이었다. 98년생 김지영으로 말할 것 같으면 웬만해선 마주치지 않는 것이 좋다. 자기 방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으며 방에 어쩌다 들어가는 순간이 있으면 매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시간이 1분 이상 지체되면 빨리 나가라는 독촉을 듣는다. 먹는 것, 입는 것에 대한 욕망이 원체 강렬하기 때문에 자신의 욕망 실현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된다 싶으면 내면의 모든 공격성을 끌어내 분출한다.


이런 인물에게 조리 도구 사용법을 묻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지만 집에 남아있는 사람이라곤 아빠 뿐이니 한숨만 나올 뿐이다. 본인은 집안 살림을 안해서 잘 모르는 것이라는데 내가 보기엔 내 둔해빠진 살림머리는 다 부계쪽 유전이다. 내 가정 생활의 역사가 가전 살림을 부수거나 내 몸을 부수거나로 요약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빠의 지난날도 파괴적이다. 저번엔 성심껏 끓인 라면 냄비를 들고 멀쩡히 걸어가다가 통째로 엎질러 나를 제외한 모두의 비웃음을 샀다. 나만이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아빠가 그것을 치우는 것을 안타까워 했다. 물론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아빠를 위해 기름 덮인 냄비를 수세미로 닦아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짧은 심호흡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니 98년생 김지영은 역시나 이불을 뒤집어 쓰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 에어 프라이어 어떻게 써?



역시 98년생 김지영답게 사람이 말하는데 이불을 걷어내지도 않고, 그렇다고 대답을 해주지도 않는다.



- 에어 프라이어 어떻게 쓰냐고.


- 아, 알아서 해라.



김지영의 방 앞에서 심호흡을 하는 동안 적어도 세 번은 부딪쳐봐야 한다고 결심을 했으므로 한번 더 조를 차례였다. 인생은 삼세판이다.



-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 빨리 한번만 보여주라고.



김지영은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이불을 탁 걷어내더니 굉장히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언성을 높였다. 오늘은 또 무슨 일로 기분이 별로인 건지 아니면 내가 들어와서 기분이 별로인 건지 알 수 없다.



- 알려주고 말고 할 것도 없다. 그냥 해라 !


- 잘 모르겠다고.


- 아, 그냥 하면 된다고. 그리고 모르겠으면 좀 찾아봐라.


- 모르겠단 말야.


- 아 좀 찾아보라고.



나는 어차피 김지영의 고집을 꺾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더 시도하지 않고 방문을 살짝 열은 채로 나왔다. 그럼 왜 들어가서 물어봤는지 궁금할까봐 말해두는데 혹시 김지영이 컨디션이 좋아 가르쳐줄 수도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일종의 로또같은 것이다. 늘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걸어보는 마지막 희망.


내가 김지영의 방에서 나오자 아빠가 곧바로 물었다.



- 알려준다더나?


- 아니요.



아빠와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김지영은 내가 미처 닫지 않은 방문을 소리나게 철컥 닫아버리고 말았다. 문이 닫기는 소리는 퍽도 반항적이라 굴복할 것임을 알고 들어간 나에게도 날카롭게 들렸다.


불행히도 그 소리는 아빠의 역린을 건드리고 말았는지 아빠의 표정은 순식간에 못마땅하게 변했다. 저녁 시간인데 밥을 먹지 못하고 있는데다, 내가 밥먹을 생각은 않고 칠리 새우를 꺼내고 있다는 사실부터가 아빠 마음에 안 들었을 것이다.



- 좀 알려주라!



아빠가 거실에서 소리를 지르자 방 안의 김지영은 그에 질세라 소리를 지른다.



- 아 좀 알아서 찾아서 하라고!


- 그게 일이가! 그냥 발딱 일어나서 알려주면 될 걸!



홀로 상경해서 살게된 지 몇 년이 지나서 그런지 경상도 특유의 억센 말투는 공기마저 진동시키는 것 같았다. 이렇게 투박하고 거친 말투를 이렇게 크고 높은 음역대로 들어본 적이 오랜만이다. 점점 정점으로 올라가서 폭발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해졌다. 나는 서둘러 아빠에게 말했다.



- 됐어요. 그냥 제가 해 볼게요.



그러고선 나는 얼른 에어 프라이어로 다가가 칠리새우를 넣고 버튼을 이리저리 다시 살펴보았다. 그렇게 빨리 움직여야 이 치솟는 갈등을 중재하지, 가만히 내버려 뒀다간 무슨 일이 날지 모른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란 사람은 그런 갈등을 중재할 만큼 살림 머리가 있지 않았다. 에어 프라이어 조리법을 알았으면 진작에 김지영한테 그런 질문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빠는 내가 에어프라이어 근처에서 뚝딱이는 소리를 듣고 또 가전 살림을 부수기 일보 직전이라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98년생 김지영의 무시무시한 소굴로 작정을 하고 들어가는 아빠가 더 무시무시하다. 고모들은 아빠가 평소에는 유순하지만 화가 나면 그렇게 열을 내는 불도깨비라고 했다. 98년생 김지영의 음습한 소굴은 곧 불가마가 될 수도 있다.


방 주인만큼이나 뻑뻑한 방문 소리가 인위적으로 벌컥 열리는 소리에 이어 경상도식 앵그리 화법이 울려퍼진다.



- 좀 안 알려주나 !



나는 칠리 새우를 먹기 위해 여전히 에어 프라이어 앞에서 뚝딱이고 있었다. 내가 칠리 새우를 조리해야만 이 모든 갈등을 끝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뚝딱이는 나의 손은 한층 더 비장해졌다. 김지영과 아빠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연신 오가는 소리를 들으니 손이 더 분주해진다.



- 아, 좀 알아서 하라고! 그걸 혼자서 못 하나!


- 바딱 알려주면 되지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그러고 있노!


- 그럼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알아서 찾아보면 되잖아 !



과연 침침하던 김지영의 소굴이 불로 데워지고 있음을 소리로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초조해져서 나대로 소리를 질렀다.



- 아 그만 하라고요. 제가 알아서 한다고요! 거기서 나오세요 아빠!



오죽했으면 ‘거기서 나오세요 아빠’라고 말했을까. 과연 김지영의 말대로 별달리 알려줄 것도 없이 버튼을 이리저리 누르니 제대로 된 것이 맞는지는 몰라도 작동이 되기는 하였다. 온도 조절을 얼마나 해야하는지, 몇 분을 돌려야 하는지를 몰라 몇 번이나 멈췄다가 꺼내보고, 또 다시 돌리고 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에어 프라이어의 요란한 소리와 함께 초조한 마음도 위잉거리는데 이제는 불가마가 된 저 쪽의 싸움 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 일어나라! 발딱 일어나라 마!



이불이 거칠게 펄럭이는 소리가 들린 것은 분명 아빠가 절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음을 의미했다. 본인의 분신과도 같은 이불을 98년생 김지영에게서 벗겨내다니? 그와 동시에 찢어지는 듯한 김지영의 소리가 들렸다.



- 아, 알아서 하라고! 왜 나한테만 그러는데! 언니야 혼자서 잘하고 있잖아!



심각해지는 소리에 나도 더 소리를 질렀다. 에어프라이어가 시끄러워서 안그래도 소란스러운데 영 정신이 없다.



- 아빠, 그만 하시라고요! 지금 혼자서 하고 있잖아요!



- 아빠가 말하면 빨리 일어나서 좀 해줄 것이지, 뭐한다고 그러고 있노! 오냐오냐 키웠더니 이 시키가 마!



- 그러는 아빠는 잘한 거 뭐 있는데! 언니야는 혼자서 잘하고 있는데 왜 나한테만 그러냐고!




김지영이 방문을 쾅 부딪치도록 박차고 나와서 극심하게 저벅이는 발걸음으로 거실 중앙을 가로질러 가는 것이 보였다. 발걸음 한 발 한 발이 쿵쿵, 울려퍼짐과 동시에 세면대에 물이 콸콸 쏟아졌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숨길 수 없이 김지영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에어 프라이어는 아직도 위-잉하며 경박스럽게 돌아가고 있다. 아빠도 곧 불가마에서 나왔지만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화가 안 풀려있다.



- 왜 그러세요. 제가 혼자서 하겠다고 했잖아요.



아빠는 대꾸도 없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소파에 다시 앉아버린다.







칠리새우는 너무 가열이 됐는지 흐물거렸다. 에어 프라이어가 비록 칠리새우 뿐만이 아니라 김지영의 소굴도 가열했으나 어쨌든 한 입 먹어보니 꽤 맛있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칠리새우를 담아 거실으로 가져왔다.



- 김지영, 칠리새우 먹어라! 아빠, 좀 드세요.



그 때 화장실에서 나오던 김지영은 나를 쌩 지나친다.



- 안 먹는다.



내 뒤의 소파에 기대어 있는 아빠는 티비 채널을 돌리며 말한다.



- 내가 지금 그거 먹게 생겼나.



싸움은 싸움이고 먹는 건 또 같이 먹을 줄 알았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다. 원래는 그렇게 다투다가도 밥 먹을 때는 잘 모여 앉았는데. 애초에 칠리새우를 저녁으로 먹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나 뿐이어서 그렇다는 것을 이제 깨닫는다. 김지영과 아빠는 이런 것으로 저녁을 때울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다.



- 그럼 나 혼자 먹어요?



아무도 대답이 없길래 나는 칠리 새우 소스를 접시에 짤 뿐이다. 나쁘지 않게 조리된 것 같지만 태풍이 휩쓸고 난 폐허감이 감도는 거실에서 혼자 칠리 새우를 먹자니 이렇게 칠리할 수가 없다. 너무 오래 돌린 건지 온도를 높여 돌린 건지 새우 등이 터져 흐물거린다. 그렇게 용을 써가며 싸운 결과가 고작 이것이라니. 내가 에어 프라이어와 싸움을 벌일 때, 아빠와 김지영도 피 터지게 싸움을 벌이지 않았는가. 상처뿐인 싸움의 전리품은 이렇게 별 맛도 없다.


뒤늦게 돌아와 자초지종을 들은 엄마는 혀를 끌끌차더니 기가 막혀서 웃었다.



- 도대체 3명이서 할 줄 아는 게 뭐고?



엄마는 접시 한 개와 수저 한 벌만 설거지 통에 담긴 부엌을 보더니 화살을 내게 돌렸다.



- 그냥 혼자서 할 것이지 왜 그걸 물어보노? 니 잘못이다.



엄마는 칠리새우 봉지가 버려진 것을 집어들었는데, 큰 봉지 안에 소포장 되어있던 3개의 비닐봉지가 함께 담겨 있었다. 난 당연히 3명이서 먹을 생각으로 3인분을 조리했다.



- 그 와중에 칠리새우는 또 다 먹었나?


- 네.


- 지영이는 어디 갔노?


- 몰라요.



엄마가 돌아오기 직전에 김지영도 어디론가로 나가버렸다. 엄마가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어디로 가는지 밝히지도 않은 채, 물어봐도 대답도 안 하겠지만 우린 감히 물어보지도 못했다. 아빠는 불도깨비에서 불씨가 꺼진 도깨비가 된 것 같다. 표정은 아직도 좋지 않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리송하게 말도 하지 않는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이는 방문 열린 김지영의 소굴을 보면서 김지영이 어디 맥주집에나 가서 스트레스를 풀고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친구가 안주로 새우를 시키지만 않으면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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