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숲이김 Jan 11. 2021

반려식물 열풍의 선구자


엄마가 화분을 사러 가자고 하길래 따라나선 적이 있다. 엄마가 화분 사고 싶다고 분명 몇 번이나 말했는데 아빠는 자기 급한 일 아니라고 들은 척도 안하고 김지영은 보나마나 자기 소굴에 틀어박혀 있느라고 엄마가 그런 말을 했는지조차 모르는 것 같다. 어쩜 다들 그렇게 다정함이 부족한지 쯧쯧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내가 이런 소릴 하면 같이 살 땐 니가 제일 심했다 소리가 나올 것 같아 물론 혼자서만 쯧쯧거린다, 조용히.


무슨 화분 사지? 하면서 마트로 향하는 엄마 발걸음이 가볍다. 무슨 화분을 살 지는 이미 엄마와 나 둘 다 알고 있다. 엄마 입에서 얼마 전부터 오르내린 식물은 돈나무인데 정말 그 머니의 돈이냐고 하니 그렇다고 한다. 엄마가 돈나무 돈나무 노래를 부르는 건 지난 결혼기념일이 화근이었다. 결혼기념일이 되면 아빠 회사에서는 화분을 선물로 주는데 꽃집 아저씨가 화분 선택지를 하나하나씩 다 말해준 것 같다. 엄마는 전화에 대고 말했다. 이씨! 돈나무 있어야 되는데! 돈나무 없으면 돈나무 최대한 비슷한 걸로 주이소. 전화를 끊자마자 내가 물었다.



- 돈나무 받아서 뭐하게요?


- 그래야 돈이 들어오지.


- 그거 받아도 돈 안 들어오잖아요.


- 자꾸 돈을 생각해야 돈이 들어오지.



꽃집에 돈나무는 없었고 돈나무 비슷한 것도 엄마 마음에 영 안 들었기에 결국 엄마는 마트에서 돈나무를 자기 돈 주고 샀다.돈 들어오라고 돈나무를 원했는데 돈나무에 돈을 써버리다니 어째 부자 되자고 복권 사서 당첨이 안된 느낌이다.


하지만 엄마는 돈을 좋아해서 돈나무를 고집했다기 보단 식물을 좋아해서 그 중 자기가 가지지 못한 돈나무를 원한 것이다. 엄마와 함께 돈나무를 집으로 가지고 온 후 베란다에 내려놓는데 그제서야 엄마가 식물을 참 많이도 가꾼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 생각은 감탄조라기보단 일종의 반성조에 가깝다. 우리집 식구 중에서 베란다의 식물 이름을 아는 건 오직 엄마 뿐이다. 나하고 김지영은 식물 이름이 뭔지도 모르고, 우리 아빠는 가끔 엄마가 이미 물을 줬는데 그것도 모르고 물을 또 주다가 화분 아래에 물을 철철 넘치게 해 욕을 들어먹은 이력밖에 없다. 식물이 그렇게 많은데 관심 주는 사람이 한 사람 뿐이라니 이 사회는 정말 비정하다.


요 며칠 새 극도로 추워져서 아예 밖에 나가질 않고 있었는데 내 몸 하나 뜨뜻한 데서 편히 지내는 동안 바로 코 앞 베란다 식물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오직 엄마만이 그 화분들을 집 안으로 들여놓았다. 아-들이 추워서 꽃을 못 피우네. 꽃봉오리 상태에서 있던 그 화분—이름을 여전히 몰랐다 이 때도—이 여기 들여 놓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었는데 그것도 다 내 무지와 무관심이 낳은 생각이었다. 화분은 집에 들여놓은 바로 다음날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꽃을 피우고 나서야 나는 식물의 이름을 물었고 엄마는 그것이 제라늄 화분이라고 했다.


이젠 키우는 동물도 애완동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살아있는 생명을 가족처럼 챙긴다는 의미에서 반려동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반려동물이라는 단어가 정착한 이후론 반려식물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어떻게 똑같이 거실에 있는데 세 사람은 그 추위동안 바로 문 열면 오들오들 떨고 있는 식물들을 구할 생각조차도 못했을까? 엄마를 제외한 세 사람은 우리집 베란다 화분을 우리 가족의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그런 것이다. 


반려식물 키우기 열풍이 불어 관련 도서도 많이 나오고 식물 그림 그리기도 요즘 유행하는 취미인데 생각해보니 엄마야말로 반려식물이라는 단어가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식물을 반려자처럼 대하며 살아온 장본인이다. 엄마는 지금도 반려식물이라는 단어 자체를 알 지도 못한다. 아마 말해줘도 그럼 식물을 키우는데 그 정도도 안하나? 라고 말할 것이다.


암세포도 생명이라는 희대의 망언도 나오는 마당에 우리집 식물을 생명 취급하지 않은 건 분명 우리 세 명에게 문제가 있어서다. 난 할 일을 정했다. 식물의 이름을 다 물어보고 아빠가 물을 또 주는 것을 막을 것이다. 오늘 보니 제라늄은 꽃을 한 개 더 피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3인 가족 3명이 자가격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