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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이김 Jan 23. 2021

엄마아빠 이혼하면 누구따라 갈래


내가 20대 후반이 된 후 엄마와 나 사이에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이전보다 많이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엄마는 그 나이 또래 어른들과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때 되면 해야 한다, 남들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 세상에 별 남자 별 여자 없다.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엄마는 나의 결혼을 내심 기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꿈 깨라고 반응한다.


가정을 이루어 가족을 책임 진다는 것이 아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사실 아무리 세월이 지난들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할까 싶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엄마는 다들 완벽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시작해서 하나하나씩 해나가는 거라고도 하는데, 그런 말에 혹할만큼 사랑에 빠지지 않아서 그런지 아무런 감흥이 없다.


내가 알기론 엄마와 아빠는 이혼이라는 단어가 떠오를만큼 극도의 갈등에 치닫은 적이 없다. 같이 살면서 있을 수 밖에 없는 사소한 갈등이 벌어졌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원래 그런 가정에서 자랐으니 다 그러고 사는가 보다 했는데 크면서 그것도 아니란 것을 알았다. 친구와 지인들이 부모님 간의 불화로 깊은 우울감에 빠지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자식 입장에서는 본인이 나서서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바라만 보면서 끝없는 무기력감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그런 경우를 자주 접하다 보니 이젠 부모님 사이가 좋은 것이 초년운 중 최고 복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평범하게 화목한 결혼 생활을 하는 우리 엄마도 '결혼한 사람 중에서 이혼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평범하게 사는 부부가 겉보기엔 남들만큼 쉽게 술술 사는 것 같아도 절대 그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원래 그 ‘남들만큼’이라는 말이 참 위험한 거다. 남들만큼의 집, 남들만큼의 월급,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로 남들은 다 잘만 사는 것 같은데 항상 우리 집구석에만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사실 모두가 서로를 보면서 다 그런 생각을 하고 산다. 양귀자의 <모순>이라는 작품도 이를 잘 보여주는데 완벽한 삶인 것 같아도 그건 남 보기에나 그렇지 다 각자의 문제가 있다. 좀 식상한 비유이긴 하지만 우아하게 물 위를 떠 있는 백조가 수면 아래서는 절실하게 발헤엄을 치는 것과 같이 '남들만큼 평범한 삶'은 진짜 노력 안해도 일굴 수 있는 평범한 것이 아니다. 그걸 깨닫기 시작하자 엄마가 '일본에 황혼 이혼이 유행한다더라', '나 같아도 능력 있었으면 결혼 안했다'라는 말을 지나가면서 했던 것이 좀 불안해지기도 했다. 엄마는 그런 말을 왜 했을까. 내가 보기엔 큰 갈등이 없었던 것도 순전히 내 생각이었던 걸까. 설마 모든 것을 꾹 참고 있다가 한방에 터뜨리려는 것일까?



- 느그, 엄마랑 아빠 이혼하면 누구 따라갈래?



그래서 엄마가 느닷없이 저 질문을 던졌을 때—그것도 저녁 식사 후 과일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다같이 보는 세상 편한 시간에 —속으로 놀라서 뜨끔, 하고 불이 일었다. 내가 놀랐다는 것을 보여주면 안 되기에 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못하고) 태연히 과일을 집어 먹(는 척 하며)으며 되물었다.



- 이혼하시려고요? 왜요?



반면 김지영은 엄마를 홱 돌아보더니 정말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째려보며 말했다.



- 무슨 그런 걸 물어보노?



엄마는 우리의 질문에 대한 답은 하지 않고 갑자기 지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약하자면, 지인의 동생이 최근 이혼을 하기로 했는데 자식 2명을 누가 데려갈지를 두고 갈등을 빚다 자식들에게 직접 묻기로 했다는 것이다. 나와 김지영은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빠는 갑자기 대뜸 거기서 흐름을 끊었다.



- 이혼을 왜 하노?



역시  세대 아빠인지라 자식을 위해선 부모가 무조건 감내하며 같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나와 김지영이 ‘ 수도 있죠, ‘ 안되면 해야지라고 동시에 말했다. 그러자 아빠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자식은 어쩌고?'하며 혼자서 중얼거렸는데 그건 우리도 동감하지만 젊은 세대의 아성에 자식을 위해 참고 살아야 한다는 아빠의 전통적인 가치관은 묻혀버렸다. 내내 함께 있으면서 불행할 바엔 떨어지는  낫고 결국 부모 개개인의 행복이 자식의 행복이 아니겠냐며 가족의 결합보다 개인의 행복 추구가 우선된 발언이 심지어 엄마 포함 모두에게서 나왔다. 샛길로 새어버린 토크에 엄마는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라며 작은 언쟁을 끊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 갔다.



- 그래서 애들한테 직접 물어봤단다. 엄마랑 아빠 중에 누구 따라갈래.



이 중요한 대목을 넘어가야 엄마가 말을 꺼낸 의도를 알 수 있을 것 같아 나와 동생은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빠는 거기서 또 끼어들었다.



- 애들은 당연히 엄마가 좋지.



나와 김지영은 거기서 딱히 할 말이 없었기에 가만히 있었다. 엄마도 아빠의 말을 잠깐 듣고 있다 그 집 자녀들의 선택을 이야기 해주었다. 정말 아빠의 예상대로 자식 두 명 모두 다 엄마를 따라가기를 원했다는 것이 이야기의 결말이었다. 엄마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지 문득 궁금해서 그 질문을 해봤다고 했다. 아빠는 다시 중얼거렸다.

 


- 아빠는 늘 밖에 나가 있는데 뭐 좋겠노. 다들 엄마 따라 간다.



김지영은 별 반응없이 다시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아빠가 '다들 엄마 따라 간다'라고 말 할 때 눈가에 스치는 씁쓸함을 봤다. 요즘 아빠가 직장을 다니면서 부쩍 힘들다는 소리를 많이 한다. 원래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전혀 아닌데 그러는 걸 보면 퇴직을 앞둔 가장으로서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힘에 부치는 것이다.


아빠가 얼마나 힘드실까 하는 생각도 겨우 이제서야 하니 나도 참 코흘리면서 철없이 살았다. 이것마저도 취업 후 직장 생활과 자취 생활을 한꺼번에 시작하면서 생긴 그나마의 진전이다. 자취 생활에선 엄마의 노고를 배우고, 직장 생활에선 아빠의 노고를 체험했으니까. 요즘 워낙 먹고 살기가 힘든지라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은 외벌이로 가족 4명을 부양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일을 아빠는 수십년 간 힘들다는 말 없이 해왔다.


가끔 중년의 가장들이 '난 돈만 벌어다 주는 기계다' 라고 말하는 것도 아빠가 '애들은 엄마따라 간다'라고 말한 것과 본질적으로 같다. 직장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부인과 자식을 먹여 살린다고 그 모든 것을 외로이 다 견뎠을 아빠의 쓸쓸한 모습을 우리는 본 적이 없다.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당신이 살려야만 하는 존재이기도 한 지라 자신의 힘빠진 모습을 많이 숨겼을 것 같다. 평생을 뼈빠지게 일해도 자식들과 많이 지낼 수 없어 자신은 엄마보다 더 가까운 존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마저도 비밀스럽고, 그래서 더 고독하다.


다시 텔레비전 소리만 감도는 거실에서 난 아빠에게 다가갔다.



- 아빠, 엄마랑 이혼하고 싶어요?



아빠는 자신이 불리하거나 대답하기 싫은 질문을 받을 때면 불도깨비처럼 괜히 버럭 소리를 지른다.



- 안 한다!



아빠가 괜히 몽니를 부리지만 이미 예상한 바였으므로 난 더 웃음이 났다.



- 왜요? 엄마가 좋아서요?



내가 놀리는 투로 말을 붙이자 아빠는 더 퉁명스럽게 쏜다.



- 느그 아빠 개털된다.



옆에 있던 엄마는 하나도 힘 주지 않은 목소리로 무심하게 말한다.



- 개털되기 싫으면 마 그냥 딱 붙어 있으라.



결혼한 모든 사람은 이혼을 꿈꾼다라고 말한 엄마가 괜히 이 질문을 해서 개털이니 뭐니 소리까지 나오는데 본인은 정작 저렇게 말하다니. 그러고 보니 본인의 의견은 말해주지 않았다. 왠지 나와 김지영 뿐만 아니라 아빠의 생각이 궁금해서 떠 본 것 같기도 하다. 설마 개털되기 싫으면 옆에 딱 붙어 있으라는 말을 하려고 이 질문을 한 걸까? 좀 그렇다. 그냥 혼자 생각만 하고 말 것이지!


아까 아빠가 이혼을 반대하면서 '자식은 어쩌고', '느그들 먹여 살려야지' 하고 말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아빠가 그 말을 하는 동안 나는 개인의 행복 추구 우선으로 이혼이 나을 수도 있다고 말하거나 아빠의 개털 발언을 놀리며 깔깔 웃기만 했으니 이 얼마나 온도의 차이가 심한가. 짐짓 심각하게 자기 생각보다 자식들 생각부터 먼저 한 데서 나온 말의 무게는 직장에서 개털이 되는 일이 있어도 버텨왔던 가장의 주름진 세월에서 나왔다. 엄마아빠 이혼하면 누구 따라 가냐고요? 우리 그럴 일 없이 서로 아껴주면서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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